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한국 보수.. '보수 이념'에도 관심 없어"

유석재 기자 2017. 6.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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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 홍진표 편집인 인터뷰
재정난에 '시대정신' 무기한 휴간
"두 번의 보수 정부 지내는 동안 자생력 키우지 못한 것 반성"
"박근혜 정부 '관제화' 거치면서 보수 시민운동 권위 실추돼"

"전경련 지원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좀 더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보수 이념지'로서 자생력을 갖췄어야 했는데…. 뿌리가 약한 보수 시민운동의 지형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홍진표(54) '시대정신' 편집인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가 편집인을 맡은 격월간 '시대정신'은 재정난 때문에 통권 78호를 끝으로 이달 초 무기한 휴간 선언을 했다〈본지 22일 자 A1면〉. '한국의 보수는 보수의 이념을 대변하는 학술지 하나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지난 25일 만난 그는 "한국의 우파는 보수라는 말만 내세웠을 뿐 정작 어떤 콘텐츠로 그 안을 채워야 하는지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잡지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재정난으로 휴간에 들어간 격월간‘시대정신’의 홍진표 편집인은“두 보수 정부를 거치는 사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정작‘보수의 콘텐츠’에 별 관심 없는 한국 보수 세력의 이념지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시대정신'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창간돼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재창간' 과정을 거쳤다. 당시는 10년 가까이 진보 정부를 겪으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보수 세력의 위기감이 있지 않았나.

"사실이다. 보수가 전열을 정비해 입장과 이론을 지녀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잡지엔 자유주의적인 시각과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좌·우의 소모적 이념 대결보다는 공존 속에서 경쟁하는 것을 지향했다. 좌파 마르크시즘에 대해선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절박함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무뎌지거나 느슨해진 것은 아닌가.

"'야당 스탠스(stance)'일 때 갖는 동력이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안이해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막상 보수 정부가 들어서니 현실 권력에 비판적일 때 가질 수 있는 긴장감이 없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시민단체의 관제화(官製化) 과정에서 우파 시민운동의 권위가 함께 추락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박근혜 정부는 우호적이라고 생각되는 NGO(비정부단체)들을 관(官)에 묶어 두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 올린 단체들을 우회적으로 지원해 국정을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수 단체들을 서포터스 정도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 우리를 당연히 도와야 한다'며 동원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 과정에서 과거 같으면 지원 대상에 오르지 못했을 단체들도 지원을 받았다. 이건 우리(사단법인 시대정신)를 포함해 보수 단체 전체가 독립성이 실추된 것을 의미한다."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왜 노력하지 않았나.

"지금 가장 안타까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에야 본격화된 보수 시민운동은 뿌리가 무척 약하다. 회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회비를 내야 유지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한국의 보수는 책도 잘 읽지 않는다. 정기 구독자를 확보하려 해 봐도 알려진 지도층 인사들조차 구독료 내고 잡지 사 보는 문화가 없다. 반면 진보 세력은 이념 서적을 읽는 데서 출발하다 보니 책 읽는 습관은 잘 갖춰져 있다. 앞으로 NGO 영역에서 보수는 약화 정도가 아니라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 보수 세력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존중 같은 보수의 근본적인 소양이 부족한 상태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보수의 재정립' 같은 것은 영영 어려울 수도 있다."

―복간 계획은.

"그동안 발행 부수 600~700권 규모로는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오프라인 인쇄 매체의 지속이 어렵다면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계속하는 방식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보수 이념으로 이렇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룬 잡지는 거의 없으니, 우리가 가진 장점을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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