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독서 수첩 24] 넛셸 | '햄릿'의 비극을 뒤집은 철학적 희극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7. 6. 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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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비관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작가는 삶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큐언은 햄릿의 대사를 떠올리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이라고 햄릿은 중얼거렸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이 소설에 대해 "'햄릿'을 희극이 가미된 존재론적 비극이라 한다면, '넛셸'은 비극이 가미된 철학적 희극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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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비관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작가는 삶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 : 블룸버그>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1만3500원 | 264쪽

“나는 여기 한 여자의 몸속에 거꾸로 들어있다.”

오늘날 영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장편 ‘넛셸(Nutshell)’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입부가 기괴하다. 매큐언이 지난해 발표했고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이 소설은 자궁에 들어있는 태아의 서술로 진행된다. 어머니의 배 속에 갇힌 태아가 ‘나’로 등장해 자궁 바깥의 인간과 세상에 대해 지껄이는 것.

매큐언은 햄릿의 대사를 떠올리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이라고 햄릿은 중얼거렸다. 덴마크 왕이었던 부친이 왕위를 노린 숙부에 의해 독살되자 후계자의 지위가 위태로워진 햄릿은 숙부의 측근으로부터 항상 경계 대상이 됐다. 햄릿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관념(호두껍데기) 속에서 왕 행세를 해도 좋으니 실제 권좌엔 욕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흘린다. 그러나 여기엔 단서가 붙어 있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이라는 것. 그 말은 현실을 가리킨다. 동생이 형을 독살하고 형수를 아내로 맞은 상황이야말로 악몽이기에 견딜 수 없으니, 숙부에게 복수하겠다는 의지를 감추고 있다.

태아를 통해 울리는 희망의 메시지

매큐언은 호두껍데기를 여성의 자궁으로 바꾸고, 햄릿 대신 태아를 앉혔다. 그 태아는 사색적인 햄릿 못지않게 똑똑하다. 어머니가 인터넷의 팟캐스트로 듣는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탯줄을 통해 흡수해서 곧 그가 진입할 세상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자본주의는 부패했는데, 아무런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태아는 유럽이 이슬람 극단주의의 테러와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실은 햄릿이 두려워했던 악몽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태아는 어머니와 삼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연극 ‘햄릿’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삼촌과 육체관계를 가진 지 오래됐고, 아버지를 독살하려고 구체적 계획까지 세운 것을 엿듣게 된다. 삼촌은 형이 죽은 뒤 남길 유산에 눈독을 들여왔다. 태아는 고민한다. 어떻게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태아는 독살 시도를 멈추기 위해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유산을 유도하려고 한다. 그는 태어날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한다.

소설은 이런 엉뚱한 상황을 우아하면서도 해학적인 문체로 묘사한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이 소설에 대해 “‘햄릿’을 희극이 가미된 존재론적 비극이라 한다면, ‘넛셸’은 비극이 가미된 철학적 희극이다”고 평했다.

결국 태아의 아버지는 독살당하고 만다. 남편을 독살한 여인의 심리와 감정이 탯줄을 통해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술과 수면 부족으로 제정신이 아닌 그녀는 나를 품고 계속해서 침실을 향해 올라간다. 그녀가 자신에게 말한다. 그저 내 어리석은 앙심일 뿐이었어. 그러나 내 죄라면 실수를 저지른 것뿐이야.”

태아는 어머니를 향한 미움이 커질수록 사랑도 짙어지는 양가감정에 빠진다. 그는 어머니의 범죄가 결국 들통날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그는 감옥에서 태어나거나 자라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이 들어가야 할 세상이 악몽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태어나기로 한다. 삶을 긍정하고 예찬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태어난 뒤 “나는 행운의 해변에 닿은 난파선 선원”이라고 중얼거린다. 오늘의 유럽에서 유행하는 비관주의를 거부하는 작가 매큐언의 삶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태아를 통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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