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포커스] '화려한' 1차지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이들이 더 많다

안준철 2017. 6. 2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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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프로야구 1차 지명은 프로 원년부터 존재해왔던 제도다. 말 그대로 그해 연고지역 신인들 가운데 ‘1순위’로 꼽히는 선수들을 미리 선점하는 제도다. 각 구단이 연고 지역 유망주 중 최고라고 인정한 선수에게 독점 계약 권리를 행사한다. 이는 미국과 일본에는 없는 KBO리그의 독특한 제도다.

물론 1차지명도 잠시 사라진 적이 있었다. 전력 평준화를 위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됐다. 지역마다 고교 유망주들의 불균형이 심해 특정 팀이 계속 이득을 본다는 불만이 높아진 탓이다. 이 시기에는 신인 선수들의 전체 순위가 랭킹처럼 받아들여져 있었다. 전년도 최하위팀이 전체 1순위 선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2010년 전체 1순위는 LG트윈스가 지명한 사이드암 신정락(당시 고려대)이었다. 2011년에는 한화 이글스가 좌완 유창식(당시 광주일고)을, 2012년에는 한화 이글스가 내야수 하주석(당시 신일고)을, 2013년에는 넥센 히어로즈가 우완 조상우(당시 대전고)를 뽑았다. 다만 2012년과 2013년에는 신생 NC다이노스에 대한 특별지명 2명이 먼저 있었다.

넥센 히어로즈 이정후는 올 시즌 프로야구의 최대 히트상품 중 하나다. 올해 2월 고교를 졸업한 신인선수답지 않게 뛰어난 기량으로 프로야구를 뒤흔들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1차지명은 5년만인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활했다. 프로야구의 근간인 지역 연고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반발이 심했다. 프로 구단들이 연고 지역 아마 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대형 유망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었다. 또 해외 유출도 많아졌다. 이런 단점이 고개를 들면서 결국 다시 1차 지명이 부활했다.

올해도 26일 10개 구단이 1차지명 선수를 발표했다. 투수 8명과 내야수 1명, 포수 1명이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1차지명은 억대 계약금이 보장되고, 다른 신인 선수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올해 넥센에 1차지명으로 입단한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현역시절을 연상케 하는 플레이로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떠올랐다. 26일까지 이정후는 7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0 2홈런 25타점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정후처럼 팀의 간판스타로 성장한 선수와 달리 거의 대부분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정후와 같이 순수 신인이 신인왕을 수상한 경우도 10년(2007년 두산 임태훈)이 됐다. 10년 동안은 중고신인 천하였다. 물론 1차지명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해 뒤늦게 기량이 만개한 경우도 있긴 하다. 이정후의 사례보다는 조용히 사라진 1차지명 선수가 더욱 많다.

◆ 2000년 이후 1차지명 선수 110명…누가 살아남았나

2000년 이후 1차지명된 선수는 모두 110명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2007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는 연고지 이동(서울) 때문에 2003년부터 2008년 신인드래프트까지 1차지명권을 사용하지 못했다. 넥센 히어로즈로 재창단 된 이후인 2009년 신인드래트프에서 1차지명을 처음 사용했고, 이후 2014년부터는 다른 서울구단인 LG트윈스, 두산베어스와 지명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서울 지명권을 행사하고 있다.

멀리 2000년 1차지명된 선수 8명 중 현재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배영수(36·한화)가 유일하다. 다만 배영수도 지명구단인 삼성 유니폼을 벗고, 2015년부터 한화로 이적해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에 1차지명돼, SK로 지명권이 승계된 좌완 이승호의 경우에는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지만, 롯데-NC를 거쳐 지난해 SK에서 은퇴했다.

