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정책, 혁신 기업 성장 막고 '좀비 회사' 양산

하워드 데이비스 전 런던정경대 학장 2017. 6. 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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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가들은 생산성 문제에 직면했다. 현재 전 세계 기업의 평균 시간당 산출량은 2008년 이전보다 낮아졌다. 특히 영국의 생산성은 과거에 비해 큰 격차를 보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대부분이 생산성 하락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경제학자들이 각기 다른 설명을 내놓았지만, 합의를 이끌어낼 만큼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프랑스의 2015년 시간당 생산량은 2008년 이전보다 14%가량 낮다. 선진국 중 가장 생산성이 높았던 미국의 경우 9%, 독일의 경우 8%씩 시간당 생산량이 떨어졌다. 만약 현재의 저성장이 지속된다면 2021년 미국인의 평균 소득은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16%가량 떨어질 것이다. 미국의 연간 생산성은 1945년부터 2007년까지 연간 2%씩 증가했다.

영국은 특히 생산성 하락면에서 ‘만성 증후군’을 겪고 있다. 2007년 영국의 생산성이 OECD 평균보다 9% 낮았는데, 2015년 그 격차가 18%로 더 커졌다. 놀랍게도 영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독일과 비교해 35% 낮고, 미국보다 30% 떨어진다. 심지어 프랑스 노동자가 금요일에 쉰다고 해도, 주 5일 근무하는 영국 노동자 생산량과 맞먹을 정도다. 영국 기업은 OECD 국가 중 가장 취약한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의 생산성 하락 요인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지목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 시장 재건을 위해 시중 은행이 신규 대출을 제한했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은 어려워졌지만, 이미 부채가 있는 기업은 초저금리 환경 덕분에 재정 부담을 덜었다. 이에  중견기업 관리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을 내면서도 직원 수를 유지하는 등 기업의 생명을 연장하게 된 것이다.  반면 새롭고 생산적이며 혁신적인 신생 기업은 성장하기 위한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 대부분 사업을 포기하게 됐다. 쉽게 말해 위기 이후 금융 정책이 혁신 회사는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부채가 많은 ‘좀비 회사’는 오래 생존하도록 해, 국가 전반의 생산성을 떨어뜨린 것이다. 실제로 저금리가 지속되는 동안 대부분 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사업을 도모하기보다는 낮은 금리의 혜택을 이용해 명맥만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금리 올리면 기업 생산성 향상”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금리 정책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희생하는 것)’를 인정했다. 영란은행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영국 기업의 생산성이 1~3%가량 향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후에는 생산성보다 높은 실업률이 더 큰 문제였기 때문에, 초저금리 통화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저금리와 생산성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쟁은 은행 시스템을 넘어 자본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앙은행 비판론자들은 엄청난 양의 양적 완화를 통해 지나치게 낮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자산 가격이 무차별적으로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등 시장이 부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생산적이고 높은 잠재력을 가진 기업은 살리고 실패해야 할 무능력한 기업은 도태시키는 역할을 못했다. 즉, 근본적으로 생존할 가치가 없는 기업이 시장에 너무 많아진 것이다.

저금리 정책에 대한 이와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그렇다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약한 기업을 파산시키는 게 옳은 일인가? 영란은행을 포함해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 런던에 있는 영란은행 박물관 모습. 영란은행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영국 기업의 생산성이 1~3%가량 향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 블룸버그>

투자자 보호보다 불평등 해결이 중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금융 규제 기관은 스스로의 역할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금융 당국은 시장의 분배 효율성보다 투자자 보호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물론 투자자 보호는 중요하다. 하지만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Eugene Fama)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적했듯이, “자본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본의 소유권 분배”다. 특히 현재 선진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양극화가 심화됐기 때문에, 앞으로 중앙은행은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금융 당국이 파마 교수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기업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감독하는 데 특히 엄격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업은 도태되지만, 혁신적인 기업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건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 간 활발한 경쟁을 유도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지수를 벤치마크한 자산운용사가 큰돈을 버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현재의 생산성 저하에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생산량’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선진국 경제 구조가 제조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변하면서 과거의 산출 수단이 맞지 않아 오류가 생긴 것이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2000년대 이후 생산 증가는 과소평가됐을 수 있다. 아니면 인터넷 기술 기반의 산업으로 커진 생산성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또 다른 기술적 도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자율주행차, 드론, 3D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적 혁명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든 앞으로 중앙은행의 핵심 과제는 금리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면서 통화 정책이 자본 배분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생산성 혹은 실질임금 상승에 대한 당국의 조치가 장기간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사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는 것도 모두 경제적 요인 때문이다.

▒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모건스탠리 이사, 영란은행 부총재, 현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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