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열풍에 끼얹는 한 바가지 찬물

2017. 7. 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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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로버트 J. 고든 지음, 이경남 옮김/생각의힘·4만3000원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도발적인 말이다. 우리는 종종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과거를 돌아보는” 오류에 빠지는데, 최근의 변화일수록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습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주는 것보다 우물 파주고 전기 끌어다 주는 게 더 낫다고 장하준은 몇 년 전 낸 책에 썼다.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의 화두다. 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보틱스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경제와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는 ‘변곡점’ 또는 ‘제2의 기계시대’(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에 다가가고 있다는 낙관론이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퍼지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같은 지능정보기술 기업의 주가가 상위권을 휩쓰는 것도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제이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이렇게 달뜬 열망의 정수리에 한 바가지 찬물을 끼얹는 듯한 책이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은 엔터테인먼트 등 협소한 분야에만 영향을 줘 성장을 끌어내는 힘이 떨어진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3차 산업혁명이 이렇기에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미약한 혁신에 사회적 불균형까지 겹쳐, 앞으로 20~30년간 미국은 성장을 거의 하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고든은 경고한다.

경제는 일정한 보폭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1700년대 중반 이후의 성장 궤도는 혁신과 기술변화에 따라 부침이 심했음을 보여준다. 고든이 주목하는 시기는 1920년부터 1970년의 50년간이다. 19세기 말 발명된 전기, 전신, 내연기관 등 2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실용화되고 확장되며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시기였다. 음식, 옷, 주택, 교통, 의료, 근로조건 등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크게 탈바꿈했고 대량소비의 현대 사회가 열린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위대함은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에 나타난다. 총요소생산성은 기술진보와 혁신이 성장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척도인데, 1920년부터 1970년까지 연평균 1.89% 증가해 그 앞뒤의 어떤 시기보다 높았다. 1930년대 공황, 1940년대 세계대전의 절박함이 생산 현장의 혁신을 촉진했고, 노동자의 법적 권리 강화는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당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런 선순환 덕분에 1945년부터 70년대까지는 모든 계층의 소득이 고르게 증가하는 ‘대압축’의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1970년대 이후 막을 내렸고, 반복되지 않으리란 게 고든의 판단이다. 1970년부터 2014년까지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은 0.64%로 앞 기간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발명가가 총기를 잃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닥나서”가 아니라 음식, 의복, 주택 등 “현대적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많은 기본적 차원에서 이룰 것이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든은 “경제가 인터넷과 웹 혁명에서 얻을 혜택은 다 받았고, 3차 산업혁명은 2차만큼 인간생활의 전 영역으로 확산하지 않았”다고 본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앞으로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리라는 믿음도 근거가 약하다고 말한다.

고든은 불평등, 정체된 교육, 고령화하는 인구, 급증하는 대학생 학자금 대출과 연방정부 부채 같은 미국 사회의 ‘역풍’이 이렇게 둔화한 생산성의 발목을 한 번 더 잡으리라 예견한다. 이대로 가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생활 수준이 부모 세대의 생활 수준보다 못한 시대가 될 것”이라 우려한다. 대안으로 저자는 누진세제 강화, 최저임금 인상, 영·유아 교육기회확대 등 결과와 기회의 평등을 높이는 정책을 제안한다.

고든의 진단과 제안은 과학기술 발달이 성장과 번영의 시대를 자동으로 열 것이라는 믿음보다, 당장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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