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여인' '특급내조'.. 종편은 지금 조선시대?
[오마이뉴스 글:박한솔, 편집:이주영]
2015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30석인 내각에 여성 장관 15명을 등용하며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트뤼도 총리는 내각 공식 출범 기자회견에서 그 이유를 묻는 말에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라고 대답했고, 현장에서 터져 나온 환호성과 함께 총리의 발언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방송 역시 시대가 진일보함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앞장서기도 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서 제30조(양성평등) 조항을 보다 구체화·체계화 했습니다. 방심위는 이번 개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 방송 및 온라인 콘텐츠를 통한 특정 성 혐오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특정 성을 혐오적으로 묘사?왜곡하는 경우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 현행 규정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따라 특정 성을 다른 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다루거나 객관적 근거 없이 특정 성의 외모 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내용 등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내용의 의미를 구체화 ▲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방송 내용, 그 과정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선정적으로 재연하는 방송내용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성차별적 발언을 둘러싼 문제의식이 심의규정 개정으로까지 이어진 게 2017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일부 종합편성채널의 시계는 이와 전혀 상관없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몇몇 종편 프로그램에서는 시대에 역행하는 성차별적 발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달간 종편에서 언급된 문제 발언을 모아봤습니다.
남편 병간호하면 '한국 토종 여인'?
▲ MBN <뉴스&이슈>(6/26) 화면 갈무리 |
ⓒ 민주언론시민연합 |
이에 출연진인 이웅혁 건국대 교수는 "옆에 이른바 아내가 있어야 심부름 같은 것도 도와줄 수도 있고 밥도 좀 해줄 수 있다"라며 "이것은 계속 좀 유지하고 싶은 것"라고 답했습니다. 부인을 '밥 하고 빨래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 것입니다.
지난달 26일 방송에는 '룸살롱(유흥주점)'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홍종선 연예전문기자는 배우 최민수씨 부부가 신혼일 당시 룸살롱에 같이 간 사건을 언급하면서 "(배우자가) 이제는 룸살롱이 뭐 하는 곳인지 알 것"이라며 "일하러 (룸살롱에서) 만나는 거니까 이해하고 있을 것"라고 말했습니다. 방송에서 유흥주점을 두고 '일하러 가는 곳'이라고 옹호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 MBN <뉴스&이슈>(6/19) 화면 갈무리 |
ⓒ 민주언론시민연합 |
▲ MBN <뉴스&이슈> 출연자 백현주 씨의 발언 모음 |
ⓒ 민주언론시민연합 |
백 교수는 지난 달 19일 같은 방송에서 배우 이유리씨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리씨가) 촬영하는 동안 남편이 먹을 거를 장만해놔야 하니까, 나중에는 냉동고에다가 육수나 재료 같은 걸 6개월 치를 다 넣어놓고, 남편 속옷도 한 150벌 정도 사다 놓고 하면서, 남편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면서 일을 하려고 지극정성 해바라기 내조를 하고 있다."
이때 뉴스 자료화면에는 <'국민 악녀' 이유리, 남편에겐 '특급 내조'>라는 자막이 등장했습니다.
또한 백 교수는 배우 고 윤소정씨가 배우자의 병간호를 맡았던 사연을 소개하며 "한국 토종 여인의 모습을 갖춘 분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백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 토종 여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아이 낳고 남편에게 받은 1억이 '인센티브'?
▲ MBN <뉴스BIG5>(6/16) 화면 갈무리 |
ⓒ 민주언론시민연합 |
언론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윤영걸 전 매경닷컴 대표는 한 앵커의 말에 "남편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전략적인 거 아닌가"라며 "애는 많이 낳고 싶은데 부인이 싫어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나. 그러니까 인센티브(성과급)로 1억 원을 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윤 전 대표는 "와이프(부인)한테 1억 원을 준다고 해서 그 돈이 어디 가는가? 다 집 안에 있는 돈이다. 남편이 머리를 잘 잘 쓴 것"이라며 '인센티브'를 준 남편의 기지를 칭찬했습니다.
더 나아가 윤 전 대표는 "어느 기업 회장이 며느리와 사위에게 아이를 한 명 낳을 때마다 1억 원씩 주겠다"고 했다면서 "(그 기업 회장의 자녀들이 각각) 손자를 3명씩 낳았다고 자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나라가 출산율을 높이는 게 어떻게 보면 애국하는 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돈 줄 테니까 아이를 낳으라'는 식의 태도를 비판하기는커녕 진행자와 출연자가 함께 이를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풀어나간 것입니다.
▲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6/27) 화면 갈무리 |
ⓒ 민주언론시민연합 |
이같은 발언들은 방송심의규정 제30조(양성평등)의 1~3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조항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①항 :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항 : 방송은 특정 성(性)을 부정적, 희화적, 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여서는 아니된다.
③항 : 방송은 특정 성을 다른 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다루거나 객관적인 근거 없이 특정 성의 외모, 성격, 역할 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
혹시 그들이 이러한 상식적인 수준의 규정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모니터 기간·대상 : 2017년 5월 30일~6월 30일 채널A, MBN, TV조선의 4개 프로그램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좀더 자세한 내용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