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파리바게뜨 회장 한마디에..제빵사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2017. 6.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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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불법파견 의혹
"매대에 케이크 없다" 회장 한마디에
협력업체 소속으로 가맹점 배치된
제빵기사들 새벽출근에 식사 걸러

본사가 카톡 대화방 통해 업무 지시
빵길이·케이크장식·에어컨 청소까지
시시콜콜 주문하고 보고하라 요구

이정미 의원 "5천명 직접 고용해야"
본사쪽 "직접소통 않도록 조치할 것"

[한겨레]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스피씨(SPC)본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소한 빵냄새가 빵집을 가득 채우는 점심시간, 수도권의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제빵기사 ㄱ씨는 점심을 거른 채 케이크 만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새벽 6시 출근해 빵 800~1000개를 굽고 난 상태지만, 3월부터 케이크 생산 시간이 오후 1시30분 이전으로 30분 이상 앞당겨져 편의점에서 허기를 떼울 시간도 사라져 버렸다. 새벽에 출근하느라 아침도 거른 ㄱ씨가 점심도 못먹고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6일 <한겨레>가 이정미 정의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파리바게뜨 본사 관리자와 가맹점 제빵기사 사이에 오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대화내용을 보면 경위를 알 수 있다. 본사 관리자는 단체 대화방에서 “최근 회장님이 점포를 순회하다 케이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며 “본사에서 생크림 케이크 생산시간 조기시행 지시가 있었다”고 전한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에스피시(SPC) 회장이 점포에 들렀다가 케이크가 진열돼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자, 본사가 제빵기사들에게 케이크 생산을 오후 1시30분 이전으로 당길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빵은 빵대로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일부 점포의 출근시간은 아침 7시에서 6시(또는 6시30분)로 앞당겼다. 19일 <한겨레>와 만난 ㄱ씨는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사장님(가맹점주)에게도 눈치가 보이니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몇달 째 점심도 못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물도 안 마시는 기사들도 많아요”라고 털어놨다.

단체대화방 내용을 보면, 본사 지시는 매우 ‘디테일’했다. 빵 길이부터 케이크에 놓인 과일과 장식 배치와 같은 품질 관련 내용을 비롯해, 주방 에어컨 청소상태, 가정의달·크리스마스 시즌에 따른 매장 현수막 설치현황 등도 보고 받았다. 에스피시 차원의 품질평가나 위생평가가 나올 경우, ‘수검 문답’을 정리해 본사에 보고하는 것도, 신제품 빵을 고객에게 시식하게 하는 것도 제빵기사의 일이다. 10년차 제빵기사인 ㄴ씨는 “시시콜콜한 지시가 카톡을 통해 많이 내려오는데, 일일이 사진을 찍어서 보고하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며 “빵을 만드는 일도 고된데, 본사에서 나오는 지시를 처리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본사의 이런 지시는 가맹점마다 균질의 빵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본사가 노동자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없다. 이들이 파리바게뜨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이 아닌 탓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같은 가게에서 하루종일 함께 일하는 가맹점주가 고용한 노동자도 아니다. ㄱ씨나 ㄴ씨처럼 파리바게뜨 가맹점 3400여곳에서 빵을 만들고 커피를 만드는 제빵·카페기사 5470명은 협력업체 소속이다. 협력업체는 가맹점과 ‘도급계약’을 맺고 파리바게뜨와는 ‘업무협정’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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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가 퇴직 임원 가운데서 대표이사를 선정해 2~3년에 한번씩 성과를 평가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협력업체는 노동자들의 근태사항을 종합하고 가맹점주로부터 받은 ‘용역비’와 파리바게뜨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종잣돈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한겨레>가 만난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은 협력업체의 업무지시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3년차 제빵기사 ㄷ씨는 “근무하는 가맹점을 바꾸거나 임금·근태관련 내용을 제외하고는 협력업체와 대화할 일은 거의 없고, 본사나 가맹점주의 지시만 처리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동조건에 관한 상담을 진행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이런 고용형태가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금지하는 불법파견 소지가 짙다고 주장한다.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는 “직접적인 업무지시 뿐만이 아니다. 협력업체의 새해 임금 인상내역을 협력업체가 아니라 본사가 안내하는가 하면, 가맹점 제빵기사가 쉴 때 지원하는 ‘지원기사’의 경우 협력업체 소속도 있고 본사 소속도 있다”며 “파리바게뜨가 제조기사에 대한 ‘직접 지휘·명령’을 행한 실제사용자, 협력업체는 인력 파견업체 또는 본사의 인력부서”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대기업이 자그마한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에도 변칙적인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며 “파리바게뜨는 불법적인 파견인력 5천여명의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고 위법·부당한 처우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파견법상 제빵업은 파견 허용업종이 아니어서, 본사가 제조기사를 직접 고용해 가맹점에 파견할 수 없기 때문에 협력사가 가맹점과 도급계약을 맺고 있다”면서도 “본사에서 직접적으로 제조기사에게 지시를 내리지는 않고, 다만 신제품 취급 장려·식품안전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연락을 취한 것에 불과하고, 앞으로 직접 소통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처하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협력업체 제빵기사를 직접고용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가맹점에 인력을 공급하는 것은 ‘가맹점주 협의회’와 협의해야 하는 사안으로, 가맹점주들은 자율성이 침해되고 본사 통제가 강화될 것을 우려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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