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Man, Easy Man.. DJ와 盧의 수모 재연될까

권경성 2017. 6. 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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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

진보ㆍ보수 만날 때 뒷말 많아

MB 골프ㆍ朴 산책으로 공감대

편한 분위기 조성 성과 극대화

“상대방 결례 자책은 사대주의

전향적 대북 합의 초점 맞춰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간 상견례 및 만찬에서 담소하고 있다. 워싱턴=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수 색채가 확연하다. 과거 한미 정상회담이 이 같은 진보와 보수의 조합으로 치러진 경우 유독 뒷말이 많았다. 특히 괴팍하고 제멋대로의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 3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연이은 결례로 찬물을 끼얹었다. 2001년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디스 맨(this man)’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이 양반’ 정도로 해석돼 ‘하대’ 논란을 빚었다. 김 전 대통령이 연장자여서다. 후일 자서전에서 김 전 대통령은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하나 불쾌했다”고 털어놨다.

2003년 5월 미국에 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지 맨(easy man)’으로 지칭됐다. 당시 우리 공보팀은 ‘대화하기 편안한 상대’라고 번역했지만, 원래 미국 측 통역이었던 ‘얘기하기 쉬운 상대’가 자칫 ‘만만한 상대’라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로잡은 결과였다. “53년 전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노 전 대통령이 한껏 예의를 갖춘 점에 비춰볼 때 ‘박대’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논란은 공교롭게도 한미 정부간 대북 접근법이 엇박자일 때 불거졌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 전 대통령은 대북 강경론자인 부시 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는 판단에 정상회담을 서둘렀지만, 미 정부는 적극 동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결례를 촉발했다는 해석이 불거졌다. 한미 동맹보다는 자주 노선을 중시했던 노 전 대통령도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돌출행동으로 치면 트럼프 대통령은 더할 듯싶다. 취임 8일 만에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통화했지만 예정된 1시간의 절반도 못 채우고 고작 25분 만에 “빌어먹을 최악의 통화”라고 외치며 끊었다고 한다. 3월 미독 정상회담 때는 옆에 앉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계속 손을 내밀며 악수를 제안했는데도 모른체하며 면박을 줬다.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태우고 골프 카트를 운전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스킨십 외교’로 소통 물꼬 터라

하지만 한미 정상간 첫 회담이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진 적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어김없이 ‘스킨십 외교’가 등장했다. 곧바로 껄끄러운 의제를 다루기보다 정서적 친밀감 형성을 통해 분위기부터 누그러뜨리고 기세를 몰아 회담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미국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전 대통령을 옆에 태우고 골프 카트를 직접 몰았다. 운전하던 이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자 부시 전 대통령이 “파인 드라이버(fine driverㆍ훌륭한 운전자)”라며 엄지를 치켜 들기도 했다.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가 당면 현안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1시간40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돌다 보니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됐고, 만찬 때는 10년 지기가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 때 이뤄진 산책 회동도 견고한 한미동맹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오찬 회담 직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 내 로즈가든 옆 복도를 산책하자고 제안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두 사람은 통역 없이 10분간 복도를 걸으며 가족 관계 등을 주제로 대화했다고 한다. 앞서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방한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깅을 통해 우의를 다진 것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정상회담은 말 한마디에 국익이 휘둘리는 극도의 긴장 속에 치러지는 만큼 정상 간에 교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 막힌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가령 같은 기업인 출신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ㆍ부시 전 대통령 둘 모두에게 골프는 친숙한 운동이었고, 기도(祈禱)도 서로를 친근하게 여길 수 있게 하는 공통 소재였다.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굵직한 의제를 다룰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감대 형성은 최우선 과제다. 특히 문 대통령 부모가 6ㆍ25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 때 미 해병대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한 피난민이라는 점은 대북 정책의 이견으로 자칫 삐걱댈 수 있는 한미 동맹을 결속할 좋은 자산이다.

두 정상 모두 야구 사랑이 각별하다는 점도 호재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954년 뉴욕 양키스 스타 조 디마지오와 결혼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일본 신혼여행 때 위문공연 차 방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영상을 이용해 한미 동맹을 환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두 대통령이 야구공을 주고받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건 외양보다 내실이라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 대통령의 결례까지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사대주의”라며 “분위기가 껄끄러워도 감수하고 전향적인 대북 정책에 합의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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