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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 '햄버거병', 터질 게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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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 '햄버거병', 터질 게 터졌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햄버거 패티가 위험한 까닭

패스트푸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9월 네 살 난 아이의 부모가 경기도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쇠고기 햄버거를 먹고 출혈성장염에 걸린 뒤 치명적인 용혈성요독증후군(HUS, Hemolytic Uremic Syndrome)을 앓고 있다며 이 업체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고소에 따라 수사에 들어갔다.

아이가 앓고 있는 속칭 '햄버거병'이 햄버거, 더 구체적으로는 햄버거에 들어간 패티가 병원성 대장균 O157:H7에 오염돼 있었고 이 패티가 덜 익혀졌기 때문에 생긴 것인지는 판결이 나와야 판가름 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햄버거 패티와 용혈성요독증후군이 깊이 관련된 과거 사례가 많이 있어 현재로서는 그 개연성이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네 살배기가 매일 10시간씩 복막투석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에 누리꾼과 소비자들의 관심은 수사와 재판 결과뿐만 아니라 당장의 햄버거 안전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소식에 국내 햄버거 업체들에 패티 안전 조리 등에 힘을 기울여주도록 긴급 요청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장출혈성대장균에 감염된 뒤 콩팥 기능이 떨어져 몸 속 노폐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질환이다. 병원성대장균에 오염된 고기나 야채 등을 먹게 되면 갑자기 적혈구가 파괴되어 발생하는 용혈성 빈혈과 함께 혈소판 감소증이 일어나고 급성신부전으로 이어진다.

햄버거가 이 아이가 앓고 있는 질병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까닭은 과거에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소고기 패티는 소고기의 온갖 잡 부위, 때론 내장까지 잘게 갈아 만든 것이다. 소고기 원료가 병원성 바이러스나 세균에 오염돼 있고 이런 재료로 만든 패티를 잘 익히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쇠고기 햄버거 패티는 속까지 열전달 잘 안 되는 특이 구조

패티는 고기를 잘게 갈아 뭉쳐 만든 덩어리이다. 이 때문에 뭉텅 썬 고기 덩어리와는 구조가 다르다. 안심·등심스테이크 재료는 열을 가하여 쉽게 내부까지 익힐 수 있다. 이것들은 겉만 살짝 가열해도 위생 상 별 문제가 없다. 쇠고기 스테이크의 경우 겉만 살짝 익혀 속에는 피가 묻어나오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꽤 있다.

반면 패티는 잘게 썬 고기와 고기 사이가 공기로 차 있다. 이로 인해 패티는 내부까지 열전달이 되는데 덩어리 고기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패티가 병원성 세균 등에 오염돼 있을 경우 확실히 익히지 않으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패티 속이 섭씨 71도까지 되도록 충분히 익혀야 한다. 하지만 가열시간을 너무 길게 할 경우 겉이 타버릴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겉도 타지 않고 속까지 완전히 익히는 데는 숙련된 기술이나 노하우가 필요하다. 햄버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이 빨리 구워내는 데만 몰두하면 문제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다. 햄버거 패티가 종종 말썽을 일으켜 온 데는 이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82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수십 명이 집단 발병한 사례가 보고됐다. 햄버거 속 덜 익힌 패티가 원인이었다. 후속 연구 결과 그 원인이 'O-157 대장균'으로 밝혀졌다.

미국, 호주 등은 병원성 대장균 감염 많아

O157:H7 대장균 감염은 미국 전역과 영국, 그리고 퀸즐랜드를 포함해 호주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고되고 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1955년 처음 보고됐으며 발생이 가장 많은 나라는 아르헨티나로 꼽히고 있다. 미국·호주·아르헨티나산 쇠고기나 쇠고기로 만든 가공품은 병원성 대장균 오염 여부를 철저하게 사전 검증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명당 2.1명꼴로 이 질병이 보고되고 있다. 6700명 정도의 환자가 매년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 발생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생후 6개월에서 4살 사이 어린이다. 우리나라 어린이도 여기에 해당하는 3살 때 발생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이 질병이 종종 문제가 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육가공업체, 패스트푸드 업체, 미국 식품의약품청의 평판이 부정적이 되곤 한다. 이 질병은 미국의 저명한 의학스릴러 작가 로빈 쿡(Robin Cook)이 소설 <독소>(원제 Toxin)에서 다루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2006년 소고기가 아니라 오염된 시금치 때문에 병원성 대장균 감염병 환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적도 있다. 2009년 6월에는 네슬레 톨 하우스 쿠키 반죽이 O157:H7 병원성 대장균에 오염돼 덜 구워진 쿠키로 인해 30개 주에서 70명의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다.

O157:H7 병원성 대장균이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지만 최근에는 다른 유형의 병원성 대장균도 말썽을 피웠다. 2011년 5월 독일에서는 콩과 식물인 호로파 싹 채소가 O157:H7의 사촌 격인 O104:H4 병원성 대장균에 오염돼 이를 먹은 3800명이 피가 섞여 나오는 설사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이 가운데 800명 이상이 용혈성요독증후군으로까지 발전됐으며 36명이 사망 또는 중증 환자였다.

위키백과를 보면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때 한 요리사(일명 햄버거 찰리 Hamburger Charlie, 본명 Charlie Nagreen)가 샌드위치를 만들던 중 너무 바쁜 나머지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일반고기 대신 샌드위치 빵에 넣어 판매한 것이 오늘날 햄버거의 시초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햄버거는 세계인이 즐기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가 됐다.

영국에선 어린이가 햄버거 먹고 인간광우병 걸린 사례도 나와

햄버거는 현대인이 간편하고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열량이 높고 영양 가치는 떨어지는 '정크푸드'란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어린이는 물론 성인 비만과 각종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탄을 받기도 한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모건 스펄록은 맥도날드의 세트 메뉴 이름과 비만을 동시에 중의적으로 풍자한 <슈퍼 사이즈 미>란 다큐멘터리에서 패스트푸드 음식과 문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햄버거는 영국에서도 인간광우병과 관련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영국에서 1990년대 중반 광우병 광풍이 휘몰아칠 때 존 굼머 농무장관은 영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딸과 함께 쇠고기 버거를 먹는 모습을 연출해 영국 전역에 방영됐다. 당시 이를 믿고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 햄버거를 먹은 아이가 나중에 실제로 인간광우병에 걸려 영국이 발칵 뒤집어진 일도 있었다.

햄버거로 인한 식중독이나 용혈성요독증후군과 같은 치명적 질병에 걸릴 위험은 여러 개의 위험요인이 겹쳐서 일어날 때만 발생한다. 다시 말해 햄버거 패티의 원료가 되는 쇠고기가 병원성 대장균에 오염된 것과 동시에 패티를 제대로 익히지 않는 것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 이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원료 자체가 병원성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네 살배기 아이가 덜 익힌 햄버거 패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면 패티 제조 과정에서 해썹(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식품안전 당국은 아직 그 원인이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 '햄버거병' 발생 논란을 계기로 육류와 그 가공품 제조에서 해썹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 5일 최은주 씨는 자신의 딸이 덜 익은 고기패티가 든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를 먹고 용혈성요독증후군(HUS)에 걸려 신장장애를 갖게 됐다며 맥도날드 한국지사를 식품안전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사진은 작년 9월 최은주 씨의 딸이 심정지로 인해 소아중환자격리실에서 에크모 시술을 받는 모습.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황다연 변호사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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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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