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전문가 없는' 방통위..방송위로 돌아가나

임성현,조희영 2017. 7. 4. 17: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기 방통위에 ICT 전문가 전무..역대 위원도 미디어 출신 일색
700㎒ 주파수 지상파 배정 등 방송·통신 융합 역주행 논란 '정당간 나눠먹기' 개선 목소리
문재인정부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이효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4일 기자들과 만나 "방송을 확 바꾸는 개혁보다 방송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하고 정상으로 되돌아가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말이었다. 하루 전 청와대가 "방송 개혁을 주도해온 대표적 언론학자"라고 그를 소개한 것과 같은 맥락의 한마디다.

그는 "새로운 통신 기술을 방송에 녹여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방송과 통신 융합에 대한 생각도 피력했다. 이 후보자는 "통신요금을 낮춰 이용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정부의 통신비 인하 의지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은 앞으로 3년간 방통위가 어떤 자세로 방송 시장을 대할지에만 주목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은 보이지 않는다. 이 후보자 이력이 시장의 이런 추측을 짐작하게 한다. 이 후보자는 오랫동안 방송 등 미디어 분야에서 활약해온 언론학자다. 방통위의 또 다른 한 축인 ICT 경력은 전무하다. 그는 방송학회장,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실상 방송 전문가다.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 5명으로 구성되는 방통위 상임위원회의 네 자리가 채워졌다. 하지만 현재 상임위원인 고삼석·김석진 위원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추천된 허욱 전 CBSi 대표까지 모두 방송·미디어 경력만 있을 뿐이다. 남은 상임위원 한 자리가 국민의당 몫이긴 하지만 정당 추천임을 감안하면 ICT 전문가가 차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방송·미디어 일색의 상임위원들로 구성된 방통위가 출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방통위가 과거 방송위원회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이 상임위원에 임명됐다가 곧바로 미래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나마 완충 역할을 해주던 ICT 전문가 명맥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1~3기 방통위에서는 정보통신부, 방통위 등 공직자 출신 상임위원들이 포진하면서 적어도 구색을 맞췄는데, 이번 4기 방통위에선 이마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출범한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 융합이라는 시대적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과거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결합돼 탄생했다. 하지만 4기 체제까지 1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적어도 인력 구성 면에선 과거 방송위 시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역대 위원장들을 보더라도 최시중·이경재 전 위원장 모두가 언론인 출신이다. 직전 최성준 전 위원장은 판사 경력이 전부다.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으로 KT 대표, 정보통신진흥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낸 이계철 전 위원장이 유일한 ICT 전문가다. 상임위원들 역시 일부 공직자 외에는 방송·미디어 출신이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1기 때는 상임위원 4명 중 미디어 분야 송도균·이경자 위원과 함께 ICT 분야 형태근·이병기 위원으로 구성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2기에 들어 홍성규·김충식·양문석 위원 등으로 미디어 분야 출신이 수적 우위를 점했다. 3기 역시 김석진·허원제·김재홍·고삼석 위원 등으로 구성돼 ICT 출신은 소수파에 그쳤다.

박덕규 목원대 정보통신융합공학부 교수는 "미래부는 통신, 방통위는 방송으로 역할 분담이 된 것처럼 비칠 정도로 외형으로만 보면 방통위는 방송 업무만 담당하는 것처럼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도 통신보다는 방송 안건이 더 많아지면서 방송 쪽이 더 큰 힘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당 입김으로 상임위원이 정해지다 보니 방통위가 사실상 여야 정치권 대리인들이 정쟁을 벌이는 장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방통위를 방송 등 언론 장악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해온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방통위가 사실상 방송위로 전락하다 보니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방송 우위 패러다임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표적인 것이 2015년 7월 방송과 통신이 한판 승부를 벌였던 700㎒ 주파수 논란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차세대 UHD 방송을 위한 주파수로, 이동통신사들은 급증하는 모바일 트래픽에 대응하기 위한 자원으로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700㎒대역의 총 108㎒폭 중 이미 40㎒를 정부로부터 약속받았던 통신사들은 방송계 공세에 떠밀려 추가 폭을 확보하기는커녕 그마저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결국 통신사들은 가까스로 40㎒를 지켰지만 지상파 5개 채널에 30㎒를 내줘야 했다. 당시 통신사들은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700㎒대역이 통신용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방송계의 압박에 '황금 주파수'는 기형적으로 쪼개져버렸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논란 끝에 확보한 UHD 대역은 현재 주파수만 있고 시청자는 없는 '껍데기'로 전락했다. 방통위는 당초 2월 개국을 약속했지만 방송사들이 제작비 부족을 이유로 앓는 소리를 하자 5월 말로 연기해줬다. 지난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때도 방통위에서는 통신자본이 방송을 장악하면 방송 지역성과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우려를 일부 수용하며 합병에 부정적 기류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방통위가 방송과 통신이란 영역별 대표성을 가진 인사들로 채워져야 전문성을 발휘할 텐데 지금처럼 편중된 구조는 상당한 문제"라며 "특히 통신, 인터넷 등 새로운 산업을 이해하는 상임위원들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현재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상임위원을 선정하는 '나눠 먹기 식' 추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교수는 "방통위원은 3년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며 "정당들이 나눠 먹는 지금과 같은 구조를 바꿔 방송, 통신 등을 대표하는 관련 업계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성현 기자 / 조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