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災심사, 날 잡혔습니다.. 총알 준비하세요"

최재훈 기자 입력 2017. 6. 29. 03:10 수정 2017. 6. 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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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공단 직원 등 39명 기소.. '장해등급 조작' 복마전]
- 76억 챙긴 '기업형 브로커' 16명
변호사와 일한다며 환자 현혹 후 공단직원·원무과장·의사에게
30만~100만원 건네며 등급 청탁.. 月 400만원에 변호사 자격증 빌려

2015년 9월 일하다 척추를 다친 환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産災) 보상을 신청한 뒤 장해(障害)등급 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1~14급으로 나뉘는 장해등급 심사는 산재 보상금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1급이 가장 크게 다쳐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숫자가 클수록 보상이 적어진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 환자에게 김모(48)씨가 접근했다. 김씨는 이른바 '산재 브로커'였다. 그는 "저희 회사는 변호사도 같이 일하는데 장해등급을 잘 받게 도와주겠다"며 "보상금의 20~30%를 수수료로 받는다"고 했다. 환자의 사건을 맡게 된 브로커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는 박모(51) 과장을 찾아갔다. 50만원을 주며 '좋은 등급'을 부탁했다. 의사(51)에게도 따로 50만원이 건네졌다. 그 결과 11등급을 받아야 했던 환자의 장해등급은 9등급으로 결정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이용일)는 28일 산재 피해자들의 장해등급을 조작한 대가로 돈을 챙겨 온 근로복지공단 직원과 의사, 브로커들에게 자격증을 불법적으로 대여해 온 변호사·노무사 등 39명을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이 중 16명은 구속했다.

'조작단'은 브로커들이 주도했다. 브로커들은 산재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의 의사, 원무과장들을 접대하거나 용돈을 주면서 친분을 쌓고, 이들로부터 환자를 소개받았다. 브로커들은 소개받은 환자들에겐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노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속였다. 산재 보상금 신청사건은 환자 본인 또는 변호사·노무사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거리가 없는 변호사나 노무사들은 브로커들에게 고용돼 월 350만~400만원을 월급으로 받고 자격증을 맡겼다. 변호사·노무사 6명이 이 같은 일을 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다음 단계는 거짓 진단서를 만드는 일이다. 산재 장해등급을 매기는 지정병원의 원무과장과 의사 등 6명이 돈을 받고 가짜 진단서를 끊어줬다가 재판을 받게 됐다. 가짜 진단서를 손에 넣은 브로커들은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을 상대로 '로비'에 들어갔다. 근로복지공단은 지정병원의 장해등급이 제대로 매겨졌는지 심사를 하는데 심사 업무는 주로 과장·차장급이 맡고 있다. 브로커들은 이들 근로복지공단 직원들과 심사 업무에 도움을 주는 자문의사들을 상대로도 금품을 살포했다. 1건당 직원 손에 30만~100만원이 건네졌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이 구속한 근로복지공단 이모(53) 차장은 6년간 3750만원짜리 SUV 차량 대금을 비롯해 1억2900만원을 챙겼다고 한다. 브로커에 매수된 공단 직원 가운데는 자기가 나서서 자문의사에게 돈을 나눠주기도 했고, 어떤 경우엔 브로커에게 "자문의사에게도 (돈을) 좀 갖다주라"고 시킨 경우도 있었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면, 공단 직원이 '(심사) 날짜가 잡혔습니다. 총알 좀 준비해주세요'라고 하자 브로커가 '잘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답하는 내용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이 사건을 수사했다. 재판에 넘겨진 산재 브로커는 모두 16명이다. 이들이 장해등급을 높게 받아주고 환자들에게 받은 돈(수임액)은 76억원에 달한다고 검찰은 말했다. 산재 보상금은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보험료에 국가 예산이 더해져 지급된다. 결국 검찰에 검거된 이들은 세금을 축낸 셈이다. 검찰은 이들 같은 '기업형' 산재 브로커 조직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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