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반대시 매국노 비난" 그날 국민연금에선 무슨일이..

김성은 기자 2017. 6. 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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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 향해가는 이재용 부회장 공판..'뇌물공여' 혐의 핵심 사안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쟁점 공방 중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절정 향해가는 이재용 부회장 공판…'뇌물공여' 혐의 핵심 사안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쟁점 공방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이 절정을 향해가고 있다. 특히 뇌물공여 혐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한 쟁점 다툼이 한창이다.

주요 증인인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김신 삼성물산 사장 등이 나와 2015년 양사 합병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증언했다.

◇"합병 반대하면 이완용, 찬성하면 기업 편들기…힘들었다"=2015년 7월10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을 다루기 위해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개최됐을 당시 홍 전 본부장의 고민은 이 한마디로 요악된다.

홍 전 본부장은 지난 21일 재판에서 증인 출석해 "2003년 (모나코 사모펀드) 소버린이 SK에 경영 개입해 주가를 단기 급등시켰다가 모두 매각, 약 8000억원의 차익을 내고 떠났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시 엘리엇의 뜻대로 경영간섭을 할 수 있는 지위가 될 것으로 판단했고 이 때 국민연금이 글로벌 헤지펀드 편을 들어 국부를 유출시켰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했다"고 설명했다.

기금운용 책임자로서 홍 전 본부장이 사회적 평가보다 더 우려했던 것은 국민연금의 수익률이다.

양사 합병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시장에서 먼저 감지됐다. 합병 발표 이후 한 달 여간(2015년5월22~7월9일) 삼성물산 주가는 5만5300원에서 6만3600원으로 15.0%, 제일모직 주가는 16만3500원에서 17만4500원으로 6.7% 올랐다. 이에 따른 국민연금이 보유한 양사 지분 가치는 같은 기간 2200억원 증가해, 코스피가 5.5% 하락한 것에 대비됐다.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에서 알 수 있듯 양사 합병 무산시 주가 급락은 불 보듯 뻔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당시 2조원 가량 보유중이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 뿐 아니라 23조원 가량 보유중이던 삼성그룹주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 전체 수익률을 끌어내리는 것이 우려됐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연금 측은 제기될 수 있는 사회적 비판에 대응하고자 상당 부분 애를 쓴 흔적이 법정에서 나왔다.

홍 전 본부장은 2015년 7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내부 실무진 의견을 들어 전문위원회(전문위)에 합병안을 부의하는 방법을 고민중이었다.

다만 이 경우 전문위는 외부 민간인들로 구성돼 국민연금의 수익성 하락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 국민연금은 양사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 추가 지분을 사면서도 정작 합병에는 반대한 모양새가 돼 '한 입으로 두 말'했다는 비판을 자처하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이 책임감을 갖고 결정하라'는 복지부의 지시와 의결권 행사지침에 맞춰 투자위원회에서 먼저 논의키로 결정했다. 결정 후에도 찬반 표결에 찬성·반대·중립·기권·표결기권 등 5개 문항지를 만들고 거수가 아닌 기명투표를 하게 함으로써 투자위원들이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한 문항이라도 12명의 위원 중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전문위로 부의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2015년 7월10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동안 격렬한 토의 끝에 8명의 찬성표를 얻어 국민연금은 양사합병에 찬성을 결정했다.

◇"합병은 사업 부진의 돌파구…합병비율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피고인 측은 양사 합병비율(1대0.35)이 적법했음을 재차 강조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합병비율은 합병 결의 이사회 전 한 달 간 평균종가, 1주일 평균종가, 이사회 합병 결정일 종가 등을 산술평균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특검 측은 당시 엘리엇의 반대나 합병반대를 권고했던 ISS(국제의결권자문기구)의 삼성물산 저평가 주장을 근거로 적정성 여부를 추궁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자산가치를 근거 삼아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것이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오히려 오류 개입의 여지가 더 많을 수 있다고 맞섰다.

기업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주가 이외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DCF(미래현금흐름할인법)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기준시점이나 평가자 주관에 따라 값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합병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영업가치를 3조5910억원, ISS는 6조1750억원,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은 4조7910억원,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은 3조3190억원으로 추정했다. ISS 평가안이 유독 높았던 것은 삼성물산이 건설부문과 상사부문으로 이뤄져 있음에도 평가 비교군을 정할 때 이를 고려치 않았다는 점, 또 삼성물산 영업이익이 유독 좋았던 2014년 한 해 실적만 반영된 점이 확인됐다.

합병비율이 국민연금이 자체 산정했던 1대 0.46이 아닌 1대0.35로 결정돼 1500억원 가량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 전 본부장은 "투자위에서 제일모직 주가를 18만원(2015년 6월11일)으로 고정하고 합병비율을 조정했을 때 나온 값이어서 이는 시장을 모르는 가정이라고 지적이 나왔다"며 "다른 투자위원들도 이같은 가정에 동의해 공식 회의록에서는 이 부분을 뺐다"고 말했다.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유리하게 조정될 경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가 동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시장성이 무시된 이론적 계산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양사 합병이 사업상 판단에 의해 추진된 정황도 공개됐다. 이는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특검 측 의혹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지난 23일 법정에서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은 성장 모멘텀을 찾고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은 해외진출을 노려 경영상 판단으로 성사된 것"이라며 "삼성물산은 합병 이후 3조원에 가까운 잠재적 부실을 정리했고 합병이 아니었다면 신용등급 하락과 유동성 위기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합병 발표 이전, 국민연금 등 기관은 유가하락에 따른 글로벌 건설 프로젝트 발주 둔화, 전반적 상품가격 하락으로 상사부문 마진 약화 등을 이유로 삼성물산 주식을 순매도 중이었다. 삼성물산도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저유가로 인한 해외사업 타격을 입었는데 해외사업에 늦게 뛰어들어 어닝쇼크가 다소 늦은 2015년 1분기에서야 찾아왔다.

한 애널리스트는 당시 보고서를 통해 "2015년 하반기 삼성물산에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당사는 그것을 '수주'라고 분석한 반면 상성그룹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이라고 대답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양사 합병으로 그룹 지배구조도 단순화돼 정부 정책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7월7일 이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는 홍 전 본부장과의 만남 자리에서 "순환출자 금지법안이 도입된 이후 지분구조를 단순화하고 있다"며 "3년전 86개에 달하던 순환출자 고리가 현재까지 10여개로 정래됐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되면 7개로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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