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공기관, 너도나도 '채무탕감' 추진..새정부 눈치보기?

김형민 기자 2017. 6.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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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금융정책 핵심 공약인 ‘채무탕감’에 발맞춰 금융공공기관들도 경쟁적으로 채무탕감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위를 필두로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캠코, 주택금융공사 등은 올해 핵심 추진 정책으로 채무 감면 혹은 탕감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조선DB

다만, 이들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성실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 채무감면 대상자의 도덕적해이 문제 등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 공공기관 모두 큰 틀의 채무감면 계획만 내놓은 상태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청와대의 채무감면 계획이 정해진 이후에나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구체적 계획 없이 새정부 눈치보기에 얽매여 서둘러 채무탕감 계획만 경쟁적으로 내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정부 들어 금융공공기관이 너도나도 채무탕감 등 서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구체적인 계획 등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내부에서도 정책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 너도 나도 채무탕감 외치는 금융공공기관

캠코와 기술보증기금,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신용회복위원회, 예금보험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7개 금융공공기관은 지난 4월 금융위의 주도로 '금융공공기관 부실채권 관리 제도개선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해당 협약은 쉽게 말해 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채무조정, 신용회복지원, 정기적인 채권 상각 및 매각 등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는 지난 3월 금융위가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부실채권 관리 제도개선 방안'을 이행하고 채무자 재기지원과 부실채권 관리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협약 이후 금융공공기관은 경쟁적으로 채무조정 혹은 채무탕감 정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5월 말 ▲적극적 채무조정 ▲과감한 채권정리 ▲불법추심 원천차단 등 3대 핵심목표를 연내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소멸시효가 도래한 장기·소액 연체채권의 경우, 재산과 소득이 있는 경우 선별적으로 시효를 연장해 빚을 갚도록 하고 상환능력이 없으면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빚을 탕감하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성실상환자 및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채권해제 비용을 전액 신보가 부담하기로 했다. 신보가 보증을 섰던 기업 및 개인에 부실이 발생하면 신보는 가압류 혹은 가처분 등을 추진하게 된다. 이후 채무자가 채무를 상환하거나 보증을 섰던 기업이 정상화되면 가압류, 가처분, 근저당권 등을 해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원래 채무자의 의무인데, 신보는 이를 감면하거나 전액 신보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캠코 역시 채무자 중심의 채무조정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장기연체자에 대한 채무감면율을 최대 90%까지 확대하고 채무조정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 조선DB

문창용 캠코 사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새정부가 채무탕감과 관련한 정책 기조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계획이나 원칙이 정해지면 그에 맞춰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도덕적해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안 없어

문재인 정부는 1000만원 미만의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소각 대상으로 삼았다. 그 규모만 약 11조원에 이르며 대상자는 1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채무탕감 이면에 위치한 도덕적해이 문제와 성실상환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채무탕감 계획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채무탕감 계획을 발표한 공공기관들도 도덕적해이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은 없고 새정부의 채무탕감 계획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공공기관의 채무탕감 기준도 제각각 다르다. 예보는 특별한 기간 없이 채무자의 상황에 따라 감면 대상을 정한다. 반면, 캠코는 15년 이상 연체채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기관 내부에서도 채무탕감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금융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채무탕감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경쟁적으로 금융공공기관도 발 맞춘 것인데, 사실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며 "중앙 정부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기 전에 먼저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공기관이 나서 채무자의 채권을 대량으로 소각하는 전례가 많지 않아, 좋지 않은 선례가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선진국 사례에서도 정부나 공공기관 등이 일반 서민의 채무를 탕감하는 사례를 알지 못한다”다며 “채무자 별 채무 상황을 파악해 개별적인 감면 혹은 탕감을 추진하고,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한 대안 없이 추진되는 것은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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