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이 내디딘 발달장애 골퍼의 길

입력 2017. 6. 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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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군은 지난 15일 KPGA 정규 투어에 출전해 투어프로들과 당당히 겨뤘다. [사진=KPGA]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이승민(20)은 발달장애 골프계의 관심받는 스타다.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 골프장에서 지난 15일부터 나흘간 열린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정규 코리안투어인 카이도골든V1오픈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첫날 72타, 둘째날 76타를 치면서 이틀 합계 4오버파 공동 108등으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 건 아쉬웠다. 그 대회에서 이정환은 이틀까지 11언더파를 치면서 선두를 달렸고, 일요일에는 17언더파로 연장전 승부 끝에 우승했다.

컷을 통과하진 못했어도 이승민은 코리안투어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기뻤다. 지난 6월2일 투어프로의 자격을 획득한 뒤 첫 번째 출전한 프로대회였기 때문이다. 6년 전부터 가르치는 김종필 프로의 말이다. “평소에는 샷이 좋은데 이번 대회에서는 언론에서 많이 주목하다보니 긴장한 것 같았다. 짧은 숏 퍼트를 여러 번 놓쳤다. 샷은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다. 정규 1부 투어에 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이승민은 마음이 편안할 땐 놀라운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한다. 지난해 일본투어 퀄리파잉스쿨 2차전에선 4라운드 동안 14언더파를 쳤다. 한 라운드 베스트 스코어인 6언더파는 3번을 적어냈다.

지난 2014년9월23일 프로에 데뷔한 이승민은 올해까지 3부 리그인 프론티어투어에 12번 출전했고, 지난 2015년부터는 챌린지투어에 총 3번 출전했다. 상금은 3부 투어에서 총 345만원, 2부 투어에서는 51만원을 찍었다. 하지만 상금 액수가 얼마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국 최고의 선수들과 한 자리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발달장애인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다.

지난 16일 카이도골든V1오픈 2라운드에서 타깃을 겨냥하고 있는 이승민. [사진=KPGA]


이승민이 스타인 이유는 수많은 자폐성 발달장애인 골퍼들의 드문 롤 모델이기 때문이다. 자폐성 발달장애 3급으로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의 지능이지만 골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이승민은 지난 2일 4전5기 끝에 KPGA투어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최종 6언더파로 공동 10위에 오르며 당당히 정회원이 됐다. 지난 2014년 프로에 데뷔한 지 2년8개월 만이었다.

다음 달에 있을 2부 챌린지투어도 나갈 예정이다. 김종필 코치는 “올해는 9월 일본 퀄리파잉스쿨과 국내 Q스쿨에서 통과하는 게 승민이의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승민이는 연습을 어떻게 하라고 한번 정해주면 한 번도 꾀부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지킨다. 일단 투어에 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잠재력은 무한하다.”

실제로 PGA투어에서도 모 노먼이라는 자폐 질환을 앓았던 선수가 있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본받고 싶었던 자신만의 스윙을 가졌던 골퍼는 두 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벤 호건과 모 노먼이었다. 호건이야 모던 스윙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노먼은 생소한 인물이다. 캐나다 투어와 각종 이벤트 대회에서 55승을 달성한 그는 했던 말을 반복하고 사교성은 떨어졌지만 평생 홀인원 17번, 알바트로스 9번, 한 라운드 최저타인 59타 3번, 61타 4번, 대회에서의 코스 레코드를 33번 달성했다. 일관되고 정확한 스윙을 가져 우즈까지 모범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골프존은 임직원들의 자원봉사로 태화나눔골프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프로를 꿈꾸는 대학생 골퍼들
이승민 뿐만 아니라 골프 선수를 꿈꾸는 발달장애인 골퍼들은 제법 많다.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교육기관과 기업도 있다. 지난 2012년에 지적장애인골프협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지난달 말 스크린골프업체인 골프존은 제1회 골프존문화재단배 전국 장애인학생 초청 골프대회’를 경기도 안성의 골프존카운티 안성H에서 열었다. 중·고등학교 학생인 지적, 발달 장애인등록자, 장애인 등록 골프선수 중 18홀 플레이가 가능한 학생 24명이 출전했다. 이날 남녀 프로 선수 13명이 참여해 청소년 골퍼의 멘토 역할로 봉사했다.

