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축구장 전범기가 징계 받아 마땅한 이유

입력 2017. 6. 2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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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일본 측 정치적·차별적 메시지 없다 주장 의도가 없더라도 보는 사람 입장서 판단 혼잣말도 듣는 사람이 거북하면 성희롱

범죄는 기본적으로 고의적 행위만 처벌된다. 실수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거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는다.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의도치 않은 실수에 대해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등 매우 중대한 경우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행위에는 반드시 범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범죄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속한 커뮤니티 내에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평가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통상 그 커뮤니티 고유의 룰에 의해 징계의 대상이 된다.

● 성희롱은 범죄 아닌 징계 대상

‘성희롱’과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다. 성폭력이나 성추행은 범죄가 돼 형사적으로 처벌된다. 그러나 단순한 성희롱은 통상 범죄가 되진 않는다. 다만 부적절한 행위로 평가돼 징계의 대상이 된다. 심하면 커뮤니티 내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징계를 받기도 한다.

성폭력과 성추행은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판단기준이 된다. 그래서 과실에 의한 성폭력이나 성추행이라는 말은 성립되기 어렵다. 성희롱은 이와 다르다.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의지와 다르게 당하는 또는 보게 되는 상대방의 입장이 판단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부서에서 직원 단합을 위해 회식을 했다. 남자 7명, 여자 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 얼큰하게 취하자 남직원들은 남직원들끼리, 여직원들은 여직원들끼리 모여 각각 잡담을 했다. 그런데 남직원들끼리 이야기하는 중에 음담패설이 나왔다. 옆에 있는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된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평소 남직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하던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이 경우에도 성희롱이 될까? 정답은 ‘예스’다.

여직원들이 동석하지 않은 장소에서 남직원들끼리 일반적으로 성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닌 한 성희롱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적다. 그러나 그 장소에는 여직원들이 동석하고 있었다. 여직원들의 입장에선 남직원들의 대화가 듣기 거북할 것임에 틀림없다. 옆에 있는 동료 여직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님에도 성희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성희롱은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옆에서 듣거나 보는 사람, 듣게 되거나 보게 되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 보게 되는 상대방이 판단기준

올 4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삼성-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다. 경기 도중 일본 구단의 응원석에서 깃발이 하나 올라갔다. 흰색 바탕에 가운데 빨간 원으로부터 바깥쪽으로 빗살처럼 선이 그어진 깃발이었다. 제국주의시대 일본군이 사용한 전범기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장 안팎에서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 행위에 대해선 엄격히 징계까지 하고 있다. AFC에서도 일본 구단에 1만5000달러(약 1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1년 내 같은 행위가 발생할 경우 무관중 경기를 하도록 징계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본 구단에서 AFC에 항의성 질의서를 보낸 것이었다. ‘욱일기에 정치적 또는 인종차별적 메시지는 전혀 없다. 앞으로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욱일기는 풍어, 출산, 명절 축하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정부 관료의 주장도 더해졌다. 자신들에게는 정치적·차별적 의도가 없으니 앞으로 징계를 받지 않고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그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대는 AFC 챔피언스리그였다. 제국주의시대 아시아국가들은 욱일기 아래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는 그로 인한 분단체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피해국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생각한다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 상대방을 배려하는 응원이 필요

응원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힘을 돋우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상대팀을 흔들어 경기력을 감소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분명 상대방이 있는 행동인 것이다. 전범기를 흔드는 행위와 성희롱을 같은 위치에 놓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비치는 모습이 판단기준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의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행위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도 고려해야 한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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