한화 김태균은 데뷔년도인 2001년 신인왕이다. 김태균은 그해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한화에 1차지명으로 입단했고, 한화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진=MK스포츠 DB
그나마 황금세대라 불리는 2001년 1차지명자들은 대부분 현역으로 뛰고 있다. 롯데가 1차지명으로 뽑은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한화 김태균과 LG 이동현은 아직도 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 김태균은 2001년 신인왕이기도 했다. SK에 1차지명된 정상호는 2015시즌이 끝난 뒤 FA로 LG유니폼을 입었다. 다만 두산은 2000년과 2001년 1차지명자들이 1군 출전기록 없이 은퇴하는 신인 농사 흉년기였다. 2000년 1차지명 문상호(당시 충암고)와 2001년 황규택(휘문고)이다. 2002년 1차신인지명자들 중 KIA 김진우와 롯데 이정민은 아직 그 팀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다. 다만 김진우는 선수생활의 굴곡이 많았고, 이정민도 오랜기간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다. 2003년 1차지명자들은 현재에도 대거 볼 수 있는 이름들이 많다. 다만 한화 안영명 빼고는 모두 지명당시 구단과 결별했다. LG에 지명됐던 내야수 박경수는 현재 kt위즈에, SK 우완 송은범은 한화로, 두산 우완 노경은은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있다. 2004년은 김주형(KIA), 장진용(LG), 김재호(두산)가 같은 유니폼을 14년째 입고 있다. 롯데 장원준과 삼성 박석민은 각각 두산과 NC로 팀을 옮겼다.

2005년은 SK 최정과 미국 미네소타에 진출한 박병호(LG트윈스)가 눈에 띈다. 2006년에는 한기주(KIA) 이재원(SK) 정도다. 한화에 1차지명된 우완 유원상은 LG로 팀을 옮겼다. 2명씩 뽑았던 2007년에는 김광현(SK)이 단연 돋보인다. 당시 신인왕은 앞서 언급했던 두산 임태훈이었다. 다만 임태훈은 현재 방출된 상태. 같이 뽑힌 이용찬은 두산 뒷문을 지키고 있다. 2008년 신인 1차지명자 중 포수 장성우(롯데)는 kt로 이적했고, 우완투수로 뽑힌 LG 이형종은 타자로 전향해 지난해부터 인간드라마를 쓰고 있다. 2009년에는 오지환(LG) 김상수(삼성) 김태훈(SK) 김회성(한화)이 활약 중이다. 넥센 강윤구는 올시즌 초 트레이드로 NC유니폼을 입었고, 세계청소년선수권 MVP인 우완 성영훈은 아직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지명된 1차지명 선수들이야 선수생활을 그만 둔 경우는 없다. 다만 1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극히 적다. 그나마 넥센이 2014년 임병욱(외야수), 2015년 최원태(우완투수) 2016년 주효상(포수), 올해 이정후까지 1차지명 선수로 재미를 보고 있다. 2014년 kt위즈에 1차지명된 박세웅은 2015년 롯데로 이적해 올 시즌 에이스로 거듭났고, 2016년 뽑힌 김대현(LG) 이영하(두산) 최충연(삼성) 정도가 1군에 출전하고 있다.

올 시즌 롯데 에이스로 성장한 박세웅은 2014년 kt위즈 1차지명 선수다. 물론 당시 kt는 신생구단이라 1차지명에 앞서 특별지명 2장을 행사했다. 심재민과 류희운이 그때 특별지명으로 입단한 선수들이다. 사진=MK스포츠 DB
◆ 프로와 아마 기량차? 심리적 부담감? 1차지명자들 왜 사라질까

위에서 살펴봤듯, 1차지명이 프로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차지명된 신인이 그 해 신인왕에 뽑혔던 케이스도 이제 2007년 두산 임태훈 이후로 10년이 됐다. 대부분의 신인들이 1군보다는 퓨처스(2군)팀에서 보내는 기간이 많다. 그 동안 아마추어와 프로와 기량 차가 급격하게 벌어졌다는 이유가 설득력을 얻는다. KBO육성위원인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일단 선수층이 얇아진 게 문제다. 요새 들어 운동을 시키려는 부모들도 줄고 있다. 재능은 있는데, 막상 야구선수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며 “운동에 소질이 있는 자원들도 직업 선수로 활약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위원은 “아마추어에서부터 좋은 자원이 없기 때문에 혹사 케이스가 많다. 이런 선수들이 프로에 올라와도 부상으로 인한 수술, 재활기간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투수들은 더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올해 이정후의 케이스는 특별하다. 구단의 배려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사실 구단입장에서 신인 선수를 위해 주전 한 자리를 빼주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심리적인 부담감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 전문가는 “내가 최고라는 생각에 프로에 입단했지만, 아마와의 수준차가 크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는 케이스도 많다”며 “특히 고졸 신인의 경우는 이제 막 스무살 아닌가. 최고 신인인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jcan123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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