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축구수첩]본선 생각 말고, 9~10차전에 전부 걸어라

김현기 2017. 6. 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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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대한축구협회 신임 기술위원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1994년 미국 월드컵 유럽예선에 나선 프랑스 대표팀은 6조 6개국 중 1~2위에 주어지는 본선 티켓 획득을 위해 큰 문제 없이 달리고 있었다. 1차전 불가리아 원정에서 일격을 당했지만 이후 난적 스웨덴을 1승1무로 제압하고 오스트리아에 2연승을 챙기는 등 6승1무를 질주했다. 총 10차전 가운데 8차전까지 승점 13(당시엔 승리에 2, 무승부에 1의 승점이 주어졌다)을 기록하며 스웨덴과 불가리아(이상 승점 12)를 제치고 선두를 지켰다. 9차전이 꼴찌 이스라엘과의 홈 경기였기 때문에 갈수록 불안해지는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본선행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방심이 프랑스 축구의 허를 찔렀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마지막 10분간 두 골을 내줘 2-3으로 역전패해 본선 진출 조기 확정에 실패하더니 최종 10차전이었던 불가리아와의 홈 경기에서도 종료 직전 상대 공격수 에밀 코스타디노프에 통한의 역전골을 내줘 1-2로 지고는 6조 3위로 밀려나 본선행에 실패했다. ‘어~ 어~’하다가 월드컵 본선 때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을 돌아보며 지금의 한국 대표팀이 걱정되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4승1무3패(승점 13)로 우즈베키스탄(승점 12)에 앞서 직행권인 2위를 ‘결과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란(승점 20)이 이미 한 장의 티켓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리아(승점 9), 카타르(승점 7), 중국(승점 6) 등 4~6위 국가들은 직행이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남은 한 장을 놓고 9~10차전에서 숨죽이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 양국은 9월5일 타슈켄트에서 최종 10차전을 치른다.

한국은 지난 14일 카타르전 2-3 패배의 책임을 물어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을 해임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사령탑을 교체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극약처방에도 불구하고 축구계 안팎의 공기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본선행 가능성은 70~80%다”, “우리 실력만 찾는다면 러시아 가는 길은 문제 없다”는 등 낙관론이 아직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는데 불과 두 경기 남은 상황에서 한국이 어쨌든 승점에서 앞서 있고, 골득실도 앞서며, 다득점에선 훨씬 우위(11-6)를 점하는 등 수치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만큼이나 우즈베키스탄이 하향 곡선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4경기에서 1승3패에 그쳤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이 졸전을 거듭하는 동안 A조 2위를 탈환할 찬스가 수차례 있었으나 번번히 놓쳤다. 당장 8월31일 한국-이란전과 동시에 열릴 중국-우즈베키스탄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이 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까지 흘러나온다.

이런 견해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의 A조 2위 확률은 어느 팀보다 높다. 문제는 이런 낙관론이 최종예선 내내 흐르면서 개구리가 미지근한 물에 서서히 죽어가듯 한국 축구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를 천신만고 끝에 이긴 뒤 축구계에선 “3월 중국-시리아전을 다 이기면 된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중국에 덜미를 잡혀 아슬아슬한 2위를 유지한 뒤엔 “6월 카타르 원정 땐 선수들을 조기소집할 수 있으니 잘 준비해 이기면 된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을 향한 비난의 화살 강도는 세졌지만 대표팀의 러시아행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심각하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이젠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이 있고 눈 앞에 닥친 두 경기, 특히 8월31일 이란과의 홈 경기를 넘어야 한국 축구도 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어~ 어~’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다. ‘러시아 생각’은 잠시 접어야 한다. 이는 새 감독 선임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위기를 외면하자는 얘기나 다름 없다. 눈을 똑바로 뜨고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표팀 지도 체계를 ‘젊은 피’로 세대교체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위험하다. 그것은 대표팀이 안정되고 다소 숨돌릴 틈이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젊은 지도자, 패기 넘치는 축구인들을 등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여론에 휩쓸리다가 슈틸리케도 휩쓸렸고, 최종예선도 지금 이렇게 됐다. 여론이 아니라 뚝심과 지원이 중요하다. 축구인 모두가 개인의 사심을 배제하고, 한국 축구의 위기를 확률적으로 누가 가장 잘 헤쳐나갈 수 있는가를 봐야 한다.

눈 앞에 닥친 두 차례 높은 파고를 넘는 게 지금 대표팀의 숙제다. 저 먼 곳에서 올라오는 태풍은 파고를 넘은 뒤 생각해도 늦지 않다. ‘어~ 어~’ 하다가 훅 간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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