골프존은 지난 12일에 ‘아름다운 도전! 제6회 태화나눔골프대회에 물품을 후원하고 참가 선수들의 연습을 지원했다. ‘태화나눔골프대회’는 전국규모의 장애인 필드 골프 대회로 스포츠맨십을 통한 자존감 향상과 도전정신 함양을 위한 행사로 6년째 진행되고 있다. 태화복지재단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최하고 경기 파주의 데니스골프클럽의 장소 협찬으로 진행됐다. 골프존은 2014년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발달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골프수업을 진행하는 ‘골프친구’ 재능기부 활동을 열어두고 있다.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한국골프대학은 지난 8일 ‘골프는 내 친구’ 지적장애청소년골프대회를 5회째 개최했다. 미니 골프게임 형식의 스내그골프로 진행된 이 행사는 골프를 통해 장애청소년의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성취감과 사회성을 높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지적장애청소년 80명이 선수로 출전했고, 재학생 100여명이 멘토로 참여했다.

지난 8일 횡성의 골프대학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스내그 골프 이벤트가 열렸다.


이 학교에는 발달장애인인 골프 선수 8명이 재학중이다. 그중에는 세미프로에 도전하는 선수도 있다. 권선아 교수의 말이다. “2013년부터 학생을 받고 있다. 골프를 하면 사회성과 인내심을 기르게 된다. 골프룰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자연 속에서 하는 경기라 발달장애인에게는 효과가 뛰어나다.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협동심도 길러지는 것 같다.”

이 대학에 속한 학생 한 명은 이승민을 롤 모델로 꾸준히 KPGA세미 테스트에 도전하고 있다. 스페셜올림픽에도 출전한다. 굳이 투어프로가 아니어도 좋다. 골프계의 진로가 닫혀있지만은 않다. 졸업생 박시환 군은 모친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의 골프연습장에서 일하고 있다. 단지 교육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로 나아가고 진로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사회에서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권 교수는 강조했다. “모두가 다 내 아들 딸이거니 생각하면 해줄 것이 참 많다. 사회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그만큼 더 효과를 거둔다. 방치하면 거기서 딱 멈춘다. 대학은 한계가 있다. 기업에서도 사회 공헌차원에서 도와 달라.”

이정원 양은 지난해 스페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투어 프로를 꿈꾸는 고등학생이다.


투어 선수가 되는 꿈의 사다리
고등학교 1학년인 이정원 양은 KLPGA 세미프로 대회를 목표로 하는 발달장애인이다. 삼천리꿈나무 시합에도 나갔고, 지난해 스페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나중에는 정규 투어에 나가는 것이 꿈이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횡성에 있는 골프대학의 프로그램을 따라 함께 훈련한다. 그에게도 이승민은 롤 모델이다. 아버지 이종민 씨는 하지만 걱정이 많다. “이승민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0.1%나 될까 말까하다”면서 설명했다. 정원이를 위해 집까지 분당에서 골프하기 편한 원주로 옮겼다고 한다.

“장애가 있어 7살부터 치료 목적으로 운동을 시켰다. 하지만 단체운동은 아무래도 힘들었다. 골프는 개인운동이라서 시켰다. 집중하면서 잘 적응했다. 요즘에는 학교 수업마치고 운동하니까 하루에 4시간 정도 한다. 목표는 투어프로가 되는 것이지만 0.1%도 안 된다. 나중에 프로가 안 되더라도 장애 센터에서 다른 장애인을 대상으로 내가 함께 골프를 가르치는 교습가가 되는 방향으로 진로를 찾고 싶다.” 정원이의 사정을 듣고 지한솔 등 KLPGA프로가 시간을 내주어 자원봉사로 가르쳐 주기도 한다.

아예 정식으로 후원하는 기업도 있다. 이승민은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는 선수다. 그가 대회장을 누빌 때 모자에는 큼지막하게 은행 로고가 붙어 있었다. 하나금융은 유망 선수부터 장애우, 다문화가정 선수에 이르기까지 지원 대상 폭을 지속적으로 확대 예정이라고 한다. 이왕 그렇게 좋은 의미의 사회공헌으로 방향을 정했다면 이승민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어려운 연습 환경에 있는 주니어와 청소년에게도 기회의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이승민의 장래 꿈은 마스터스 출전이다.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꿈을 꾼다는 건 이미 이승민이 롤 모델이 된 더 어린 선수들이 그 다음 단계에 꿀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런 게 꿈의 사다리다. 그 꿈을 실현시키는 건 선수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지역사회 그리고 뜻을 가진 기업들이 함께 나설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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