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이거 실화냐?' 갤러리 '진상' 천태만상

이은경 기자 2017. 6. 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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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골프대회에 갤러리가 몰린 모습. 사진은 특정 내용과 연관 없음. 사진=마니아리포트 DB

[마니아리포트 이은경, 김현지 기자] "사장님, 빨리 지나가 주세요."

2017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 중에 스타 플레이어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다. 장하나(BC카드)가 모 대회에서 티샷을 하기 직전, 가까운 시야에 갤러리들이 걸어다니자 이렇게 외쳤다. 이게 그대로 생중계에까지 잡히자 방송사 해설자와 캐스터는 "장하나 프로가 참 밝아요"라며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KLPGA투어는 연간 33개 대회를 치르고, 상금규모는 200억원을 넘었다. 남자골프 KPGA 코리안투어 역시 올 시즌 대회 수가 19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갤러리 문화는 여전히 미성숙하다.

캐디백 마음대로 들더니 "오, 무겁네"

KPGA의 한 투어프로 가족은 이달 초 SNS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플레이 중 "돈 많이 벌었다고 잘 나가네"라며 비아냥대는 갤러리의 인신공격을 참다 못해 올린 글이었다. 이 글에는 "18홀 함께 도는 것도 피곤한데, 옆에서 갤러리의 휴대폰 벨이 울리진 않을까, 욕하는 소리가 들려서 방해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더 힘들다"는 내용도 있다. 글 마지막에는 "캐디가 백을 메고 있는데 여자 세 분이 오더니 백을 마음대로 들어 보고 '오, 무겁네'하고 웃고 갔다. 시합 중 백은 선수, 캐디 외에는 만지는 거 아닙니다"라는 믿기 힘든 내용도 있다.

이달 초 한 투어프로의 가족이 SNS에 올린 내용.

골프 갤러리는 여타 스포츠와 달리 선수와 같은 공간, 바로 옆에서 경기를 본다. 그만큼 까다로운 매너가 요구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갤러리들은 여자 선수들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품평하거나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동반 플레이어에게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팬이 있어서 스타가 존재한다. 팬은 뭘 해도 왕이다'라는 생각으로 무장한 일종의 '갑질'이다.

퍼트 중에 성큼성큼 이동

최근 KPGA 코리안투어 대회 최종일에 일어난 일이다. 선수가 그린에서 퍼트를 하는 도중에 한 무리의 갤러리들이 그린 옆을 우르르 지나가면서 가까운 홀에 있는 챔피언조를 보기 위해 움직였다. 제지하는 진행요원도 없었고, 있다고 한들 그대로 따를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린 위 선수가 퍼트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에 갤러리들이 코스 옆을 우르르 지나가고 있다. 사진=김현지 기자

이 대회에서는 갤러리 주차장이 대회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됐는데, 그게 불편하다며 진행요원이 없는 코스 뒷길 좁은 차도에 불법주차를 너무 많이 해놓는 바람에 선수 및 대회진행 카트가 진입하지 못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무매너 갤러리'의 예는 이뿐이 아니다. 플레이 중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서 통화하는 갤러리가 있는가 하면 휴대폰 셔터 소리를 내면서 촬영하는 갤러리도 흔히 볼 수 있다. 골프 우산을 쓰고 관람하면서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거나 시도때도 없이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거슬리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일부 선수의 팬클럽은 티샷 전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기도 한다.

여자 대회에 비해 갤러리가 적은 남자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웃지 못할 진풍경도 있다. 갤러리보다 내장객(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의 다른 코스에서 라운딩하러 온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라운드를 마친 내장객들이 대회 최종일 후반에 우르르 대회장으로 몰려가는 일도 잦다. 대회 종료시 주최측이 갤러리 추첨을 통해 자동차 등을 주는데, 대회에는 관심이 없고 경품에 응모하기 위해 몰려가는 사람들이다.

점입가경. 올 시즌 초반에 열린 한 여자 대회에서는 클럽하우스 앞에서 관람객끼리 격한 싸움이 붙어 경찰차가 출동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올해 열린 한 여자 대회 도중에 클럽하우스 앞 경찰차가 출동한 모습. 말다툼과 몸싸움이 오가던 끝에 격앙된 한 갤러리가 "경찰 불러"라고 소리치자 다른 한 명이 진짜로 신고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차와 싸움 구경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지 기자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스포츠인 축구장에서는 맥주를 마시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지만, 귀족 스포츠인 골프와 테니스에서는 관람객이 매너를 지키면서 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과정 없이 해당 종목만 수입됐고, 특히 골프에서는 1990년대 이후 여자 스타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갑작스런 대중화 과정을 거쳤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도 출범 초기에는 관람문화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가족 단위 관중이 늘어나고, 경기 관람 방식 자체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골프 역시 이런 과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관람 문화가 자리잡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중요한 시점이다.

대다수 대회에 마셜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는 데다 어린 나이의 마셜들이 중장년층의 '진상 갤러리'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대회 주최측이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올해 한 여자 대회에서는 선수 팬클럽 멤버들이 해당 선수를 따라 클럽하우스 화장실까지 들어가 "힘내라. 밥은 먹었냐. 아픈 데는 없냐"며 응원을 하기도 했다. 일반 갤러리들이 클럽하우스에 마음대로 출입하는데 이를 제지하는 진행요원이 없었다는 것도 놀랍다.

현실적으로 관람객을 제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현장 통제를 더 강력하게 하거나 심한 경우 다른 갤러리를 위해 퇴장 조치까지 시킬 필요도 있다.

일본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일본 갤러리들의 질서정연한 관람 문화와 응원에 반했다"고 인터뷰하고, 이에 "그렇게 좋으면 일본으로 가라"라는 비아냥이 댓글로 붙는 현실은 씁쓸하다. '세계 최고의 선수층'을 보유한 한국 골프이기에 더욱 그렇다.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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