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 "추모대회 전날 경률이가 꿈에.. 울면서 깨"

입력 2017. 6. 27. 16:25 수정 2017. 6. 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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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빌리어드뉴스 창간 인터뷰] 조재호-①
당구선수 되려고 고1때 자퇴..김철민 문하생으로
양구대회 우승으로 슬럼프 봉인해제..지금부터 전성기

‘당구 전문 뉴스 사이트’인 MK빌리어드뉴스가 28일 오픈했다. MK빌리어드뉴스는 창간 기획으로 세계 당구계를 평정하고 있는 4대 천왕(딕 야스퍼스, 다니엘 산체스, 프레드릭 쿠드롱, 토브욘 브롬달)과 한국의 월드챔프 4명(조재호, 최성원, 강동궁, 허정한) 릴레이 인터뷰를 마련했다. 4대 천왕은 인터뷰 섭외 순으로, 국내 선수는 랭킹 순으로 인터뷰를 게재한다.

2009년 포르투 월드컵 32강전. ‘당구의 신’으로 불리는 토브욘 브롬달(스웨덴)은 ‘무명’의 동양선수한테 쩔쩔맸다. 이 선수는 빠르고 자로 잰 듯한 스트로크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대2로 브롬달을 물리쳤다. 경기 후 브롬달은 한국관계자에게 “저 선수 한국 랭킹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16위”라는 답변에 거짓말 말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선수가 바로 조재호(37·서울시청)다.

지금은 한국 랭킹 1위(6월초 양구 정중앙배 대회 우승으로 1위로 올라섬)에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조재호지만 이때만 해도 국제무대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그때 브롬달은 예언했다. “조만간 세계대회 시드권에 들어올 선수”라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조재호는 세계 랭킹 49위를 시작으로 한걸음씩 뛰어올라 13위의 시드 랭커가 됐다. 그런 조재호를 MK빌리어드뉴스가 만났다. 점심식사를 하며 시작한 조재호와의 인터뷰는 서울 서초구 자신의 연습장 인근 커피숍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무려 3시간이나 진행됐다.

▲고1, 자퇴 후 ‘죽방 전설’이 되다

환한 함박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준 조재호는 당구 시작 계기, 동갑내기 고 김경률과의 인연, 슬럼프 및 극복 과정, 가족얘기에 이르기까지 ‘만담’을 풀었다.

“I woke up to find myself famous(눈 떠보니 유명해져있었다).” 15년 전 조재호는 이 문장의 주인공이 됐다. 조재호는 2002년 3월 15일, 만 20세11개월의 나이로 SBS배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했다. 동시에 전국대회 최연소 우승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1999년 12월에 선수 등록을 하고 1년 4개월 만에 우승한 그에게 당구계가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비 선수 시절에도 그의 이름은 당구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그의 당구인생은 아버지가 열어줬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당구에 재미를 붙여 중학교 1학년 무렵에는 4구 300점을 쳤다. 그는 “내 키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별로 없는데 ‘조재호’하면 당구라고, 재능이 있다고 주변에서 얘기해 주니까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이미 학교에서 당구 왕으로 불리던 그는 당구선수가 되기로 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선택한다. 이어 한 세대를 풍미한 당구선수인 김철민(65)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쓰리쿠션, 포켓볼, 예술구까지 다방면에서 명성을 떨친 김철민 선생에게서 직접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방황도 했다. 그는 “(문하생에서)뛰쳐나와 ‘야인’생활을 했다”며 “18살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방(내기당구)을 치다보니 재야의 고수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살 한 달 평균 400만원을 내기당구로 벌었다. 다시 정신 차리고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김철민 선생님 당구장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정식 선수가 됐다.

▲경률이와는 ‘친한 악연’…“엄청 친했는데 엄청 싸웠죠”

재담꾼처럼 쉴 새 없이 얘기보따리를 풀던 조재호는 어느 순간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기자가 얼마 전 끝난 제2회 김경률 추모배 당구대회(4월 29~30일)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봤다. 잠시 후 입술을 뗀 조재호는 “시합 전날에 경률이가 꿈에 나오기도 한다”면서 “추모대회가 있는 아침이면 울다 잠에서 깬다”고 말했다.

그는 “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눈 뜨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눈물이 난다”면서도 “그렇게라도 가끔 얼굴을 보여주면 좋겠다”며 슬픈 미소를 보였다. 그는 ‘김경률 추모대회’ 추모위원장을 맡고 있다.

