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부자' 선우예권 '반클라이번 우승'까지 걸어온 길

박정환 기자 입력 2017. 6. 28. 17:15 수정 2017. 6. 2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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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직후 기념사진 © 목프로덕션 이상신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선우예권(28)은 크고 작은 국제 콩쿠르에서 8번이나 우승해 이른바 '콩쿠르 부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흔히 말하는 '음악 신동'이 아니라 '노력파'에 더 가깝다.

선우예권이 피아노 건반을 처음 만진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두 누나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부러웠던 그는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 학원을 찾았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자신도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를 가르치던 동네 피아노학원 선생이 그의 어머니에게 '원석같은 아이'라며 음악을 계속하길 처음으로 권했다.

이후 선우예권은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화, 신민자 교수를 사사하며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상하게도 하면 할수록 피아노 치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는 서울예고 졸업한 이후 전액장학생으로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세이무어 립킨 교수를 만난 선우예권은 음악적으로 크게 성장한다. 립킨 교수는 유명 콩쿠르에 하루라도 빨리 출전하길 바라는 어린 제자에게 피아노뿐 아니라 책, 오페라, 교향곡, 영화, 미술 같은 다양한 예술을 많이 접하길 권했다.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다른 사람의 음악이 아닌 '선우예권만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의도였다.

선우예권은 또래 친구들이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시간에 커티스 음악원에서 열리는 다양한 무대에서 레퍼토리를 넓혀갔다. 실기 시험이 없는 커티스 음악원의 학사 제도도 그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그는 "한국은 아직까지도 입시와 실기가 중심인데, 커티스 음악원은 실기 시험이 없어서 모두 음악을 정말 즐기는 분위기"라며 "실내악을 통해 서로 음악적인 조언을 나누고,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고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단 한 명의 피아니스트에게만 주어지는 라흐마니노프 상을 수상하며 졸업한 선우예권은 줄리아드 대학원에서도 한 명의 졸업생 피아니스트에게만 주어지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상을 받았다.

음악적 예열을 마친 선우예권이 콩쿠르에서 처음 우승한 것은 2009년 인터라켄 클래식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다. 이후 2012년 윌리엄 카펠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및 청중상, 체임버상, 2012년 피아노 캠퍼스 국제 콩쿠르 1위 및 청중상, 2013년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플로리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줄리아드 콘체르토 콩쿠르 1위를 석권했다. 2014년 방돔 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 역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이어 2015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는 선우예권에게 군대면제 혜택을 안겼다. 그는 "군대 면제때문에 예민해져서 가족을 관람하지 못하게 신경질을 부렸다"며 "어머니가 몰래 관람하시느라 공연장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고 계단으로 걸어 올라왔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고서 죄송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콩쿠르 부자'라 불리는 선우예권은 1년에 2~4번씩 크고 작은 국제 콩쿠르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콩쿠르에 많이 출전한 것은 경력을 쌓고 우승 특전으로 주어지는 연주 기회를 얻겠다는 마음이 아니었다"며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연주를 계속하려면 다른 선택지 없이 콩쿠르에 참가해야 했다"고 했다.

국제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지만 선우예권은 국내에서 잘 알려진 연주자가 아니었다. 그는 2014년 클래식 전문기획사인 목프로덕션과의 전속 계약에 이어 '2016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다.

목프로덕션 관계자는 선우예권이 2014년 8월 부산에서 열린 '김재영의 친구들' 공연에서 협연자로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노부스 콰르텟 단원이기도 한 김재영이 "선우예권은 실력이 진짜 뛰어난 친구"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목프로덕션은 관계자는 "음악을 빨리 읽어내는 남다른 음악성에 감동했다"며 "공연 후 당일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함께하자고 그에게 제안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파이널 연주모습 © 목프로덕션 이상신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선우예권에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콩쿠르였다. 당시 선우예권은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와 쇼팽 콩쿠르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쇼팽콩쿠르는 전체 연습시간이 5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며 "다른 국제 콩쿠르를 함께 준비하느라 그렇게 돼 버렸지만 연주자로서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많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선우예권은 2016년에 새로운 음악적 계기를 맞게 된다. '2016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에 선정된 것이다. 상주음악가제도는 예술가를 초청해 작업에 집중하고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는 다수의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막상 연주할 기회가 적어서 아쉬워하곤 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2016년 한 해 동안 총 다섯 차레의 리사이틀 기회를 그에게 제공했다.

그는 목프로덕션과의 전속계약을 통해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2016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에 선정돼 음악적 깊이를 더한 이후 마지막 콩쿠르 도전에 나섰다.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를 목표로 삼은 그는 "인생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며 "다른 콩쿠르와 비교하면 5~6배 이상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했다. 이어 "만 28살인데 대부분의 콩쿠르 연령제한 30세라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다른 대회보다 연주 분량이 많은 대회였다. 그는 "연주자가 최종 결승까지 독주곡 2번을 포함해 6번을 연주해야 했다"며 "콩쿠르 출전 자격 제한이 30세인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많이 했다"고 했다.

"리사이틀 준비하듯이 콩쿠르를 준비했습니다. 다양한 맛들을 들려주고 싶었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들을 표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곡은 프로그램상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 도움이 되는 곡이었고, 앙코르로 자주 연주하는 곡들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이번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지인들과 연락을 끊었다고도 했다. "콩쿠르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며 "아무리 좋은 말로 응원하더라도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에 콩쿠르를 준비하는 동안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끊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올해 대회는 대륙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개국의 30세 이하 젊은 피아니스트 30명이 기량을 겨뤘다. 한국인 참가자 5명 가운데 선우예권, 김다솔, 김홍기가 12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진출했고, 그중 선우예권이 6명으로 좁혀진 결선까지 올랐다. 선우예권은 결선 무대인 9일 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선우예권은 이번 대회 우승을 실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승했다는 기쁨보다 '이제 끝났구나'라는 마음이 더 컸다"며 "우승 후 인터뷰와 사진촬영 등 연주 외적인 부분에서 바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존경하는 스승 리처드 구드 선생님을 닮고 싶다"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스스로 치유도 받고 행복감을 얻는데 이런 것들을 관객과 공유하고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진실을 담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한편, 선우예권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바쁜 일정이 예정돼 있다. 먼저 12월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선우예권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리고, 2018년 4월 통영국제음악제 및 11월 세종문화회관 40주년 기념공연에서 협연 예정돼 있다. 피아노 리사이틀의 경우 우승 직후 전석매진돼 표를 못 구한 팬들을 위해 12월15일 추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 목프로덕션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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