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원 "인생경기요? 브롬달 꺾고 세계대회 우승한거죠"

2017. 7. 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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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빌리어드뉴스 창간 인터뷰] 최성원-②
"경률이 세상 떠난 후 당구에 회의감..최악 슬펌프"
"4대 천왕 열정 대단..쿠드롱은 '당구환자' 수준"
"가족이 힘..여섯살 딸도 아빠 유명선수인지 알아"

<1회에서 계속>

▲승부사가 말하는 승부사의 노하우

하이런 26점. 최성원이 보유한 국내 하이런 기록이다. 2014년 8월 춘천국제레저경기대회 전국 3쿠션 오픈에서 작성됐다. 세계기록은 레이몬드 클루망의 28점(비공식 37점). 이처럼 몰아치기에도 강한 승부사가 본인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시합에 들어가면, 시야에 테이블만 남기도록 노력해요. 그 테이블 위에서 공격방법, 공격 후 볼 배치, 수비 등을 계속 시뮬레이션 해봐요. 그러다 최선의 길이 보이면 비로소 샷을 합니다. 모든 샷은 이 과정을 꼭 거친 후에 실시해요.”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템포를 느리게 가져간다. 본인만의 심호흡법이다.

“테이블에서 2~3발자국 떨어져 테이블 전체를 바라봐요. 일부러 인터벌을 길게 갖고 경기 템포를 늦게 가져가는 것이죠. 그러면 평소 연습한 길이 보여요.”

박빙의 순간에는 자기최면을 건다.

“한 큐만 오면 어떤 배치라도 쉽게 득점할 수 있다고 계속 되뇝니다. 자신감을 찾기 위한 방법이죠. 좋은 스트로크는 자신감 없이 절대 구사할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설명하는 그는 평소보다 더 진지했다. 기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큐를 들고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선했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테이블을 응시한지 단 3초만에 '승부사'의 눈으로 바뀌었다.

이런 승부사 최성원에게 ‘인생경기’를 물었다.

“아무래도 2014 세계선수권 결승이죠. 그 강한 브롬달을 꺾었잖아요. 많은 분들도 그 경기를 제 '인생경기'로 꼽으시더라고요. 경기 후에 감정표현을 크게 하는편이 아닌데, 그땐 우승이 확정되자 저도모르게 환호했어요. 선수생활 중 그렇게 기쁜건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최성원은 16강 다니엘 산체스, 8강 에디 먹스, 4강 서현민을 차례로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선 자타공인 세계최고 당구선수 토브욘 브롬달(스웨덴)마저 40:37로 꺾었다. 승부사답게 숨 막히는 접전 끝에 역전승을 해냈다. 세계 랭킹이 6위에서 단숨에 1위로 올랐다. 한국 당구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에 힘입어 이듬해 2월, UMB ‘2014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당시 경쟁후보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은 190표, 토브욘 브롬달은 171표를 얻는데 그쳤다. 최성원은 216표.

▲2015년, 짧았던 영광...그리고 경률이

축제분위기로 2015년을 시작한 최성원. 그해 2월 23일 그는 벨기에 안트워프에 있었다. 월드슈퍼컵 출전 때문이다. (슈퍼컵은 한해 3~5차례 치러지는 월드컵 당구대회 성적 최우수자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가 7점제 7세트 경기를 벌여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최성원은 세계선수권 챔피언 자격으로 월드컵 종합점수 1위인 쿠드롱과 붙어 세트스코어 1대 4로 패했다.)

그때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강동궁이었다. 수화기 넘어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형, 경률이가 죽었어요.”

충격 속에 곧바로 짐을 싸 귀국했다. 사실이었다. 친했던 동생은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5일장 동안 내내 그는 통곡했다. 김경률은 그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동생이지만 존경했고, 넘어서야 했던 롤 모델이었다. 서로 선의의 경쟁을 했지만, 사석에선 친동생처럼 친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최성원은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그러다 "휴"하고 한숨과 함께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청천벽력이란게 이런건가 싶더라고요. 슬픈 감정들이 차츰 지나가고 나니 사람이 멍해지더라고요. '내가 왜 당구선수를 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선수로서 목표의식도 없어졌고요. 게임에 대한 간절함이 없으니 게임이 잘 풀릴리가 없죠. 딱 그 시점을 계기로 제 슬럼프가 왔어요.”

