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돌아온 김애란 "길은 잘 모르지만, 같이 가 볼까요"

이윤주 2017. 6. 29. 04: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편 7편 묶은 '바깥은 여름' 출간
단편 ‘풍경의 쓸모’의 한 대목에서 소설집 제목을 딴 작가는 ‘은’이라는 조사가 마음을 끌었다고,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의 아픔을 드러낸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남편이나 아이 잃은 주인공 등

상실 후 겪는 슬픔에 천착

특유의 유머, 냉소는 옅어져

“내 얘기 대신 동시대 사건서 영감

세월호 등 시대와 호흡할 수밖에

한발 뗐으니 차기작은 속도 낼 것”

‘믿고 읽는 작가’ 김애란이 5년 만에 신간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을 냈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단편소설 7편을 엮은 책은, 표지부터 각 소설의 발표 지면을 기록한 마지막 장까지 잘 짜인 음반을 연상케 한다. 닫힌 문을 그린 맨 첫 장은 다음 장에서 열린 문 그림으로 바뀌고, 그 다음 장을 넘기면 첫 소설 ‘입동’이 독자를 맞는다. “편집자 의견 10개 중 9개를 받아들인다”는 작가는 소설을 싣는 순서만큼은 홀로 정했다. 2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작가는 “(책 제목이) ‘바깥은 여름’인데 첫 장은 입동, 겨울이다”며 “독자와 손잡고 겨울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인물들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묻는 질문을 마지막 소설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세계에서 사라지는 언어,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1,000여명을 모은 가상의 박물관에 대해 쓴 ‘침묵의 미래’가 책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이 소설을 제외하고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얘기다. 또 이 소설을 뺀 6편 모두 2014년 하반기,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발표됐다. 주인공들은 다섯 살 난 아이를 잃거나(‘입동’), 세상에서 유일한 벗인 강아지와 이별하고(‘노찬성과 에반’), 또는 남편을 잃거나(‘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남자친구와 헤어진다(‘건너편’).

‘풍경의 쓸모’에서 지방대 인문학 강사인 주인공 이정우는 교수 채용 면접을 보고 어머니와 태국으로 효도관광을 떠난다. 행여나 대학에서 연락이 올까, 정우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 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이 대목에서 소설집 제목을 딴 작가는 ‘은’이라는 조사가 마음을 끌었다고,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의 아픔을 드러낸다고 했다. 작가는 “이제까지 낸 책 중에서 쓰는 속도, 묶는 속도가 가장 오래 걸렸다. 다음 책은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소설집 '바깥은 여름' 낸 김애란 작가. 홍인기 기자

-5년 만의 신간이다. 이전 소설집과 차이점이 뭔가.

“이전 책은 제가 경험한 게 많았는데, 이번 책은 제 경험보다는 동시대 사건이든 다른 사람 얘기든 보고 들은 것 위주로 썼다. 제 자신과 거리가 있는 얘기들이라 인물에 이입하는 속도도 오래 걸렸다. ‘비행운’(2011)부터 어려움을 느끼긴 했는데 이렇게 가는 방향이 맞으니까, 과도기라고 할까? 좀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 얘기 쓰는 과정에서 묶인 책이다.”

-소재는 어디서 찾나.

“개에 관한 얘기를 쓰면 신문 기사에서 ‘개도 꿈을 꿀까’ 같은 걸 찾는 식이다. 공부나 취재를 하다가, 마감 중에도 (소설 방향이) 바뀐다. 고생스러워도 헤매며 쓸 때가 재미있다.”

-어떤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작가가 있고, 특정 캐릭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도 있다. 김애란 작가는 소재, 메시지에서 살을 붙여 가며 쓰는 편인가.

“아주 거친 주제, 메시지를 갖고 시작하는데 거기 잘 어울릴 재료를 찾는다. 시작은 그래도 출발지, 도착지가 같아진 건 별로 없다. 목표를 갖고 달려가기 보다는 쓰면서 계속 소재가 주는 ‘이야기 충동’에 이끌린다. 이 소재가 왜 나를 건드렸는지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에 결과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어떤 작가가 플롯, 어떤 작가가 캐릭터에서 승부를 본다면 김애란표 소설의 핵심은 문장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소설에서 ‘은는이가’(조사)를 가장 신경 쓰는 작가 순위를 꼽자면 1순위가 김훈, 2순위 김애란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쓸 때 문장, 단어가 가진 어감과 이미지에 집중하나.

“늘 그랬던 거 같다. 문장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매체 자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내 직업의 기본 재료이고 수단이니까. 사람들이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매체는 많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등. 그렇다면 왜 굳이 활자로 이야기를 경험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인 셈이다. 나는 문장으로 미학을 만드는 사람이고, 문장으로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거다. 장식적 효과가 아니라, 문장의 배치, 숫자, 리듬, 조사... 한국어는 운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으니까. 거창한 건 아니고 (소설가로서) 기본 자세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신경 쓰나.

