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말 많은 아재들의 잡담, 힐링일까 짜증일까
정치·음식·문학·과학·음악.. 각 분야 전문가들 종횡무진 수다
가르치려 드는 '꼰대' 우려도
남자들 수다가 더 무섭다. 금요일 밤 9시 50분 tvN 예능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을 보면 깨닫게 된다. 전직 정치인 유시민(58),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5), 소설가 김영하(49), 뇌과학 교수 정재승(45), 작곡가 유희열(46)이 통영, 순천, 강릉, 경주로 떠나 하루 종일 쉼 없이 떠든다. 역사, 문화, 정치, 과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종횡무진한다.
시청률은 4회 6.6%로 매회 꾸준히 오르고 있다. 나영석 PD 전작 '윤식당'만큼 시청률(최고 14%)이 뜨겁지 않은데도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출연자 면면을 보면 영락없는 교양인데, 나 PD 사단이 솜씨를 발휘해 예능으로 빚어낸다. 각 분야 전문가인 40~50대 남자들이 술상에 둘러앉아 저마다 자기가 아는 걸 작정하고 쏟아내는 형식 자체가 예능에서 못 보던 풍경이다.
이런 시도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하게 갈린다. 자신의 영역에서 뚜렷한 성취를 이룬 중년 남성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90분 내내 늘어놓으니, '꼰대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에 프로그램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난 사람끼리 모여 서로 잘난 척하고 시청자를 가르치려 든다고 느껴지면 대번에 거부감이 생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 PD 사단은 특유의 편집 실력을 한껏 발휘한다. 엉뚱하고 발랄한 그래픽과 위트 넘치는 자막을 최대한 살려 출연진과 대화의 무게를 떨어뜨리는 데 집중한다. 채널별 예능을 섭렵하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최수현 기자는 "연예인 사생활 에피소드, 무의미한 게임과 벌칙이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이들의 이야기가 교육적 정보로 다가오지 않고 백색소음처럼 멍하게 들려 묘한 힐링 효과가 있다"고 했다.
입사 2년 차 박상현 기자는 생각이 달랐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면 지식이지만, 회식 자리에서 강의를 하면 민폐"라는 대학 시절 한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고 했다. "음표와 쉼표가 어우러져야 노래가 되는데, 출연자들은 공백 없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낸다. 기름진 대화가 계속 이어지니 짜증스럽다." 유시민은 출연자 중 가장 달변이지만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강의'를 이어간다. 김윤덕 기자는 "출연자들이 설교하듯 쏟아내는 지식이 삶의 현장이 아닌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대부분이라 가슴을 울리는 대신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며 "빨치산, 비정규직 같은 민감한 문제에 어설프게 접근하는 것도 불편했다"고 꼬집는다.
담백한 말 한마디로 은근히 적재적소를 찌르며 웃음까지 선사하는 김영하는 소설가로서 진면목을 발휘한다. 그러나 MVP는 유희열이다. "나름대로 서울대 나왔다"고 하다가도 "멋지다" "대단하다" "궁금하다" "난 무식해"를 연발하며 자신을 한껏 낮춰 대화를 이끌어낸다. 쟁쟁한 출연자들 사이에서 그의 경청과 겸손이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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