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강원국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의 차이는 감성"

디지털뉴스부 2017. 6. 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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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내가 신동호 연설비서관만큼 썼으면 노무현 대통령께 안 혼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노 대통령은 제가 저렇게 썼어도 아마 안 받아주셨을 것 같아요. 그분은 철저하게 논리예요. 문재인 대통령도 비서관이 작성해 올린 연설문을 보고 고치실 거예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감성적인 부분들도 다 받아주시는 것 같아요."

지난달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시작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6․10 민주항쟁 기념식, 국회 시정연설, 현충일 추념식 등 굵직한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국정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대통령 연설이 끝나면 SNS에는 "대통령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오랜만!", "문재인 시대의 인기프로그램은 각종 기념식 중계방송", "연설문 전문 찾아봐야지" 등의 호평이 잇따랐다.

국민의정부 3년, 참여정부에서 5년간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담당했던 강원국(55)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연설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그를 만났다.

"추구하는 가치는 같아도 접근법은 달라"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대선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정치의 주류는 국민이어야 합니다. 권력의 주류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한 달 뒤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서는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이 다짐들은 온전히 문 대통령의 것은 아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1년 출간한 책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정부'라는 말을 썼다.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 시절에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를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국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비슷했던 두 대통령. 강 전 비서관은 두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하지만 "차이는 감성에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보면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중간 지점을 잘 찾아서 쓴 것 같아요. 노 대통령은 수사를 안 좋아하세요. 곰살갑게 구는 것을 되게 싫어하세요. 노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셨어요."

강 전 비서관은 "지금처럼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80%에 이르면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면서 "반면 지지도가 낮으면 우습게 안다. 야당도 언론도 대통령을 우습게 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갤럽에 따르면 2003년 초 60%에서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 20% 수준까지 떨어졌다. 대통령과 독대하며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었던 강 전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에게 잘 전달된 것 같으냐'는 물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께서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쓰는데 우체부가 전달을 안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언론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 악순환의 덫에 걸리게 돼요. 전달을 안 해주니까 더 자극적인 용어를 구사하는 거죠. 자극적인 말을 쓰면 언론이 가져다 쓰거든요. 자극적인 문구로 대문짝만하게 제목을 뽑죠. 대통령은 써주니까 그렇게라도 전달을 하려고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시고, 그럴수록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그런 악순환의 덫에 걸리게 되죠."

"문 대통령, 참여정부 학습효과로 잘해낼 것"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5년간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그리고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강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은 곁에서 그걸 보셨으니까, 아마 잘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문 대통령이 온화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국정을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 대통령 주재로 연설문 독회를 하면, 독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전부 한 마디씩 하려고 했어요. 대통령 앞에서 한마디 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 눈에 띌 수 있는 기회잖아요.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오건, 비서실장으로 오건,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안 하시고 끝나고 제게 따로 얘기를 해주셨어요. 저에 대한 배려일 수 있고, 대통령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욕심 자체가 없으셨던 거죠."


강 전 비서관은 이어 "노 대통령은 나서는 걸 좋아하는 분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정반대"라며 과거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형 사건을 수임해 큰돈을 벌면 노 대통령은 직원 개개인에게 '이번에 돈 좀 벌었는데, 돈 필요하나. 필요하면 얘기해라'하는 스타일이었고, 문 대통령은 아무런 소리도 안 하세요. 다들 돈이 생긴 걸 알고 있는데도 아무 얘기도 안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연말에 직원 명단을 보자고 한 뒤 'N분의 1'로 나눠주셨대요. 변호사와 운전기사, 직급 불문하고 모두 같은 금액으로 나누셨다고 해요. 말을 않고 있는 과정에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지만, 문 대통령은 그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인 거죠."

"두려워 하거나 재지 말고, 질문하고 표현해야"

강 전 비서관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표현하고 자랑하는 것을 즐겼다. 강 전 비서관은 "제가 모셨던 두 대통령은 자랑하는 걸 좋아하셨다. 두 분의 공통점은 질문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분은 정말 똑똑하세요. 천재예요. 그리고 또 자랑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쓰신 '옥중서신'을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랑이에요(웃음).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안 됐더라면 아마 나는 카피라이터가 됐을 거다'라고 말씀하곤 했어요. 글 쓰고 말하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죠. 두 분의 에너지, 두 분을 움직이는 힘은 '자랑하기'에 있다고 봐요."


강 전 비서관은 또 "두 대통령은 호기심이 많았다.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고 말했다.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독서하고 토론하고 관찰하고 메모하셨어요. 그렇게 학습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며 자랑으로 마무리하는 거죠. 자랑을 통해 쾌감을 느끼시는 거예요. 뇌는 이 쾌감에 중독돼요. 이걸 다시 느끼고 싶어서 또 다른 것에 호기심을 갖고, 학습하고, 자랑하고를 반복하는 것이죠."

강 전 비서관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난 척한다고 생각할까 봐 혹은 머릿속에 있는 수준만큼 나오지 않을까 봐 질문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두 대통령이 그러셨던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질문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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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타 정혜정 kbs.spri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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