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흥부는 평민 출신 부잣집 데릴사위.. 훗날 武科 급제해

이한수 기자 입력 2017. 6. 27. 03:01 수정 2017. 6. 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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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 最古本 '흥보만보록' 찾아]
1833년 쓴 가장 이른 필사본.. 판소리계 소설 중에서도 最古
송준호 前 연세대 교수 소장, 놀부를 惡人으로 설정하지 않아
"판소리의 기원 새로 써야"

'흥부전' 최고본(最古本)으로 밝혀진'흥보만보록'은 한글 고전소설과 판소리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833년 필사본으로 '흥부전' 이본(異本) 중 가장 시대가 앞선 것은 물론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지금까지 알려진 판소리계 소설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판소리 사설은 전북 고창 출신 신재효(1812~1884)가 1864년부터 10여 년간 판소리 여섯 마당으로 처음 정리했다.

'흥보만보록'은 흥보(흥부)와 놀보(놀부)를 평양 출신 평민으로 설정한 점, 흥보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서술, 놀보를 '악인(惡人)'으로 설정하고 있지 않은 점 등도 기존 이야기와 다르다. '흥부전' 및 판소리 사설의 기원(起源)을 새로 논의해야 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흥보만보록'은 송준호(81) 전 연세대 교수 소장본으로 정병설(51)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처음 자료를 조사하고 19세기 한글 소설 전공인 김동욱(37) 박사와 함께 연구·고증했다.

◇기존 최고(最古) 하버드대 소장본보다 20년 앞서

판소리계 소설 중 지금까지 가장 이른 시기 모습을 담고 있는 판본은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소장본인 '흥보젼'이다. 1897년 조선어를 배우던 일본인 하시모토 아키미가 필사한 것으로 1853년 판본을 베껴 썼다는 기록이 있어 가장 이른 시기 모습을 담은 '흥부전'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에 공개된 '흥보만보록'은 '박응교전(朴應敎傳)'이라는 제목을 단 표지의 책자에 한글로 적은 '박응교전'에 이어져 있다. '박응교전'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 박태보(1654~1689)의 전기다. 전체 60면 중 2면에서 38면까지가 '박응교전', 이어 39면부터 60면까지가 '흥보만보록'이다.

1833년 필사한 ‘흥부전’ 최고본(最古本) ‘흥보만보록’을 연구한 김동욱 박사(왼쪽)와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자료를 보고 있다. 정 교수가 처음 ‘흥보만보록’을 접하고 김 박사와 함께 분석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필사한 사람은 소장자 송준호 교수 증조부인 송병희(1845~1874)의 할머니 '남원 양씨'라고 소장자의 집안에서 전해지고 있으나 고증 결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커 정확한 필사자는 알 수 없다.

'흥보만보록'의 필사자는 '박응교전' 끝에 '계사(癸巳) 중동(仲冬)'에 필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동욱 박사는 "필체와 먹빛, 여백이나 누락 없이 이어 쓴 점으로 볼 때 '박응교전'과 '흥보만보록'은 한 사람이 같은 시기에 쓴 것"이라며 "1828년 책력(冊歷)을 재활용해 그 위에 붓글씨로 쓴 점, 표지 글씨가 1874년 사망한 송병희의 필적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계사년은 책력보다 앞선 1773년이나 송병희 사후인 1893년이 아닌 1833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무대는 평양, 흥부는 덕수 장씨 평민

'흥보만보록'은 주요 이본인 '경판본'과 '신재효본' 등과 내용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흥보만보록'은 첫 부분에서 '평양 서촌의 궁민(窮民)이시니 성명은 장천이라. 일찍 두 아들을 낳으니 장(長)은 놀보이오, 차(次)는 흥보이니…'(현대어로 일부 표기법 바꿈)라고 적는다. 이야기의 무대로 밝힌 '평양 서촌'은 현재 평양시 순안 구역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흥부전' 이본들은 모두 삼남(경상·전라·충청) 지방이나 장소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했다. 무대를 '평양'으로 밝힌 이본은 '흥보만보록'이 유일하다.

또 흥부의 성(姓)을 '장씨'라고 밝히고 있다. 흥부와 놀부의 아버지 이름은 '장천'이다. 지금까지 '흥부전' 이본에서 흥부와 놀부의 성은 연씨 또는 박씨였다. '흥보만보록'은 흥부가 훗날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서술한다. 덕수는 현재 황해도 개풍군 지역이다. 실제로 덕수 장씨는 고려 말 위구르 출신 장순룡이 시조로 알려져 있다.

'궁민'이라고 한 서술은 흥부의 신분이 양반이나 중인이 아닌 '상민(常民·평민)'임을 시사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몰락 양반설(說), 중인설, 평민설이 대립했다. '흥보만보록'에서 흥부와 놀부는 가난한 평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둘 다 부잣집(부민)의 데릴사위로 들어간다. 하지만 흥부는 친부모 봉양을 위해 돌아온 반면 놀부는 처가에 계속 있으면서 둘 사이의 빈부격차가 커진다. 이는 '경판본'과 '신재효본'에서 악한 놀부가 착한 흥부를 내쫓는다는 설정과는 다르다. '흥보만보록'을 분석한 논문은 오는 30일 국어국문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국어국문학' 179호에 실린다. 계간지 '문헌과 해석'에는 자료 전문을 공개할 예정이다.

[판소리 '흥부가' 발생지는 평안·황해도?]

"고향은 평양, 본관은 황해도… 西道 유래설 뒷받침"

'흥보만보록'은 판소리의 발생지 논쟁에서도 주목할 자료로 평가된다. 판소리의 기원은 여러 견해가 있으나 호남 지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기존 연구에서도 '변강쇠가'는 본래 황해도에서 기원했으나 남도 창에 편입되면서 신재효본 '변강쇠가'로 정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흥부전'도 서도(평안·황해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동욱 박사는 "이야기 배경이 평양이고 흥부가 황해도가 본관인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다는 설정으로 보아 서도 유래설을 뒷받침한다"며 "호남 지역이 판소리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 그 배경이 삼남 지방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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