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비판 하는' 인권위로 돌아올까

임지영 기자 입력 2017. 6. 28. 10:22 수정 2017. 6. 28. 14: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모범적이었다고 평가받던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이 크게 하락했다. 이명박 정부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임명한 뒤부터다.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참여정부 때 꽃을 피웠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인권위는 이라크 파병 반대 성명을 냈고, 호주제를 비롯해 국가보안법·사형제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 폐지를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회의에 참석해 ‘변변치 못한’ 타국의 인권기구에 비해 적극적으로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한국 인권위가 모범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그사이 ICC 의장국으로 거론되던 한국은 3회 연속 인권기구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다. 국제적인 망신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취임 보름 만에 인권위의 권한과 지위를 격상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인권위의 권고 수용률을 기관평가에 반영하고 대통령 특별보고를 정례화하는 한편, 헌법기구로의 격상까지 언급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이 논의에 덧붙여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서 인권 친화적인 경찰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경찰에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윤무영 문재인 정부가 취임 보름 만에 인권위의 권한과 지위를 격상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래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는 지난 5월25일 청와대의 발표를 환영하며 입장문을 통해 “이번 정부의 수용률 제고 방안은 피권고 기관의 개선 의지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인권 시민사회 단체도 마찬가지로 환영했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 이들을 비롯해 인권위에 몸담았던 일부 관계자들은 현재 인권위 내부의 조직 역량에 의문을 품는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을 지나며 주요한 인권 현안마다 말을 아꼈던 인권위 스스로 내부를 돌아보는 게 먼저라는 지적이다. 문경란 전 인권위 상임위원은 “정권 초기 인권의 기본 가치와 역할을 천명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공은 인권위로 넘어갔다. 독립기구의 역할과 위상을 망각하고 권력의 눈치를 봤던 데 대한 반성과 사과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인권위가 혁신 보고서부터 써야 한다고 말했다(“인권위 오욕의 역사에 대국민 보고서 내라” 참조).

지난 9년 인권위는 인권과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며 차츰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이명박 정부가 현병철 인권위원장(2009년 7월~2015년 8월)을 임명한 뒤부터다. 현 전 위원장은 스스로 “(인권을) 모르는 게 차라리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권에 무지했고, ‘깜둥이’ ‘야만인’ 등 반인권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용산참사를 다루던 인권위 회의를 강제 폐회하며 “독재를 했다고 해도 좋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현 전 위원장이 상임위원의 권한까지 저지하자 유남영·문경란 당시 상임위원, 조국 당시 비상임위원이 사퇴한 데에 이어 전문위원 등 61명이 동반 사퇴했다. 인권위는 용산참사(2009년), 검찰의 MBC <PD 수첩> 제작진 기소(2009년), 민간인 사찰 폭로(2010년) 등 민감한 인권 현안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9년 오히려 ‘반인권’ 조직에 가까웠던 인권위가 앞으로 이름에 걸맞은 구실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전·현직 인권위 관계자들은 인선 과정의 쇄신을 우선으로 꼽는다. 현재 인권위는 국회 선출 4인, 대통령 지명 4인, 대법원장 지명 3인 등 위원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권위의 한 사무처 직원은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단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렇다고 임기가 남은 이들을 쫓아내면 갈등이 극심해질 수 있다. 간단치 않다”라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 위원장은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성호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다. 잔여 임기가 내년 8월까지다.

인권과 역행하는 인권위원의 자질 논란

위원장을 포함한 인권위원들의 자질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거리가 됐다. 전문성 부족과 기구의 독립성에 대한 무지가 문제를 키웠다. 특히 인권위는 어떤 정부와도 예외 없이 독립적 지위와 관련해 갈등을 겪어왔다. 국가기관이면서, 다른 국가기관을 감시·견제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등은 집단 사퇴 의사를 밝히며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초기 인권위원장들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인권위의 취지와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다. 굵직한 시국사건 변론을 해온 김창국 초대 위원장(2001년 11월~2004년 12월)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공고히 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성명을 냈을 때 항명행위라는 비판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위는 그런 비판을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일단락되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대표를 지낸 최영도 위원장(2004년 12월~2005년 3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조영황 위원장(2005년 4월~2006년 10월), 인권법을 연구해온 안경환 위원장(2006년 10월~2009년 7월)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 와중에 2009년 현병철 위원장의 임명은 파격이었다. 인권 관련 경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인권위는 행정부 소속”이라고 말하며 독립적인 지위를 스스로 깎아내렸다.