조재호는 김경률과의 12년 우정을 ‘친한 악연’이라고 표현했다. 자주 의견이 부딪쳐 싸우다 친해진 사이라며 “엄청 친하면서 엄청 싸웠다”고도 말했다. 식당에 가면 메뉴판을 볼 틈도 없이 음식을 시켜대는 김경률에게 화가 나 다툰 일도 있었는데, “야, 니 진짜 말 안 듣네”라고 말하는 그를 두고 자리를 떴다가도 해질녘에 다시 만나 소주 한 잔에 풀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화해에는 소주가 매번 큰 몫을 했다.

스스로 다혈질이라고 고백한 조재호는 “옛날에는 경기 중에 열 받으면 시합이 끝날 때까지 열이 식지 않았는데 그런 내 성격을 일부러 이용하는 선수들도 있었다”면서 “이제는 열을 받아도 최대한 빨리 식혀서 게임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이어 “경률이도 2009년에는 ‘이제는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네’라며 웃더라”고 덧붙였다.

▲슬럼프? 이제는 “봉인 해제!”

조재호는 6월 초,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2017 국토정중앙배’ 대회 결승에서 허정한을 꺾고 우승했다. 2014년 대한체육회장배 우승 이후 2년 6개월만의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그에게 ‘이제 슬럼프 논란이 줄겠다’고 질문하자 “사실 이번 대회 전에도 국내 랭킹 3위, 세계 랭킹 10위였는데 그런 나보고 사람들이 슬럼프라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우리나라 정서 자체가 우승 소식이 없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경기를 하면서 발견한 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는 연습을 하는 편”이라며 “그 기간이 길어서 슬럼프로 보인 듯하다”고 해석했다. 이어 “기간이 길 수밖에 없는 연습을 시작했다”면서 “확실한 포지션 플레이 연습을 하다 보니 공의 스피드나 움직임이 줄어서 힘이 빠져 보였나 보다”라고 말했다.

스트로크를 바꾸는 것은 골프의 아이언 중 어떤 것이 손에 익느냐 하는 문제와 같다. 스트로크를 바꾸면 많은 게 변한다. 그는 “기존 스트로크에 한계점이 느껴지면 공부하고 연습하며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연습은 다분히 전략적인 것이었다. 빠르고 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그의 뇌리에 어느 날 ‘내가 나이를 먹으면?’이라는 질문이 스쳤다. 공격력만 강화할 게 아니라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장기적인 전략을 세웠다는 것.

그는 “정확성과 공격력을 고루 키우려고 하다 보니 완성은 안 되고 시간은 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난 5월) 오미자배 대회 때 큐 미스를 연달아 두 번 하고는 이제 그냥 내 맘대로 쳐보자고 마음먹었다”면서 “국토정중앙배대회에서 슬럼프를 봉인해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가 내 전성기...

그에게 전성기에 대해 물어봤다. “전성기요, 지금부터 시작이죠. 새로운 연습법, 타구법을 개발하는 진화형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자신의 성적에 대해서도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단 내후년이 더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선 포함, 오는 7월 3일부터 시작하는 포르투월드컵은 그에겐 각별하다. 브롬달을 꺾으며 무명의 그를 세계무대에 알린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각오가 남다르다. 따라서 아예 다른 출국계획을 짰다.

포르투 월드컵에 출전하는 33명의 한국 선수 대부분은 7월 4일에 출국, 카타르 또는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일정이다. 그러나 조재호는 그보다 이틀 먼저 출국해 터키의 초클루 선수 집에 3박 4일간 머물면서 시차적응과 연습을 할 계획이다. 초클루와는 지난 5월 호치민 월드컵 8강전에서 맞붙었던 상대이며, 조재호에게 패배를 안겼던 선수. “외국의 다른 선수와 두루 친한 편인데, 초클루와는 특히 친한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제가 터키로 가지만, 그 친구가 한국에 오면 우리집도 오고 그럽니다.”

이어진 얘기는 ‘연습론’이었다. 일부 당구인 사이에서는 조재호가 연습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재호는 이에 대해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단지, 1시간을 꼬박 타구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15분을 연습하고 45분은 쉬거나 예술구를 친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최장 15분이다.

그는 “집중해서 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쉬는 게 맞다”면서 “평생 당구 치면서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공을 3~4시간씩 연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론을 펼쳤다.

그는 동호인을 위해서도 조언했다. “평상시에 나오는 공, 칠 수 있는데 놓치는 공, 평소에는 괜찮은데 시합 때 잘 안 맞는 공 같은 걸 연습해야 합니다. 그게 실력향상의 지름길입니다.”

[MK빌리어드뉴스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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