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의 4차 산업혁명 – 교육 혁신

2017. 6. 2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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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부터 시작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기술혁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파괴적이고 불연속적인 변화의 소용돌이가 닥칠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결국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있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은 실재하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공인된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되어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소규모 가내수공업’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제조 프로세스’로의 대전환기를 말한다. 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은 단순히 생산방식에서의 기술혁신 때문만이 아니다. 인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사회의 0.001%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경제적인 풍요를 수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혁명”이라 불리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밑바탕에는 교육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있었다. 경제적 풍요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가치 있는 것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었고, 그것은 곧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위한 교육과 예술의 발전을 의미했다. 대규모 공교육이 자리잡은 시기도 이 무렵이다. 교육과 예술은 인간을 더욱 창의적으로 만들었고, 새로운 기술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였다. 그 결과 지난 200년 동안 인류는 비록 단기적인 굴곡은 있었지만, 의미 있는 발전과 진보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말경부터 글로벌 경제는 커다란 불확실성과 위기에 노출되어 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전초 격인 e비지니스 버블이 붕괴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렸고 그 여파는 10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짓눌렀다. e비즈니스의 거대한 붕괴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엔론(Enron)이었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칭송 받던 엔론은 실제로는 수많은 투자자들을 기만했던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신뢰의 붕괴는 투자자의 금전적인 손해를 넘어 글로벌 경제를 옥죄는 장애가 되었다. 그 후, Google, Apple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출현하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출시하고 가치를 창출하지만, 이들 역시 실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다. 예를 들어, 구글 글라스(Google Glass)나 애플 워치 (Apple Watch) 등은 미디어의 극찬 속에 출시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기술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요인(human factor), 즉 어거노믹스(ergonomics)를 도외시한다면 시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이다.

<그림 1>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한 선순환 구조

2005년 6월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늘 배고파하라, 늘 어리석어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외치며 인간적인 고뇌를 내비친 지 12년 만인 2017년 6월 애플의 CEO 팀쿡은 MIT 졸업식 축사에서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때로는 기술이 문제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인간이 소외된 기술’을 경계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테크기업(tech company)의 수장이 기술혁신의 나침반으로서 ‘인간’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소멸해 버리지 않고 인류 삶의 새로운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인류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수반할 수 있는 거대 선순환 구조(macro virtuous cycle)”가 형성되어야만 하는데, 그 전제조건은 “교육 (education), 윤리 (ethics), 인간중심 (ergonomics)”으로 요약된다(그림 1).

이 세가지 요인들 중 다른 것들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은 교육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윤리와 인간중심도 교육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즉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여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교육 혁신”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이론을 정립하여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 혁신을 통해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다면,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가 있어야만 하는가? 사회의 10%가 아인슈타인이거나 스티브 잡스가 되어야 하는가? 그러한 세상이 바람직한 사회일까?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는 사회의 0.00001%만 되어도 족하지 않을까? 오히려, 너무 많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가 사회에 존재한다면 그 사회의 발전이나 진보는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혁신은 “우리 사회 99%를 이루고 있는 평범한 일반 국민에게 과연 4차 산업혁명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영국 산업혁명은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인류에 오랜 기간 고통을 준 이념적 혼돈을 야기했다. 마르크스주의의 탄생은 산업혁명의 어둠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였다. 산업혁명이 물질적인 풍요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노동과 노동자, 즉 인간의 소외를 방치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 공산주의 사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교훈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사회의 99%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유리되어 기술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인간 소외가 생겨나고 이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또 한번의 사상적 혼돈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인류의 퇴보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뿐 아니라 인류 사회의 지속적인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진보해야 하며 그 기저에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교육 혁신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교육이 길러내야 하는 바람직한 인재상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의 유형이 단 하나인 것은 아니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고도의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 창출형 인재’가 필요하듯이 그러한 지식을 실제 삶의 현장에서 활용하여 구체적인 효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 활용형 인재’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창출과 활용을 연결해 주는 인재도 필요하다. ‘지식 연결형 인재’는 지식 활용의 관점에 가깝게 이러한 연결을 해주고, ‘지식 융합형 인재’는 지식 창출의 관점에서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그림 2).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비율은 얼마일까? 지식 창출형 인재는 한 사회의 구성원 중 1%를 넘을 필요는 없다. 사회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인재는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의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 가운데 가치를 실현하는 지식 활용형 인재로 그 비중은 90%에 달한다. 그 외, 지식 연결형 인재는 5%, 지식 융합형 인재는 4% 정도가 합리적이다(그림 3).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은 ‘이렇게 다양한 인재들을 누가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가?’이다. “대학의 미래”의 저자 케빈 캐리는 미래 대학의 모델로서 “모든 곳의 대학(university of everywhere)”을 제시한다. 우리는 흔히 대학이라고 하면 큰 강의실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고 교수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필기를 하거나 토론을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렇게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이 여전히 중요한 학습의 조건이 될까? 미래의 대학은 지구상 어디에 있거나 고도로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원격강의를 통해 지식을 얻는 학생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학위를 수여하는 주체로서의 대학 그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도 있다. 지식은 실질적인 “앎”을 의미하지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증명해줘야 하는 자격조건은 아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온라인 공개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 MOOC)’의 하나인 Coursera에서 개설된 과목들을 수강한 많은 학생들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강의를 들었다. 어떤 대학은 일정한 MOOC 과목들을 수강하면 학점을 주거나 졸업장을 수여하기도 한다. MOOC는 캐리가 말하는 미래 대학의 롤모델(role model)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곳에서의 대학”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해서 기존의 모든 대학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MOOC에서 강의를 가장 많이 개설하고 지식을 전파하는데 앞장 선 대학들은 MIT, Harvard, Stanford 같은 전통적인 명문 대학들이다.