2009년 7월~2015년 8월 현병철 체제 아래 인권위가 파행으로 치달은 후 인권 경력이 전무한 인사들이 인권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밀실 인사가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시민단체가 아동 성폭행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 전력이 있다며 그의 임명에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은 그를 인권위원으로 추천했다. 공공연하게 성 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는 최이우 목사는 박 전 대통령이 지명해 현직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법조인들이 주로 임명되는 문제도 지적된다. 현재 11명의 인권위 위원 중 7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준사법기관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인권위 상임위원을 했던 유남영 변호사는 “법이라는 기존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이슈를 발굴해 그걸 제도화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게 인권위가 할 일이다. 체제 바깥의 문제를 체제 안으로 던지려면 생각이 경계에 있거나 자유로워야 한다. 보편적인 인권 원칙에서 접근할 만한 사람들이 임명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모제 등을 통한 투명한 인선이 필요한 이유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개적인 인권위원 인선 절차가 인권위 격상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후임 사무총장은 누가 될까

인권위 위원회가 회의체로서 주요한 판단을 내린다면, 그걸 집행하는 쪽은 사무처다. 사무처도 그간 부침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려고 했다. 반발로 무산되었지만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인권위가 의견서를 낸 후 조직을 21% 감축했다. 다른 기관(0.02~2% 감축)에 비해 대규모였다. 인권위 계약직 조사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하자 직원들이 1인 시위를 시작했고 징계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2009년 7월20일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번 참에 침체된 사무처의 대수술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2001년 출범 당시에는 관료 출신과 민간 출신 직원이 반반이었다. 인권위는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지만 예산은 기획재정부, 정원은 행정자치부 소관이다. 정부 각처에서 인권위로 파견을 왔다. 해왔던 직무가 달라 서로 융화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다. 인권정책국장직을 지낸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초반의 동력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자 일반적인 공무원 집단이 되었다. 인권 감수성을 가진 외부 인사가 대거 들어가 전문성을 강화하고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당장 사무총장이라도 외부 인사를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병철 체제 이전에는 민간의 인권 전문가가 사무총장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김옥신 사무총장을 마지막으로, 일반직 공무원이 자리를 대신했다. 최근 안석모 사무총장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사무총장은 인권위 위원장이 임명하는데, 후임 사무총장이 누가 될지도 관심사다.

인권위를 헌법기구로 격상하는 문제는 앞선 논의에 비하면 후순위다. 관계자들은 대체로 환영하지만 이견도 있다. 제도가 가진 허점이 있지만, 그 때문에 지난 시절 인권위가 침체를 겪은 건 아니라는 의미다. 유남영 변호사는 “인권위는 사회적 이슈를 선점해 발 빠르게 문제 제기하는 조직이다. 헌법기구가 되면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대응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권위 강화 방침으로 인권위가 ‘거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내부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지난 시기에 대한 회한도 있다. 한 사무처 직원은 “침체가 꼭 정권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인권에 대한 전문성으로 눈치를 보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보수 정권에서 탄압받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건데 할 일을 놓고 밥그릇만 쳐다본 게 아닌가 싶어 참담할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외부의 비판에 대해 “인권위가 마땅해 관여해야 할 예민한 사항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다른 식으로 회피하는 게 아니고 조용히 있어서 결과적으로 자기 본분을 못했다.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1년 11월25일, 인권위가 문을 연 첫날 새벽 6시부터 진정인이 줄을 섰다. 장애인, 인혁당 사건 유가족,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인권위 직원들이 받은 지시 사항은 ‘무조건 얘기를 경청할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올해 초 진정을 넣었던 김선주씨(가명)는 인권위 직원으로부터 어차피 위로 올라가면 각하되니 취하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왜 진정까지 하게 되었는지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피진정인에 대한 조사도 없었다. 고압적인 말투로 ‘인권이 뭔지 잘 모르니까 들어라’며 가르쳤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가 두 배 커지면 인권 상황이 네 배 나빠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최근 ‘위원회 업무혁신 TF’를 꾸려 내부 혁신안을 마련 중이다. 임기 중 사퇴가 없다면 인권위와 관련된 문재인 정부의 첫 인사는 최이우 비상임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11월에 이뤄진다. 최 비상임위원의 후임자는 문 대통령이 지명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