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들개'의 탄생..개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2017. 7. 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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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서울 '백사마을' 르포
재개발 앞두고 사람은 떠나고
개들은 점점 혼자가 되어간다
1주일 한두 번 주인 기다리지만
언젠가 버려질 운명인 걸 알까

들개가 등산객 위협한다지만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유기견
중성화 수술과 동물 등록으로
발생과 유입 연쇄고리 끊어야

[한겨레]

6월2일 서울 중계본동 백사마을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개가 고개를 내밀었다. 주인은 자주 들르지 않고, 개만 사는 곳도 적지 않아 보였다. 남종영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백사마을은 한여름 뙤약볕을 맞고 있었다. 이주민이 떠난 서부 식민지처럼 재개발을 앞둔 산동네의 낮은 적막하기만 했다.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104번지라 ‘백사마을’이다. 빛바랜 간판과 먼지가 들어앉은 식당과 미용실 그리고 2~3m의 낮은 집들이 힘겹게 산을 오르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마을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불암산에서 내려온 7마리의 들개들도 소리를 보탰다. 개들이 어떻게 산에 들어갔는지 사람들의 말은 엇갈린다. 들개들을 쫓아내는 게 일인 임병식(74)씨(중계본동 2통장)의 말이다.

“주인이 중풍으로 몇 년 고생하다가 1년 전 쯤 입원한 이후로 관리를 못 해주다 보니 결국 산으로 갔어요.”

북한산의 산줄기가 도봉산에 이르고 건너편 수락산과 불암산에서 백사마을을 껴안았다. 네 산의 계곡에는 들개들이 숨어 산다. 들개들을 생산하는 건 산동네에 불어닥치는 재개발 열풍이다.

일주일에 한번, 주인은 언제 올까

재개발은 아파트도 만들지만, 유기견도 만든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개가 남는다. 어떤 개들은 차에 치여 죽고, 어떤 개들은 꼬드김을 당해 보신탕집에 팔려가고, 어떤 개들은 유기견보호소로 이송돼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들은 산에 들어간 ‘들개’들이다.

지난 5월29일부터 6월2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시 반려동물중성화센터사업단의 자원봉사자들이 백사마을 가가호호를 방문해 반려견의 중성화 수술 신청을 받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서울시가 함께 벌이는 ‘들개 예방 프로젝트’의 주춧돌 작업이다. 시범사업 지역 세 곳이 선정됐다. 이곳 백사마을과 갈현동(갈현1지역), 불광동(불광5지역) 등 재개발을 앞둔 산동네 반려견들에 중성화 수술을 해서 재개발 이후 무분별한 번식을 막자는 취지다.

6월27일 오후 백사마을 골목길을 한 황구가 지나가고 있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6월2일 김성호 한국성서대 교수(오른쪽)과 서울시 반려동물중성화센터사업단의 자원봉사자들이 반려동물 조사에 앞서 준비 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6월2일 오후 자원봉사자 김가영(54)씨와 신솔(21)씨는 “며칠째 주인을 못 봤다”며 다시 산동네를 걸어 올라갔다. 중계로 4길 ‘공가’로 표시된 집 뒷마당 건축폐자재 더미 사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성견 4마리와 새끼 6마리가 짧은 개줄에 묶여 있었다. 며칠째 굶은 듯했다. 김씨가 말했다.

“소음도 나고 보기 안 좋아서 주민들의 민원이 많았다고 해요. 오늘도 안 계시네요.”

사료와 물을 가지고 다가가니, 어미 개가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밥그릇에 앉아 있던 파리떼가 날아갔다. 10분 만에 어미 개가 두 그릇을 비우자, 새끼들이 젖을 빨기 시작했다.

들개는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다. 멀쩡한 개가 유기견이 되는 데에도, 유기견이 각기 다른 운명에 처하는 데에도 복잡한 양상과 다양한 경로가 있다. 김영환 중성화사업단 전수조사팀장이 말했다.

“백사마을만 해도 이미 많은 주민이 떠났어요. 다른 곳에 이사를 간 사람이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텃밭 가꾸고 개밥 주고 가는 거죠.”

약 1000여가구가 백사마을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실거주 가구는 이보다 한참 못 미친다. 공인중개사를 하는 엄태운(45)씨는 “임대아파트나 주택을 지원해주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은 주거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소지만 둔 채 투자 목적으로 관리하면서 재개발을 기다리는 이들도 상당수다. 역설적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며 굶주리는 개가 백사마을의 ‘실거주자’다. 사람은 산동네를 뜨지만, 개들은 뜨지 못한다.

