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환의 인사이트] 선배들이 '간절함'을 말한데는 이유가 있다

임기환 2017. 6. 2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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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환의 인사이트] 선배들이 '간절함'을 말한데는 이유가 있다

(베스트 일레븐)


누구는 자신감을 가져야 된다고 했고, 누구는 간절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 같이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축구가 개인화되고 물질화됐으며, 내셔널리즘을 대하는 마인드가 변했다고 해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 때만큼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 축구는 위기에 빠져 있다.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장담하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끌었던 2013년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위기이긴 했다. 그때도 우즈베키스탄의 결과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갈렸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축구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란,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일본은 한국과 차이를 벌리고 있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 등 제3지대 아시아 국가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4승 1무 3패. 한국의 2018 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성적이다. 한국 축구의 현주소기도 하다. 한국이 본선에 오른 지난 여덟 번의 최종 예선에서 3패를 당한 적은 없다. 최종 예선에서 5할을 약간 웃도는 승률은 한국 축구가 아시아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신력은 축구에서 낡은 표어가 됐다고 말한다.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로 흐르는 현대 축구에서 ‘헝그리 정신’을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정신력이 배척될 필요는 없다. 유독 한국 축구에서 정신력은 ‘태권도 킥’이나 ‘붕대 투혼’ 등 어딘가 세련되지 못하고 이젠 추구할 필요가 없는 낡은 덕목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정신력은 그런 식으로 배척될만한 덕목이 아니다. 어떤 스포츠든 기본은 정신력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세대는 신구 조화와 정신력과 체력이 이상적 합일을 이룬 멤버였다. 송종국 MBC 해설위원이 말하듯 기술은 지금 후배들보다 부족했지만, 무언가 이뤄내겠다는, 그리고 최대한 높은 곳에 올라가 대한민국 국민에 기쁨을 선사하겠다는 마음은 스쿼드 전반에 팽배해 있었다. 지금 선수들에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악착같음’과 ‘한 발 더 뛰어야 한다는 정신’이 그들에게는 기본으로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이라는, 앞으로 평생 보기 힘들 업적을 이뤄 낼 수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스쿼드의 이력서는 지금보다 초라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뛰는 선수는커녕, 유럽파도 전무했다. 중국파도 없었고 해외 커넥션이라고 해야 기껏 일본 J리그 정도였다. 스쿼드 다수가 국내파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메리트도 간과해선 안 되겠으나, 지금 세대와 근본적 차이는 태극마크를 대하는 마음자세였다.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항구적인 덕목들이 있다. 축구에선 체력, 기술, 정신력이다. ‘정신력’만 강조해선 구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겠지만, 굳이 축구가 아니라도 어디서 무얼 하든 정신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대한민국 FC를 대표하는 집단이라면,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공을 잘 차는 선수들이 모였다는 자부심이 있다면, 플레이 하나하나, 뜀박질 한달음 한달음 소홀히 대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이천수 JTBC 해설위원과 유상철 울산대학교 감독은 26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열린 팀2002 세탁기 기부 행사에서 지금 후배들에게 가장 필요한 키워드는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간절함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선수들이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따끔한 지적이었다. 김병지 팀2002 회장은 “투혼”을, 최진철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희생”을 강조했다. 그들이 말한 키워드는 요즘의 한국 축구에서 찾아보기 힘든 덕목들이었다. 후배들에게 간절함이 보였다면 대중들은 일부 선수들이 설렁설렁 뛰는 것 같은 느낌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송종국 해설위원과 최태욱 SPOTV 해설위원은 각각 자신감과 자부심을 언급하며 후배들의 기를 살리는 키워드를 꺼냈다. 세세히 따지면 자신감과 자부심은 다르다. 자신감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보한 파이팅에 가깝고, 자부심은 자기를 소중히 하는 마음이 담긴 자신감이다. 그래서 자부심이 더 상위 카테고리에 있다. 최태욱 해설위원은 “대한민국 최고 선수들이 모인 게 대표팀이다.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뽑힌 것이기 때문에 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 어쩌면 개인이 보유한 기술과 화려한 이력서보다 현 대표팀에 더 필요한 건 선배들이 언급했던 ‘잃어버린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 잃어버린 가치를 남은 두 경기에서 복원하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는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도 있다. 월드컵 본선행 실패는 단순히 대회 한번을 못나가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대외적 위축이 내적 수축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한국 축구가 가장 잘 나갈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해외파들이 득세했을 때가 아니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해져 버린 한국 축구에 내셔널리즘이 터부시되고 있는 현상도 결코 바람직하진 않다. 그렇기에 한국 축구의 중대차한 현 지점에선 집단적 인식의 전환이 더더욱 필요하다. 예선 참가에 의의를 두는 바누아투 선수도 심지어 세계 최강 독일 선수도 가슴팍에 박힌 자국 국기는 소중하게 여긴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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