블록체인 세상을 바꾼다 제2의 인터넷혁명 개막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광풍이 휩쓸면서 차세대 보안 기술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블록체인은 한마디로 분산형 네트워크다. 구성원 모두가 정보를 검증, 저장, 실행한다. 따라서 특정인이 임의로 조작하기 어려운 플랫폼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주역은 가상화폐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최근 뜨고 있는 가상화폐들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가상화폐가 블록체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그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거래가 가능해져 사물인터넷(IoT), 물류, 제조, 유통 같은 산업 분야는 물론 행정 서비스 같은 공공 분야까지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다. 글로벌 IT업계에서 ‘제2의 인터넷 혁명을 이끌 뉴페이스’라는 찬사까지 나오는 이유도 확장성에 있다. 해외 기업은 물론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신뢰’ 기반의 분산형 공동 네트워크… 금융·공공·IT·물류 등 업종불문 ‘러시’
“인터넷이 지난 30년을 지배했다. 앞으로는 블록체인(blockchain)이 우리 미래를 30년 이상 지배할 것이다.”
초연결사회, 집단지성 등 새 키워드를 창시한 미국 돈 탭스콧 경영 컨설턴트가 ‘블록체인’에 던진 찬사였다. 글로벌 투자회사 골드만삭스 역시 “블록체인은 금융의 미래 모습”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블록체인을 ‘사회를 뒤바꿀 21개 기술’ 중 하나로 꼽았다. 다보스포럼은 2023년부터 각국 정부가 블록체인으로 세금을 거두고 2027년이면 세계 GDP(국내총생산) 10%가 블록체인으로 저장될 것이라 예견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2014년 블록체인을 6대 핀테크 사업으로 선정했고, 중국은 최근 대규모 예산 지원을 발표하며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했다.
▶블록체인이 뭐길래
▷금융거래 보호 신기술
이름도 낯선 블록체인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블록체인이 회자된 결정적인 계기는 비트코인 광풍이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화폐가 토대로 삼은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올 들어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하며 전 세계적인 논란거리를 만들자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졌다.
블록체인은 암호와 분산 시스템이 기반인 새로운 형태의 보안 기술이다. 당초 비트코인 거래용으로만 사용됐다. 비트코인이 화폐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란은 부차적인 이슈다. 이 안에 담긴 블록체인 보안 기술에 대해서만큼은 IT업계 전문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지금까지 선보인 금융보안 기술로는 최상이라는 뜻이다. 김광조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블록체인은 암호학적으로 굉장히 안전한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을 기록한 디지털 거래 장부(원장)로 보면 맞다. 한 소비자가 은행에서 돈을 찾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소비자가 은행에 “맡겨둔 돈 100만원을 달라”고 주문하면 은행 직원은 거래장부를 찾아본다. 해당 소비자가 100만원을 맡긴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고 기록이 있으면 돈을 돌려준다. 이처럼 돈을 주고받은 사실은 은행 내부 원장에 꼼꼼히 기록돼 있다. 원장을 기록·관리하는 일은 금융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은행 원장 조작’은 곧 돈을 빼돌린다는 뜻과 같다.
금융사는 그간 원장 보안과 관리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원장을 보관하고 각종 보안 프로그램과 장비를 사용해 지키는 것이었다.
블록체인은 발상을 완전히 바꿨다. 은행이 보안을 위해 원장을 꽁꽁 숨겨왔다면 블록체인은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공개한다.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무형의 거대한 ‘공동 원장’을 만든 셈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모든 사용자는 이 공동 원장에 거래 내용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언제나 열람한다. 수많은 사람이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어 내용 위조, 변조 가능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래 내역엔 실명 대신 암호화된 코드가 사용돼 익명성을 보장한다.
