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공론화' 카드 꺼낸 文, 승부수 Vs 자충수

최훈길 2017. 6. 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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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안전, 비용 등 종합고려"..9월 폐지 여부 결론
공론화위원 구성·합의 방식, 최대 관전 포인트
총손실 2.6조.."안전 최우선" Vs "지자체 피해"
원전 사회적 대타협, 첨예한 논란 증폭 갈림길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나서기로 한 것은 건설 중인 원전을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도출에 나선 유례 없는 사건이다. 향후 3개월 논의 결과에 따라 첨예한 쟁점을 풀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룬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인지, 중심을 못 잡고 논란만 키운 자충수에 걸린 것인지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文 “안전·비용 등 종합고려”..9월 결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 1호기 원전의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신고리 5, 6호기 건설 공론화 문제는 공론화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일정 규모 시민 배심원단에 의한 공론 조사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며 “공론화 작업을 보다 중립적이고 공정하기 진행하기 위해 3개월 기간의 공론화 작업 기간 중에 (건설을) 일시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고리 5·6호기는 9월 말까지 3개월간 공사가 중단된다. 신고리 5·6호기는 지난해 6월 건설허가를 받은 뒤 현재까지 28.8%(종합공정률 기준) 공사가 진행됐다. 한수원 관계자는 “건설 중인 원전의 공사를 중단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 같은 시도에 나선 것은 탈핵 공약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을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다. 하지만 수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건설 사업이 백지화될 경우 법적 문제뿐 아니라 업계·지자체에 미칠 피해가 크다. 그렇다고 건설을 계속하면 지지자들 반발이 크고 공약 폐기 논란까지 일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원전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신고리 공론화’를 처음으로 시사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일단 건설을 중단한 뒤 사회적 공론화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27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공론화 방식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어 이날 오후 홍 국무조정실장이 브리핑을 통해 공사를 잠정중단하되 공론화 데드라인을 9월로 못박았다.

◇공론화위원 구성·합의 방식, 최대 관전 포인트

정부, 업계, 에너지·환경 전문가들의 입장을 종합하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론화위원회 등을 어떻게 꾸릴지 여부가 첫번째 관문이 될 전망이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조사의 방식 설계 등 일체의 공론화 기준과 내용을 결정하는 독립기구다.

홍 국무조정실장은 공론화 위원과 관련해 “이해 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가 아닌 사람 중에서 국민적 신뢰가 높은 덕망 있고 중립적 인사를 중심으로 10인 이내로 선정하겠다”며 “남녀 비율을 균형 있게 배치하고 특히 1~2명은 20~30대로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공론화위원회 위원 및 시민배심원제 구성이 최대 관건”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이 위원에 포함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3년 당시 고농도 방사능 폐기물 관리시설(방폐장) 부지 등을 논의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위원들 이견만 확인한 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전철을 밟지 않고 위원을 제대로 구성할지 여부가 1차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는 사회적 합의 방식이다. 어떤 기준, 방식으로 결론을 내릴지 현재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국무조정실장은 “합의 방식은 정부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전체적인 방식은 독일에서 진행 중인 공론화 방식을 참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7만명 설문, 120명 시민배심원, TV토론 검토”

부산 울주군 신고리 3·4호기 전경. 부근에 건설 중인 5·6호기의 종합공정률은 28.8%다. [사진=고리원자력본부, 뉴시스]
현재 독일은 ‘핵폐기장 부지선정 시민소통 위원회’를 구성,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 공론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선 7만명 가량의 불특정 국민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대상자 중에서 120명 가량의 시민배심원(시민패널)을 선정했다. 이후 관련된 TV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시민배심원단은 충분한 토론을 거쳐 부지 선정과 관련한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안전, 환경 등 신고리 5·6호기 관련한 쟁점을 일단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이후 쟁점별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택할지, 다수결로 정할지 등 사회적 합의를 내리는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가 기준, 합의 방식을 결론 내리는 과정에서 이해 관계자들이 정면으로 충돌할 수도 있다. 환경단체는 원전 위험성, 탈핵 공약 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건설 중단이 해법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는 지자체를 비롯한 경제적 피해가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총손실 규모(매몰비용)은 2조6000억원(공사비 1조6000억원, 보상비용)이다. 신고리 5·6호기 운영사는 한수원, 시공사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맡고 있다. 이 컨소시엄에는 삼성물산(028260), 두산중공업(034020), 한화건설이 참여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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