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보이지 않는 은행' 눈앞..지점·은행원이 사라진다

이학렬 기자 2017. 6. 29.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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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금융의 미래-새로운 금융이 온다]<1>-①VR서 금융거래..로봇에 투자일임


#차분한 여성 목소리가 ‘존’을 깨운다. 침대에서 일어난 존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에바’라 부른다. 존과 에바는 친구 생일선물로 무엇을 살까 의논한다. 존이 밤새 국제유가 움직임을 확인하자 에바가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리밸런싱(자산재조정)을 하겠다고 한다. 존이 연금과 관련한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자 에바는 금리가 높은 상품에 1000파운드(약 150만원)를 가입하겠다고 답한다. 존이 다른 상품은 없느냐고 묻자 에바가 다른 상품을 추천한다.

에바는 세계적인 종합 컨설팅회사 KPMG 영국법인이 2030년에 등장할 ‘보이지 않는 은행’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며 지난해 발표한 가상비서다. 에바는 모닝콜, 일정 확인 등 일반적인 비서 업무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도 대신 처리해준다. 에바는 존이 입력한 일정은 물론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존이 어디에 가고 무엇을 했는지 다 파악한다. SNS(소셜미디어)를 분석해 존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다. 심지어 이를 통해 투자성향까지 분석해 존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권한다.

KPMG는 “2030년에 나올 기술은 은행 업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은행’은 디지털로 우리 삶과 광범위하게 연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년 전만 해도 은행은 지점을 만들어 놓고 고객이 오길 기다렸다. 지금은 고객이 더 이상 은행 지점을 찾지 않는다.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대부분의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어 굳이 발품을 팔 필요가 없다. 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이 줄다 보니 은행 지점과 은행원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126개인 지점을 25개로 줄인다고 발표하며 큰 충격을 줬지만 은행 지점 감소는 이제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금은 해고라는 민감한 문제에 걸려 입 밖에 내지도 못하는 분위기지만 은행원 감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앞으로 은행은 에바처럼 ‘보이지 않는 은행’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에바가 익숙하지 않다면 VR(가상현실)로 은행 지점을 구현할 수도 있다. 헤드셋만 쓰면 은행 지점에서 은행원의 응대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멀지 않았다. 실제 은행 지점과 은행원은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이미 시작된 변화…은행이 사라진다
씨티은행이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소비자금융 관련 지점 101개를 없앤다고 발표하자 노조가 반발하면서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금융당국도 소비자 불편이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지점에서 이뤄지는 대면거래가 줄어드는 추세에 맞춰 지점 축소 계획을 추진하는데 대해 반발이 심하자 다른 은행들은 씨티은행과 전략이 달라 대규모 지점 축소 계획이 없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하지만 씨티은행의 결단이 향후 은행이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점에 대해선 속으로 다 공감한다. 매년 수십개의 지점이 적자로 전환하고 있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은행 지점을 없앨 수밖에 없다.

미래금융학자 브렛 킹은 2015년 자신의 저서 ‘핀테크전쟁’에서 “10년안에 기존 은행 지점의 70~8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은행 지점은 10년 전에 비해 대폭 줄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국내 은행의 영업점수는 7103개로 가장 많았을 때인 2012년 7698개보다 600개 가량 적다.

씨티은행은 지점을 통폐합하려는 이유로 거래비중이 낮다는 점을 꼽았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지점 거래비중은 5.5%에 불과하다. 10년전인 2006년에는 지점 거래비중이 38%였다. 한국은행 자료도 씨티은행과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중 입출금, 자금이체 거래기준으로 지점 거래비중은 10.9%에 불과하다. 10년전인 2006년 12월에는 지점 거래비중이 27%였다.

앞으로 은행의 창구에서 이뤄지는 거래비중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은행들은 지점을 대신하는 각종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모바일뱅킹을 강화하고 있고 비대면 상품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3월 온라인 가상 지점 ‘모바일브랜치’를 출시했다. 모바일브랜치는 모든 오프라인 영업점을 온라인으로 구현해 회원 가입 없이 신용대출과 신용카드 등을 신청할 수 있는 온라인 채널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이미 지점 하나 없이 기업금융을 제외한 은행 업무는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은행 업무를 은행이 제공하는 모바일뱅킹이나 온라인뱅킹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간편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 내에서 간편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만간 카카오뱅크가 영업을 시작하면) 모바일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하다 금융거래가 필요하면 바로 카카오뱅크로 이동할 수 있다. 현재는 규제 때문에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은행 앱으로 이동하지 않고 카카오톡을 하거나 페이스북을 하면서 바로 은행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지금은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때 카드사를 통해 결제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아마존이 직접 고객 계좌에 접근해 결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은행…사라지는 은행원
은행이 보이지 않게 되면 은행원도 당연히 사라진다. 씨티그룹은 2016년 ‘디지털 파괴’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은행권 인력이 2015년 546만명에서 2025년 362만명으로 3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안토니 젠킨스 전 바클레이즈 CEO(최고경영자)는 “기술 기반의 경쟁자에 맞서기 위해 기존 은행들이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수년 내에 은행 지점과 은행원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지점이 줄면서 은행원도 감소세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임직원은 2014년 11만8913명에서 지난해말 11만4775명으로 줄었다. 은행원을 대체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5월 로보어드바이저 ‘우리 로보-알파’ 실물로봇을 본점영업부, 명동금융센터, 연세금융센터 등에 시범 배치했다. 은행원과 함께 근무하는 형태지만 규제만 풀리면 얼마든지 로봇 혼자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 로보-알파’ 실물로봇을 개발한 LG전자는 날씨, 시황 등의 질문에 답하는 수준의 접객용 로봇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자금세탁방지 모니터링 업무에 로봇을 도입했다. 씨티은행은 자금세탁방지 모니터링 전체 업무 중 약 10%에 해당하는 정보 수집 및 분석 자료 준비 업무에 한해 로봇을 투입하기 때문에 당장 해당 인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앞으로 로봇의 역할이 많아지면 은행원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축소된다. 씨티은행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박진회 씨티은행장은 “머신러닝과 챗봇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비롯한 미래 금융기술을 지속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변화는 모두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재 로보어드바이저가 은행원과 함께 근무할 수 밖에 없는 것도 투자상품은 반드시 대면으로 가입하게 하는 규제 때문이다. 최 센터장은 “EU(유럽연합)가 은행 계좌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PSD2(결제서비스지침)을 시행하면서 다양한 금융 서비스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소비자보호와 자금세탁방지 등을 위해 규제를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미래 생태계를 만드는 스마트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학렬 기자 toot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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