중앙 집중적인 시스템을 버리고 정보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바꾸며 비용은 크게 낮아졌다. 인호 고려대 정보통신학과 교수는 “블록체인 강점은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보안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 점 때문에 글로벌 금융회사가 주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금융사 23조원 절약 가능
삼성페이, 애플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을 높인 이유다. 지금까지는 간편결제로 송금하려면 중개기관(은행이나 금융기관 등) 원장이 필요했다. 만약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이 같은 원장을 중앙에서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다. 거래 당사자끼리 암호를 통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활용 범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정보나 의료정보, 정부 등기 사항 등 중요 정보는 모두 블록체인으로 관리할 수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 등장은 투명하고 수학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새로운 기록 관리 방식이 출현한다는 뜻”이라며 “이 과정에서 은행, 정부기관 등의 기능은 다소 위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세계 금융기관이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고객 데이터베이스 유지 보수 등 운영비가 연간 23조원 절약된다고 추산했다. 미국 나스닥이 2015년 블록체인 장외주식 거래소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은행이 주식이나 채권거래를 실행하는 데 걸리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거래 신뢰성을 담보하는 데 필요한 증거금 규모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IT업계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블록체인 개발을 위해 핀테크 기업 ‘컨센시스’와 기술협약을 체결했다. IBM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계약’으로 불리는 독자적인 디지털 계약 생성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개를 눈앞에 뒀다. 구글, 애플, 아마존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금융 서비스 개선을 목표로 IT 금융 연합체인 ‘FIN’을 출범시켰다.
국내 금융사 또한 블록체인 활용 여부에 대해 고심 중이다. 특히 ‘말 많은’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신한은행은 국내 스타트업 ‘스트리미’와 협업해 블록체인을 통한 외환 송금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KB국민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업체 ‘코인플러그’에 15억원을 투자하며 개인 인증서, 문서 보안 서비스 등의 분야 제휴를 추진한다.
은행권에선 자체적인 스타트업 협업 육성 프로그램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김종환 블로코(Blocko) 공동대표는 “블록체인은 인터넷과 많이 닮았다. 둘 다 표준화 기술로서 활용 범위가 무한대라는 점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블록체인 가치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넘어 각 산업으로 확산
▷머스크 물류혁신…중국은 블록체인시티
금융을 넘어 산업 각 분야로의 확장 속도도 빨라졌다. 지난해 11월 미국 IBM과 월마트, 중국 칭화대는 중국 내 월마트 돼지고기 유통 이력 체계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구축했다. 과거 돼지고기 유통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수개월이 걸렸지만, 이제 단 몇 분이면 조회된다. 월마트는 전체 식료품 유통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올해 3월 초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라인이 IBM과 제휴해 자사 물류체계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했다. 화물 운송을 맡긴 화주, 해운사, 항만 관리소, 세관 등에 모든 해운거래 계약과 선적량이 통보되고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머스크라인은 통관 절차 단축과 화물선적 효율 증대로 연간 수십억달러 비용이 감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외 행정, 부동산, 지식재산권, 음원 등의 분야에서도 블록체인 연구가 한창이다. 두바이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모든 정부 문서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회사인 완샹그룹도 블록체인 기술로 운영하는 ‘스마트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7년간 약 33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블록체인을 ‘금융의 미래’라고 평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보안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해킹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 해킹 사례처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보안에 취약할 수 있다.
효율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도 새겨들을 만하다. 현재까지 블록체인은 주로 비트코인 거래에서만 사용돼왔다. 만약 블록체인이 일반 금융 시스템에 사용되면 거래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 이 경우, 블록체인 크기와 데이터 소모량은 엄청나게 증가할 수 있다.
리서치 기업 탭(TABB)그룹은 2018년 2분기가 되면 금융·자본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 적용한 사례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한다. 블록체인이 자리 잡기 위해선 여러 성공 사례를 만들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은 개발 초기 단계라서 큰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배하고 관리하는 데 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네트워크 저장 규모와 데이터 분배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노승욱·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15·창간호 (2017.07.05~07.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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