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자판기 ①] '서민의 친구' 300원짜리 밀크커피, 어디 가서 먹지?

2017. 7. 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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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온커피, 여름이면 냉커피
-서민친구 커피자판기 계속 없어져
-2년새 1만개 감소, 13년전의 4분의1
-상점제한 학교ㆍ유적지서 명맥유지
-이색자판기 선보이며 반등 노리지만…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푹 찌는 여름날,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타고 오른다. 시원한 냉커피 한잔, 톡 쏘는 탄산음료 한 캔이 간절하다. 자연스레 음료 자동판매기(자판기)를 찾는다. 그런데 주위를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고급커피 300원, 우유와 밀크커피는 200원’. 겨울이면 따뜻한 커피, 여름이면 얼음 띄운 냉커피를 판매하던 커피자판기는 종적을 감췄다. 사람 많은 도심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비자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판기 대신 편의점을 방문한다.

한국 자판기 업계는 시장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소비자들의 취향은 다양해지는데, 국내 자판기시장은 오랜 시간 커피와 음료자판기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과자류를 판매하는 멀티 자판기도 시장에 등장했지만, 아직까진 영향력이 크지 않다. 전국 3만여개에 달하는 편의점들과 5만여개의 커피전문점들은 자판기 시장이 쇠퇴하는 데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원인이다.

[사진설명=한국 자판기 업계는 시장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단 평가가 많다. 소비자들의 취향은 다양해지는데, 국내 자판기시장은 오랜 시간 커피와 음료자판기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역사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300원대에 고급커피를 판매하는 자판기 모습.]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발행한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른 2015년 전국의 식품자동판매기(자판기) 개수는 3만4556대. 지난 2013년에는 4만3778대였지만, 2년새 1만대 가까운 자판기가 우리곁을 떠났다. 자판기 대수가 역대 최고점을 찍은 것은 지난 2003년이다. 당시 12만4115대였던 자판기 개수는 현재 27.8%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자판기 생산업체도 롯데기공과 로벤 단 두 개사만이 남았다. 감사보고서를 통해 실적이 공개되는 로벤의 지난해 매출액은 61억5643만원. 전년 대비 24.6% 감소했다.

아직 자판기를 운영하는 업체들은 많은 편이나 숫자는 줄여가는 추세다. 롯데칠성과 동아오츠카ㆍ동서식품과 같은 음료회사, 지하철 자판기를 운영하는 홍익회, 이외 중소형 업체들이 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다. 남은 자판기의 상당수는 학교나 관광지, 또는 지하철 역 안에 위치한다. 교육시설과 문화유적지, 지하철 플래폼 안은 소매상가 입점에 제한이 걸린 경우가 많다. 자판기가 좋은 대안이 된다. 하지만 위생관리와 매출부진으로 시름하고 있다. 

[사진설명=지난 5일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찾은 유일한 자판기는 종로구청 안에 있었다. 종로구청 주차장 입구에 위치한 음료와 커피자판기 모습.]


[사진설명=성균관대학교 경영관 옆 벤치에 위치한 음료자판기. 자판기 두 대가 설치돼 있던 해당 슬롯에는 이제 한 대만이 남아 슬롯이 텅 빈 느낌을 줬다.]

가장 감소폭이 큰 것은 커피자판기다. 자판기 업계에 따른 지난해 커피자판기의 생산 규모는 전체의 약 15.0%. 해마다 그 비중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커피전문점과 편의점 점포수 증가에 영향을 받았다. 커피전문점 수는 전국에 약 5만점, 편의점은 3만여 점포를 넘어섰다. 소비자들은 이제 저렴한 자판기 믹스커피보다,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원두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자판기 업계는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자와 빵류를 판매하는 멀티자판기의 보급이다. 현재 시장 비중은 20~30% 규모에 달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자판기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촌과 홍대, 젊음의 거리 인근에서는 마른 꽃을 판매하는 ‘꽃 자판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데도 시들지 않은 꽃을 내놔 인기다. 기차역 용산역에는 바나나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직장인들의 왕래가 잦은 만큼, 식사 대용 바나나를 공급하면서 틈새시장을 노렸다. 또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한 무인스터디카페에서도 자판기를 활용한 영업이 진행되고 있다. 자판기를 통해 이용료를 결제하고, 카페 음료도 자판기로 뽑아 먹는다. 사과와 피자 자판기도 등장했다.

[사진설명=용산역에 위치한 바나나 자판기의 모습.]

하지만 부활을 노리는 자판기 업계에 이들 이색 자판기가 반등요소가 돼줄 지는 미지수다. 자판기에서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아직 음료 자판기다. 음료자판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색자판기가 선전한들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카페와 편의점 사업을 노리는 소규모 창업자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판기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많은 역사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자판기가 사라져가는 게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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