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보에 막혀서.. 한국은 '빅데이터 낙오자'

박유연 기자 2017. 7. 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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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빅데이터 전쟁 중

글로벌 기업 29%가 빅데이터 활용

스마트폰 사용 분석해 신용평가

카드 결제 정보로 3억달러 매출

칫솔 속 칩으로 치아보험료 갱신

한국 '21세기 금광' 놓칠라

2014년 정보유출 후 엄격한 규제

기업 내부서도 보안으로 통제

<上> 한국 도입률 불과 5%뿐

케냐의 인터넷 대부 업체 '브랜치닷코'(Branch.co)는 이 나라에선 파격적인 연 6~12% 금리 대출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경쟁 회사의 대출 금리 연 25%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비결은 확 낮춘 신용 정보 확인 비용에 있다. 케냐는 IT 인프라가 부족해 전산으로 개인 신용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 브랜치닷코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출 신청자의 스마트폰에서 문자메시지, 이메일, 위치 정보, 소셜미디어, 카드 결제 내역 등을 수집해 신용 평가에 활용하는 것. '받은 메시지보다 보낸 메시지가 많은 사람은 신용도가 낮음' '배터리 소모가 빠를수록 신용도가 낮음' 같은 기준을 적용해 신용도를 평가한다. 브랜치닷코는 간편한 신용도 확인으로 대출 원가를 확 낮출 수 있었고, 대출 금리도 낮추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남아공에 본사를 둔 생명보험사 '디스커버리'(Discovery)는 '바이탈리티'(Vitality)라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으로부터 개인 정보를 받아 보험료를 책정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보험계약자의 식습관, 운동 여부, 건강 관련 물품 구매 등 정보를 수집해 보험료 할인 등을 해주면서 지역 보험 시장의 30%를 휩쓸고 있다.

인터넷에서 실시간 양산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가공해 신상품과 신사업을 만드는 '글로벌 빅데이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빅데이터 거래 시장 규모는 올해 434억달러에서 2026년 846억9000만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원유' '금광'으로 불리는 빅데이터 시장에서 자칫 한국만 낙오될 위기에 처해 있다.

◇나도 모르는 개인 정보

미국 JP모건은 자사 신용카드 고객의 거래 내역을 분석한 정보를 판매한다. 고객 트렌드 분석이 필요한 기업들이 구매한다. 마스터카드는 고객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판매해 작년 3억4000만달러 매출을 올렸다.

모두 한국에선 할 수 없거나 제한이 많은 일들이다. 한국은 2014년 개인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강력한 정보 보호 국가가 됐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20여개의 관련 법으로 개인 정보 활용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크게 두 가지 제한이 있다. 첫째, 소비자로부터 개인 정보 수집 및 활용을 '사전에' 동의받아야 한다. 둘째, 개인 정보의 정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폭이 넓다. 웬만한 정보는 동의받지 않고는 수집·활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가 승용차마다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그 번호를 개인 정보의 일종으로 보고 수집·활용을 제한한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계약자 차량의 일련번호를 알면 긴급 제동 장치 같은 안전장치 부착 여부를 통해 보험료를 할인해줄 수 있는데,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파악하지 못한다"며 "고객 스스로 안전장치 부착 여부를 알린 경우에만 보험료 할인이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글로벌 빅데이터 산업… 한국은 소외

미국·일본·EU 등은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하되 소비자가 거부한 경우에만 활용을 중단토록 하거나 사전에 개인 정보 활용을 동의받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또 사회보장번호처럼 개인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정보만 개인 정보로 보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첫째가 다양한 신상품 출시다. 미국 자동차 보험사 '프로그레시브'는 계약자 차량에 운행 기록 장치를 장착한다. 과속, 신호 위반, 급가·감속 같은 운전 습관 정보를 누적해 다음 보험료 산정에 활용한다. 미국 스타트업 빔 테크놀러지스(Beam Technologies)는 자체 개발한 '커넥티드 칫솔'과 연계한 보험 상품을 판매한다. 칫솔질할 때마다 칫솔 속 칩을 통해 실시간으로 치아 건강 정보를 파악해 치아보험의 보험료 갱신에 활용한다.

둘째가 신용도 평가다. 온라인 쇼핑 정보, 임대료 연체 여부 등 정보를 통해 고객 신용도 평가의 정확성을 높인다. 성실한 소비자는 대출금리 할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가 신사업 출현이다. 미국 등에선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진 금융거래 정보를 통합 분석·관리하는 사업 모델이 새로 등장했다. '데이터 브로커'란 이름으로 소비자의 개인 정보를 수집·가공·판매해 돈을 번다.

전 세계적으로 5000개 넘는 기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가 이종(異種) 기업 간 제휴 확산이다.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중국 7개 은행과 제휴해 무담보 중소기업 대출을 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은행들이 기업 정보를 공유해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험 사기 예방, 자금 세탁 추적 등 공익 목적에도 빅데이터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이런 흐름에서 크게 소외되고 있다. 글로벌 조사 기관 '테크프로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글로벌 기업의 29%가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도입률이 5% 수준이다. 국책 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같은 선진국은 배상 등으로 기업이 책임지도록 하고 개인 정보 활용은 폭넓게 허용한다"며 "우리는 개인 정보 '보호'에 집착해 기업 내부도 활용하기 힘든 '보안' 수준으로 왜곡돼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데이터. 그 규모가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하다. 온라인 쇼핑 결제 기록, 트위터 글, 인터넷 기사 댓글, 검색 기록, 사이트 가입 때 기입한 개인정보 등 본인이 남긴 모든 자취가 빅데이터로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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