부진이 계속됐다. 세계랭킹과 국내랭킹이 계속 하락했다. 선수생활 중 최대 위기였다. 최성원은 화려했던 기억을 머리속에서 지웠다. 초심을 생각했다. 당구에 푹 빠졌던 예전 자신을 떠올렸다. 그러자 경기가 조금씩 풀렸다. 작년(2016년) 11월엔 대한체육회장기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자신감을 얻었다. 다음 목표는 세계팀3쿠션선수권이었다. 동생 김경률에게 꼭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 2008년 그는 김경률과 함께 세계팀3쿠션선수권 3위에 오른 바 있다. 좋은 성적이지만, 경기 후 둘은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4강에서 단 한 점이 모자라 스웨덴(브롬달·닐슨)에게 결승행을 내준 것이었다.

그리고 9년 후, 김재근과 팀을 이룬 최성원은 올해 3월 열린 세계팀3쿠션선수권대회에서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결승상대는 세계최강 벨기에(쿠드롱·보톰).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통했는지, 결국 40:34 승리를 이뤄냈다.

최성원은 MK빌리어드뉴를 통해 뒤늦게 나마 하늘에 있는 김경률에게 소감을 전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마음을 다잡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려니까 쑥스러운데... 경률아. 너와 못이뤘던 세계팀3쿠션선수권 우승 해냈다. 앞으로 내가 선수생활 하는동안 거기서 나 잘하는지 계속 지켜봐주라. 그리고 항상 내 마음속에 네가 있다는 걸 알아줘.”

올해 세계팀3쿠션선수권 우승으로 또 한번의 최초 타이틀을 추가한 최성원에게 은퇴시기를 묻자 "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큐를 못 잡을 때가 아니면 힘닿는데까지 할 생각이란다. 그러면서 롤모델로 4대천왕을 예로 들었다. 그들에게 당구에 대한 열정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

“당구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삶의 모든 사이클을 당구에 맞춰 살거든요. 쿠드롱은 선수들끼리 농담으로 ‘당구환자’라고 해요. 큐를 보면 치지않곤 못 배기거든요. 그런 열정이 지금의 4대천왕을 있게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혹의 ‘가장’ 최성원의 힘 ‘가족’

불혹의 나이. 자기관리에 신경쓸 때다. “요즘 체력이 떨어졌음을 부쩍 느낍니다. 10년 넘게 국내외 대회를 오가면서 식사를 자주 거른게 체력저하로 나타나는거 같아요.”

2012년엔 부상으로 고생한 경험도 있다. 어깨 회전근이 파열됐다. 처음당한 큰 부상이었다.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어깨를 들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재활하고 두 달 만에 경기에 나섰다. 무리였다. 몸 균형도 망가졌고, 성적도 안 좋았다.

심신이 지칠 때 그는 가족을 생각한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미소가 가족 이야기에 나왔다. 특히 6살 딸 보경 양을 말할 땐 활짝 웃었다. 벌써 아빠가 유명선수인걸 안단다. 그의 아내는 최근 잔소리가 늘었다. 선수로서 가장으로서 그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최성원은 이런 가족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해요. 딸 보경이는 요즘 한창 아빠가 필요할 나이거든요. 그래서 시합을 덜 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어깨에 '가장'과 '한국대표 당구선수'란 짐을 짊어진 그는 요즘들어 그 짐의 무게가 더욱 묵직해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최성원은 이내 선수로서의 각오를 밝혔다.

"그래도 당구선수는 제 직업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도움주시는 모든 분들,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기에 큐를 놓지 않을 것입니다.”

7월 3일부터 7일간, 올해 네 번째 포르투 월드컵이 열린다. 세계 16위로 Q라운드부터 시작하는 최성원은 한국인 첫 월드컵 2회 우승, 한국의 올해 첫 월드컵 우승에 도전한다.

“입상이 쉽진 않겠지만 자신없는건 아니에요. 5월 호치민월드컵에선 16강 탈락했지만, 평균 애버리지는 2점대로 높았어요. 6번째 ‘최초’ 타이틀, 쉽지 않겠지만 해보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사실 그는 인터뷰가 힘든 상황이었다. 쉴틈없는 대회일정에, 3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픈한 당구장, 여기에 최근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 걱정까지. 인터뷰 중간 쉬는 동안에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만큼 바쁘고, 신경쓸것들이 많아 조금 힘드네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MK빌리어드뉴스를 반겼다.

“당구선수는 미디어에 대한 목마름이 강해요. 무명선수들은 더 그렇죠. 저처럼 제법 알려진 선수들이 언론에 꾸준히 나와야 무명선수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요. MK빌리어드뉴스가 조금 빛나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선수들을 조명하고, 더불어 당구인들이 원하는 소식을 정확히 전달하는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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