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폐암, 음주는 간암, 동성애는 에이즈?

입력 2017. 6. 28. 17:26 수정 2017. 7. 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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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약사회 모임 펼침막 논란
종교적 신념 앞세워 잘못된 보건 의료 지식 주장해
대구시약사회 "공식 입장 아냐..소모임 단체가 제작"
질병관리본부 "에이즈는 성정체성 관계없이 감염"

성소수자 축제 참가 캐나다 총리 "사랑은 사랑이다"
독일선 9월 총선 앞두고 동성결혼 합법화 급물살

[한겨레]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 228공원에 대구시약사회 이름으로 ‘흡연은 폐암을, 음주는 간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이라고 적힌 펼침막이 내걸렸다. 트위터 계정 ‘64비트여우’ 제공

대구 도심 한복판에 대구시약사회 명의의 펼침막이 내걸렸다. “흡연은 폐암을, 음주는 간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창궐한다’는 부류의 과학적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 약사회 이름으로 되풀이된 셈이다. 과학의 한 분류인 약학을 전공하고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반과학적 구호가 적인 펼침막을 내걸었는지 확인해봤다.

일단, 대구시약사회는 지난 24일 대구 중구 228공원에 걸린 문제의 펼침막은 자신들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답했다. 대구시약사회 양수석 사무국장은 27일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대구시약사회 공식 입장이 아니다. 약사회 내 소모임인 기독약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해 게시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소모임이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구시약사회 명의를 썼다는 설명이다.

기독약사회는 인쇄 과정의 ‘착오’로 둘러댔다. 홍보를 맡은 유병혁 약사는 “애초에 ‘대구경북기독약사회’ 명의로 펼침막을 만들려 했으나 인쇄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 대구시약사회가 아니라 기독약사회가 한국가족보건협회 대구경북지부, ‘건강한 대구경북을 위한 시민협회’ 등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해당 펼침막은 24일 저녁께 기독약사회에서 자체 수거했다”고 해명했다. 대구시약사회의 소모임인 대구경북기독약사회가 제작한 것인데 제작 과정에서 실수로 대구시약사회 명의를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독약사회 쪽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약사들이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보건의료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편 셈이라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약사는 약사법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투약하고 시민에 대해 복약지도 의무가 있는 보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 펼침막이 내걸린 날은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6월24일~7월9일)가 시작된 날이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열리는 유일한 성소수자 축제인 이 행사엔 1천여명이 참가했다. 흡연과 음주가 각각 폐암과 간암의 원인이듯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반대 논리다.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병원체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은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HIV 감염인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할 때 전파된다”고 공식 누리집에 밝히고 있다(▶바로가기). 에이즈는 동성애자만의 질병이 아니라는 뜻이다.

‘건강한 대구경북을 위한 시민협회’ 제공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25일(현지시각) 성소수자 축제인 ‘PrideTO’(프라이드 토론토) 해시태그와 함께 축제 참가 사진을 트위트 하며 “사랑은 사랑이다”(Love is love)라고 썼다. 트위터 갈무리

한국 사회 일부에선 동성애나 성소수자 문제를 음주·흡연처럼 질병의 원인으로 공격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계 주요 선진국들의 시선은 다르다. 그 나라들이라고 해서 반대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국가의 긍지를 측정하는 척도나 정치 지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의제로 바라본다. (▶관련기사 : 성소수자 권리보호, 트뤼도·오바마·캐머런을 아시나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 25일(현지시각) 캐나다의 대표적인 성소수자 퍼레이드인 ‘프라이드 토론토’(#PrideTO)에 참여한 사진과 함께 “사랑은 사랑이다”(Love is love)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다. 트뤼도는 캐나다 총리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성소수자 퍼레이드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도 성소수자들과 함께 행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각) “프랑스는 무지개다. 풍성한 다양성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고 썼다. 트위터 갈무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지난 23일 ‘퀴어 퍼레이드’(#MarcheDesFiertes) ‘사랑은 사랑이다’(#LoveisLove)라는 해시태그를 트위트하며 “프랑스는 무지개다. 풍성한 다양성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고 썼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행진 ‘퀴어 프라이드’는 지난 25일부터 미국·캐나다·프랑스·스페인·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과테말라 등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중이다. 한국에선 다음달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가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집권당인 기독민주당 당수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26일 “동성결혼 이슈를 ‘양심의 문제’로 다룰 수 있다”고 밝히며 지금껏 유지해온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의견을 수정했다. 현 대연정 소수당 파트너인 사회민주당 당수 마르틴 슐츠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주 안에라도 동성결혼 합법화 입법 표결을 시행하자”고 화답했다. 총선 이후 연정에 소수당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녹색당과 좌파당, 원내 재진입이 유력한 자유민주당 역시 차기 연정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제시한 상태다. 하이코 마스 독일 법무장관은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는 정의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도 지난 5월 대선 당시 동성결혼 문제가 후보토론회에서 잠시 언급되기는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나라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문가 집단이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비과학적인 주장을 버젓이 내걸고 있으니 말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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