가파른 불암산 기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용산, 청계천, 안암동의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심 개발에 따라 이곳으로 강제 이주됐다. 미아리 철거민이었던 옥옥순(85)씨는 6월26일 “처음 왔을 때는 다닥다닥 붙은 집집마다 사람도 있고 했는데, 지금은 다 나가서 절보다 더 조용하다. 젊은 사람들은 일 나가고 없고, 노인네도 몇 사람 안 남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떠난 것은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재개발 논의가 불붙기 시작한 2008년부터다. 그 뒤 “개발된다고 하고부터는 수시로 팔고 나가고” “빈집이 많아져 누구 집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주변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와서 개를 몰래 버리고 가는 일도 벌어졌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임병식씨는 “좀 크면 처치 곤란하니까 이곳에 버린다. 주인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개가) 없어지는 일이 허다했다”고 말했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사는 개. 사람이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 며칠째 굶주린 듯 보였다. 6월2일 사료를 말끔이 비운 어미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렸다. 남종영 기자
백사마을의 한 사찰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유기견들을 거둬 키우고 있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들개가 아니라 유기견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북한산국립공원 구역 안에 들개 30~60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5년 94마리, 지난해 78마리를 포획했지만, 주변 민가에서 유기견이 지속해서 유입되면서 개체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정상욱 북한산 자원보전과 팀장이 말했다.

“포획틀에 걸리는 개들은 이제 막 산에 들어온 신참이에요. 노회한 개들은 다 알고 안 들어갑니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마취총을 이용해 노회한 개들을 포획할 수 있었어요.”

정 팀장은 이들을 ‘들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딩고’처럼 야생에서 자급자족하는 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산로 입구 식당가로 몰려가 쓰레기를 뒤지고, 등산객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음식을 구걸한다.

“등산객이 ‘고수레’ 하고 던져주는 과일, 바나나 껍질, 김밥 덩어리를 먹고 살아요.”

그가 다시 힘주어 말했다.

“들개가 아니라 유기견입니다. 따라서 발생과 유입 자체를 막아야 합니다. 개의 보호자를 알 수 있도록 내장형 칩도 박아야 하고요.”

이런 개들이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일은 드물지만, 덩치 큰 개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다. 정 팀장은 “대형견 10마리가 몰려다니는 걸 봤는데, 그게 가장 큰 무리였다. 그때는 나도 무섭긴 하더라”고 말했다. 소형견들도 산에 들어오지만, 대형견들에 밀려 사라진다. 등산객과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서울시도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포획 작업에 나섰다. 불암산, 관악산, 북한산 등에서 지난해에만 163마리를 잡았다. 이렇게 잡힌 개들은 유기견보호소로 인계되지만, 사나운 들개를 입양하는 사람은 없다. 십중팔구 안락사 된다.

6월2일 김영환 서울시 반려동물중성화센터사업단 조사팀장이 중성화 수술 지원 사업 안내문을 끼워넣고 있다. 남종영 기자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중성화사업단은 백사마을 조사 결과, 조사에 응한 943가구 중 96가구(10.2%)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9가구(개 42마리, 고양이 4마리)는 중성화 수술과 내장형 마이크로칩 등을 통한 동물 등록에 동의했다. 백사마을에서 마을 만들기 활동을 벌여 온 김성호 성서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는 “재개발촌에서 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8일에는 백사마을 자원봉사자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백사마을에서 구조한 리트리버 믹스(혼혈종) ‘곰순이’가 입양가족을 만났기 때문이다. 조사 중 만난 한 주민이 일자리를 찾으러 지방에 내려가게 돼 25만원에 개장수에게 팔겠다고 한 반려견이다. 김혜란 카라 이사가 말했다.

“2주일만 시간을 주면 해결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설득해서 입양처를 급히 수소문했지요. 30㎏ 덩치의 큰 개라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서울 연희동의 한 가정에서 받겠다고 했어요.”

평생 1m 목줄에 묶여 살아 산책도 어색해하던 곰순이는 이날 밤 새 가족을 만났다. ‘아람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한 곰순이는 들개로 전락할 운명에서 벗어났다.

남종영 기자, 임세연 교육연수생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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