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원] 유주안이 흔든 60분, 반복된 절망의 4분

서재원 기자 2017. 6. 26.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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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 수원월드컵경기장] 서재원 기자= 60분까지 완벽했다. 수원 삼성의 10대 신인 유주안(19)은 1골 1도움의 활약을 펼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수원은 두 골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마지막 4분을 버티지 못하며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수원은 25일 오후 6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16라운드 강원과 경기에서 3-3으로 비겼다. 조나탄, 곽광선, 유주안의 연속골로 3-1로 앞섰지만, 후반 두 골을 허용했다. 특히 후반 44분 조원희의 자책골이 치명적이었다.

# 뻔하지 않았던 수원의 선발, 유주안의 존재

이번 시즌 들어 가장 파격적이었다. 경기 한 시간을 앞두고 발표된 수원의 선발 라인업이 그랬다. 최근 컨디션이 안 좋은 염기훈의 제외는 차치하더라도, 그를 대신해 유주안이란 신예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 충격이었다.

뻔한 수원의 선발 라인업. 이는 그동안 서정원 감독을 옥죄던 부분이었다. 팬들의 불만 사항이기도 했다. 모든 경기를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선발 라인업을 꺼내다보니, 상대 입장에선 수월하게 수원과 경기를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원전은 달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서정원 감독은 "R리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유주안은 꾸준히 활약한 선수 중 하나였다. 최근 경기(안산전)에선 해트트릭까지 기록했다.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는 평등하고, 그래서 유주안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취재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신인이 선발로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정원 감독에겐 확신이 있었다. "유주안은 어리지만 골문 앞에서 재치 있는 플레이를 펼친다. 결정력도 탁월하다."

# 서정원의 확신 이유, 유주안의 완벽한 데뷔전

그에 대한 의심은 3분 만에 해소됐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전반 3분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유주안이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달려 들어오던 조나탄이 재치 있게 밀어 넣었다. 데뷔 3분 만에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 장내 아나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유주안의 이름을 외쳤다.

노력의 결과였다. 경기 후 만난 유주안은 "훈련 때 조나탄 형과 말을 맞췄다. 조나탄 형이 먼저 다가와 자신이 할 플레이와 내게 요구하는 움직임을 말해줬다"고 첫 공격 포인트에 대해 논했다.

조나탄과 케미도 돋보였다. 조나탄은 득점 이후 유주안을 위한 세리머니를 했다. 자신이 무릎을 굽혀 유주안의 축구화를 닦아주는 모습을 연출했다. 유주안은 "골 세리머니를 서로 맞춘 건 아니었다. 조나탄 형이 센스 있게 나를 위한 세리머니를 해줬다"고 했다.

두 사람의 케미는 약 40분 뒤 다시 발휘됐다. 이번엔 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전반 44분 오른쪽 측면에서 조나탄이 절묘하게 패스했고, 유주안이 침투해 이범영 골키퍼 다리 사이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빅버드에는 유주안의 이름이 울려 퍼졌고, 모두가 유주안을 끌어안았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었던 데뷔전. 후반에도 열심히 달린 유주안은 근육에 통증을 호소했고, 후반 15분 염기훈과 교체됐다. 빅버드에 모인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고, 조나탄도 경기장 밖을 빠져나가는 유주안의 등을 토닥여줬다. 마치 자신의 짝을 이제야 찾았다는 표정이었다.

# 결과를 뒤집은 이근호, 버티지 못한 4분

유주안이 전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염기훈과 교체된 후반 15분. 스코어는 수원이 두 점차로 앞서간 3-1. 30분만 버티면, 수원이 이번 시즌 두 번째 홈 승리가 기록될 수 있었다. 교체 투입된 염기훈도 여유가 넘쳤고, 특유의 손동작으로 서포터들의 흥을 돋았다. 이미 수원은 승리에 취해있었고, 결과가 바뀔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막바지에 이르자 불길한 기운이 빅버드를 감쌌다. 강원의 공격이 거세졌고, 잠시 잊고 있던 `세오 타임'이란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 순간 이근호의 벼락골이 터졌다. 후반 32분 코너킥 상황에서 공을 빠르게 이어 받은 이근호가 냅다 슈팅을 때렸고, 공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골 차로 따라붙은 강원은 더욱 거세게 수원을 몰아쳤다. 수원은 후반 40분 최성근을 빼고 조원희를 투입해 수비에 안정감을 가져갔다. 지키기 작전이었다. 이 카드가 불고 올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후반 44분 임찬울이 강하게 크로스한 공이 조원희의 머리를 맞고 굴절돼 완벽한 곡선을 그리며 골문 안쪽으로 꽂혔다. 신화용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절대 막을 수 없는 각도로 슈팅이 날아왔다. 결과는 3-3. 수원의 홈 두 번째 승리는 그렇게 허공으로 날아갔다.

결국 결과는 같았다. 홈에만 돌아오면 반복된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를 뒤집으려 노력했지만 수원에 운은 60분 까지였다. 서정원 감독도 경기 후 "스포츠에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슈퍼매치를 앞두고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 최대한 해볼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 그 부분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운이 안 좋았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누구보다 가장 아쉬운 이는 유주안이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벤치에 앉아있던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먼 하늘을 쳐다봤다. 홈 팬들은 유주안의 이름을 연호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믹스드존에서 만난 유주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을 터다. 그는 "꿈에 그렸던 데뷔전이었다. 무척 설다. 도움에 데뷔골까지 넣었지만 아쉬움이 크다. 이기지 못해 아쉬움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골을 넣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도 또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유주안의 데뷔전, 그 60분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결과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사진= 윤경식 기자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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