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위안부 재협상, 명분과 현실 사이

2017. 6.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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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일본의 “절대 불가” 입장 강경… 지루하고 인내심 필요한 과정

10명 중 6명은 국회의 반대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지지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이자 유엔 인권기구 출신 장관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기대에 화답하듯 강 장관은 취임 첫날인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통화하며 “우리 국민 대다수가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외교부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2015년 12월 한·일 합의의 배경과 경위 등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니 재협상하겠다’는 신호로 보이기 쉽지만 간단하지 않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임명되기 전인 6월 2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집을 방문해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흉상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재협상” 거론한 적은 없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당선 후 한 번도 ‘재협상’을 거론한 적이 없다.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는 “(위안부 합의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고 에둘러 썼다. 20일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는 “일본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그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정부의) 공식 사과를 하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한 가지 문제로 인해 한·일 양국관계의 진전이 막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22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아사히신문의 기자가 WP 인터뷰를 보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요구할 예정인가?”라고 묻자 외교부 대변인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우리 국민과 위안부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에서는 재협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11일 일본 집권 자민당 야마다 히로시 의원은 당·외교부 회의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 측 참석자인 가나스기 겐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재교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핵문제를 미끼로 미국을 설득해 한국이 철저하게 위안부 문제에서 협력적으로 나오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국제사회의 관례도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조약이 아니라 한·일 양국 외교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한 ‘합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것은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기에 결코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외교관계자들의 공통된 중론이다.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이 한국과 일본의 피해자와 정부를 다 조사하고 난 뒤에 위안부 문제는 전시에 일어난 여성에 대한 성적 노예 행위이고 전쟁범죄라고 기본 입장을 정했다. 그게 국제법률가협회(ICJ)에서도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미국 하원 결의, 호주와 EU 의회 결의안, 이렇게 나왔다.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권고를 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로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던 것은 역시 이런 강제성 없는 국제적 권고를 지키지 않아서였다. 거꾸로 국가 간 합의를 파기할 경우 부담은 한국이 크게 진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 미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여론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외교관계자는 “자민당 정권보다 유화적이었던 하토야마 총리 시절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적기였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이 오히려 한·일관계 경색을 낳았다”며 “‘재협상’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여겨지고, 이것이 일본 여론을 자극하면, 그 나라 정치지도자는 민주적 원리에서라도 화해를 위한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 더구나 일본은 보수우파의 개헌을 앞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의로운 의지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일본에 특사로 다녀온 문희상 의원은 “제3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합의 불충분” 권고 국내 여론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모양새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정의시민모임)은 “정의로운 법적 해결의 길을 외면한 채 보완적 합의라는 명목으로 2015년과 같은 정치적·외교적 타협의 길을 택한다면 결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의로운 해결은 법적으로 살아있는 배상청구권을 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상청구권’에 대한 요구는 역설적으로 위안부 협상을 불러온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것이 일본 측의 입장이었는데 외교문서 공개로 2005년 위안부 문제, 원폭 문제, 사할린 교포 문제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개별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배상받는 길이 열렸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한·일관계 경색 등을 이유로 들어 적극 나서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2011년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받아들였다. 국가는 배상청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정부와 시민사회 간 소통도 막힌 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기본적으로 한·일관계의 틀이 망가진 상황에서 급하게 처리한 결과가 2015년의 합의라는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는 교훈은 결국 하나다.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시간을 덜 들인 협상은 한국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절차 혹은 내용 면에서, 또한 국제인권의 관점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외교부에서 절차적 문제에 대한 검증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경위가 특히 관심 대상이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지난 5월 “양국 간 이뤄진 합의를 환영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 등과 관련해서는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권고했다. 사실상의 재협상인 만큼 훨씬 더 거센 국제적 압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3·1절 방송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협력사항과 분리시켜서 저는 역사문제를 논의해 나가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0년까지 있었던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단적이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어떤 것이 옳은지, 아니면 병기가 가능한지, 이런 얘기들을 차분하게 논의하는 장이었는데 지금 현재 한·일관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는 지루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외교부의 느리고 아슬아슬한 여정이 시작됐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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