“내 경우 소설 초반 첫 리듬이 생겨야 다음 리듬도 생긴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초반 쓸 때 소리 내 읽는다. 숨 박자와 문장 박자가 맞도록. 한국어는 조사, 한글, 한자가 함께 있어서 단어 늘리고 줄이는 폭이 넓다. 같은 뜻이라도 리듬에 맞는 한자어, 순수한글을 고른다. 작가 문체는 말 그대로 작가의 몸과 함께 간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어울리는 호흡이면 그게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로 잘 읽히는 소설을 쓰면 작품이 번역될 때 이 장점이 소실될 텐데. 집필 때 번역을 염두에 두지 않나.

“사실 마감에 맞춰 써서 큰 그림은 못 그린다(웃음). 다른 사람 눈 의식하기 전에 제 내적 기준을 통과해야 하지 않나. 단편 작업은 그렇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마감 후에 반추할 때는 있다. 번역할 때 잘 호환되도록 의식하고 쓰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번역하기 어려울 거 같은데 번역하고 싶다’하는 미적 충동을 번역가에게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희곡은 소리 내 발음하는 말들을 쓴 글이다. 소설보다 공간 장악력이 뛰어나고, 선별된 단어들도 훨씬 구체적이다. 희곡 쓰기 훈련이 소설에 도움이 될 때가 있나.

“텍스트에 대한 거리감각을 배웠다. 무대미술, 의상, 연출, 배우가 각자의 입장에서 인물의 필연성을 설명해 달라고 말한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대사가 배우 입을 통해 들렸을 때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다(웃음). 내가 10번 고친 대본을 배우는 20번 30번 읽지 않나. 거기서 오는 뜻밖의 질문과 배움, 책임감이 있었다.”

소설집 '바깥은 여름' 낸 김애란 작가. 홍인기 기자

-쓸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읽을지를 염두에 두나.

“첫 독자는 나다. 나를 의식할 때 마감이 끝난다. 다만 ‘정말 그 입장의 인물은 어떻게 읽을까’ 하는 고민은 항상 한다. 어떤 정보를 소개할 때보다 어려운 게 이 정보를 바탕으로 거기 서 있는 인물을 그리는 거다. 반려견의 생애를 공부할 때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개의 마음, 개를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을 상상하는 게 훨씬 어렵다.”

-발표한 단편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으며 많이 바꿨나?

“7편 전부 다시 타이핑해서 줬다. ‘리타이핑’의 장점은 모든 문장을 의심하면서 다시 쓸 수 있다는 거다. ‘입동’ 같은 몇몇 단편은 발표 당시 상당히 거칠었다. 책에 수록하며 많이 다듬었다. 편집자가 교정지에 체크해 준 걸 보면 내 문장 습관도 보인다. 문장에 리듬을 살린다고 조사든 형용사든 줄이는 게 버릇인데, 그래서 운율은 생기지만 뜻이 부정확해질 때가 있다.”

-5년 만의 신간인데 그 동안 어떻게 살았나.

“2013년 장편 연재하다 중단했다. 재난 얘기였는데,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접었다. 장편으로 준비했다 단편으로 바꾼 적도 많다. 여기 실린 ‘침묵의 미래’ ‘건너편’ ‘풍경의 쓸모’가 그런 작품이다.”

-‘침묵의 미래’ 외에 6편이 전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발표한 소설이다. 하나 같이 상실에 대해 말하고 있어 시국과 맞춰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입동’은 ‘세월호 문학’으로 문예지에서 많이 조명됐다.

“단편은 시대와 호흡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와 거리가 가까워서 쓰면서 조심하기도 했다. 메시지가 옳다고 해서 작품이 옳아지는 건 아니니까. 소설은 대개 어떤 일 이후에 대한 해석인 경우가 많은데 세월호가 완결형 사건이 아니지 않았나. 무언가 내가 파악하고 써야 하는데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최근작으로 갈수록 유머가 줄어든다는 독자 반응이 많다. 동의하나.

“어릴 때는 나와 가까운 얘기, 잘 아는 얘기를 썼다. 내가 나를 갖고 농담하기는 비교적 수월했다. 이른 나이에 데뷔해 정색하고 쓰는 게 쑥스러워서 능청 떨며 까불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상황을 갖고 농담하기는 어렵더라. 그걸 해내면 고수겠지만. 사실 이 책보다 이전 ‘비행운’이 더 어둡다. 정권 바뀌면서 ‘5년 플러스 5년’의 기로였으니까 비관에 대한 예감이 가득했다. 이 책은 그 어두운 상황 한 가운데서 담담하게 쓴 책이다.”

-유머도 사라졌지만, 냉소도 사라졌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한마디로 정리하면 편해지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은 전 생애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거라고, 그때그때 판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장편을 기대하는 독자가 많다.

“늘 쓰고 있었다(웃음). 단편 하나 더 발표하고 이제 장편 연재할 거다. 중단했던 재난 관련 소설은 아니고 어떤 공간에 대한 얘기다. 한발 떼는데 오래 걸렸으니 다음 작품은 속도가 나지 않을까.”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