이는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지식을 얻는 중요한 원천으로서 기존의 대학들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최첨단 교육방식을 위해 지식과 교육 컨텐츠를 창출해야 하는 대학이 그렇게 많이 필요로 되지는 않는다. 강의 주제에 따라서는 불과 몇 십 개의 대학들이라면 전세계의 지식에 대한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강의실이 많아야 수 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반해 MOOC는 한번에 수만, 수십만의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최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이를 널리 전파하기 위한 교육혁신을 수행하는 대학은 전세계 대학의 1%면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대학에서 지식 창출형 인재와 지식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아울러, 일부 지식 연결형 인재와 지식 활용형 인재의 재교육 혹은 고도화 교육을 담당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역할의 일부는 “모든 곳의 대학(university of everywhere)”에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 컨텐츠 혁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9% 대학은 사라져야 하는가? 만약, 나머지 99% 대학들이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1% 대학과 경쟁하여 연구중심대학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대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현재의 99% 대학이 사라지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고등교육기관”이 생겨날 것이다. 그들의 역할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최첨단 기술혁신 연구가 아니라, 1% 대학이 창출한 지식을 100%의 국민들이 생활 가운데 실행하여 진정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살아있는 현장중심 교육”을 하는 것이다. 즉, 대부분 대학의 역할은 순수 학문을 통한 새로운 지식 창출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삶 가운데 실현할 수 있는 실용교육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실용교육을 추구하는 가운데 새로운 지식의 창출도 가능하며 이렇게 창출된 지식은 기술혁신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살아있는 현장중심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 어떤 지식도 있는 그대로 다양한 현실에 적용될 수는 없다. 지식이 활용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적 조건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그 지식을 특정한 지역, 특정한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지식을 현장에 맞게 응용하고 보완하여야만 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기술혁신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미국사회에 적용하는 것과 유럽, 아프리카 혹은 아시아에 적용하는 방식이 동일 할 순 없다. 각 사회가 가지는 문화와 정서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각 지역에 적합한 최선의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것을 가르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대학은 각 지역 혹은 국가에 실제로 있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각 사회의 문화와 정서에 가장 알맞은 맞춤형 교육을 “살아있는 현장중심 교육”이라고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역할 분담의 대학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까? 실제로 이미 이와 유사한 대학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대학의 미래”에서 캐리가 언급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시스템이 한 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UC Berkeley)와 같은 ‘UC’ 시스템의 대학들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미국 명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중심 대학이 가지는 약점인 ‘부실한 학부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CSU)’ 시스템이 있다. ‘CSU’ 시스템에 속한 대학들은 직업 교육에 중점을 두는데, 주로 교사, 간호사, 공무원 등을 포함한 중간계층 전문직 종사자들을 육성한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가 있는데, 이는 낮은 교육비로 다양한 직종의 사회인을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캘리포니아는 이처럼 3단계 대학 시스템을 디자인하여, 개인의 목적과 여건에 따라 가장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 시스템 간에 이동이 가능한 유연성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경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2년간 교육을 받은 학생이 자신의 학문적인 소양을 늦게나마 발견하여 연구를 계속하고자 했을 때, UC 시스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대학 교육 생태계를 정교하게 정의하되, 대학간 문호가 개방된 유연한 체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 교육에 시사점을 주는 표본이다. UC 시스템은 ‘지식 창출형 인재’와 ‘지식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과 최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CSU 시스템은 ‘지식 연결형 인재’를 기르고, 일부 ‘지식 활용형 인재’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대학에 해당한다. 끝으로, 커뮤니티 칼리지는 지식 활용형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식 활용형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교육비는 낮아야 하며, 국가가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농공상의 사고방식이 깊은 사회일수록 ‘현실, 실천, 실무’의 가치가 ‘학문, 지식, 연구’의 가치보다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교육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 최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창출하는 1% 대학이나 그러한 이론과 지식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형 교육을 통해 지식 활용형 인재를 양성하는 99% 대학의 가치에는 차이가 없다. 1% 대학이 없다면 99% 대학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처럼, 99% 대학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1% 대학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중요성이나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다름 일뿐이다. 각 대학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책임을 정의하고 이에 따라 필요한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실행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미션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대학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교육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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