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파일] '탕진잼' 신조어 뒤에 숨어 있는 '미래 없는 삶'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2017. 7. 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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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경에이치플러스양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직장인 김 모씨는 최근 ‘인형 뽑기’에 빠졌다.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에 몇 천원에서 많게는 만 원 이상의 돈을 쓰면서 인형을 뽑는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인형을 뽑을 때마다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 김 씨의 변이다.

취업준비생이자 현재 인턴인 나 모씨는 적은 수입으로 인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곤 한다. 그런 나 씨도 유난히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꽃집에서 꽃을 자신에게 선물한다. 비록 실용성도 없고 오래 가지도 않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의미에서 한 달에도 종종 꽃집을 들른다.

최근 들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자주 보이는 ‘탕진잼’, ‘시발비용’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적은 돈이나마 소소히 쓰면서 즐기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비를 하는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비 패턴 뒤에는 미래를 준비할 여유도 없이 순간의 쾌락에 집중하는 일종의 ‘우울증’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이같은 소비 트렌드 이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와 계속되는 경쟁 및 스트레스로 인해 미래 대신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나 트렌드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이면의 원인을 제대로 확인한 후 대처해야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미래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미래를 대비하는 대신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인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당장의 만족감, 쾌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에 집중하게 될 수도 있다.

탕진잼, 시발비용 등의 이슈 또한 현실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탕진잼’, ‘시발비용’ 이면에는 현재의 불안 및 미래에 대한 체념 담겨 있어

SNS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탕진잼’은 시간이나 재물을 낭비한다는 의미의 ‘탕진’과 재미의 준말인 ‘잼’을 합성한 단어로,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화제가 된 ‘시발비용’은 욕설을 뜻하는 단어와 비용이 합쳐진 단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충동적 비용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비들의 공통점은 실용성보다는 현재의 쾌락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소비한다는 점이다. 

실제 SNS에는 야근 후 대중교통이 있음에도 굳이 택시를 타거나 야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연들이 등장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2.5%가 ‘시발비용’을 써봤으며 ‘탕진잼’의 경우 45.7%가 경험해봤다는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 응답자의 52%가 이러한 소비행태가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전문가 시각으로 보면 이런 소비행태의 이면에는 젊은 층들의 불안과 결핍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저성장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이나 내 집 마련 등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현실로 인해 미래를 포기하는 대신 현재의 쾌락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자가가구의 연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2016년 5.6배로 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PIR 수치가 9.8로, 이는 소비 없이 소득을 모아도 내 집 마련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뜻이다. 특히 청년실업률 또한 올해 4월 11.2%로 작년 12월 대비 2.5% 증가한 상태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미래 준비도 어려운 상황에서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의 현재 안주가 소비 행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신조어 뒤에 있는 정신적 건강 이슈 인식해야

‘탕진잼’, ‘시발비용’ 등을 단순한 소비 트렌드로 인식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정신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현실 쾌락적 소비 이면에는 현재에 대한 희망 및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있는데, 이런 현실이 우울증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 

우울증이 심해질 경우에는 사고나 행동 판단력에 장애가 생길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소비 비용에 대한 과도한 지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더불어 신조어 이면에 자리 잡은 소진 증후군(번아웃 신드롬)에도 주목해야 한다. 

소진 증후군은 어떤 일에 몰두하던 이가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에 빠져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경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이러한 소진 증후군을 호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이 심해질 경우 감정적인 보상을 위해 보다 자극적인 쾌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소한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 및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는 대증적인 방법에 불과할뿐더러 오히려 더 큰 만족을 위해 소비가 커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이러한 소진 증후군이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당뇨나 고혈압 등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관심 및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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