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숨은 영웅 '철도 용사'

김민지 2017. 6. 2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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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춘천가는 건 사지 간다고 그랬어 그때. 우리가 춘천역으로 근무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사지 간다 그랬어."

<녹취> 김주학(6.25 철도참전유공자) : "군수물자, 병력 일선 최전방까지 수송을 합니다. 이건 낮에 못해요, 폭격 때문에. 목숨 바치고 하는 거죠. 무장도 없는 상태에서."

<녹취> "6.25하면 우리나라의 숨은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철도인들이 그 일을, 전쟁통에 그런 일을 했겠냐는 생각을 못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곳 추모비에는 6.25 전쟁에 참전해 순직한 2백 여든 일곱명의 철도인 명단이 새겨져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철도인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요양원.

92살의 김노한 할아버지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백발의 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전쟁터를 누볐던 용감한 철도 기관사였습니다.

경북 풍기역에서 근무하던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났다는 다급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후 철도 기관사들이 속속 군 수송작전에 투입됐습니다.

24살의 기관사는 군수품을 회수해 오라는 명령에 북한군이 점령한 죽령역으로 기차를 몰고 돌진했습니다.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20km를 달려 적진에 있던 군수품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성공했습니다.

포성이 울리는 최전방까지 군수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는 것도 주요 임무였습니다.

<인터뷰> 김노한(6.25 철도참전유공자) : "아이고 참, 기관사가 말이 기관사지 참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했어요. 오늘 죽을지, 몇 시간 후에 죽을지 그걸 알 수가 없었어요. 명령 나오면 명령 나오는 대로 움직여야 되지."

마땅한 교통 수단을 찾기가 어려웠던 전쟁통, 국민들의 피난길도 책임졌습니다.

옷가지만 챙겨 들고 피난길에 오른 피난민들의 행렬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굶주린 배를 안고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 했습니다.

<인터뷰> 김노한(6.25 철도참전유공자) : "열차에 피난민들이 탈 데가 없으니까 화차 지붕에 매달렸어요, 지붕에. 그래서 안전지대에 가서 차를 세워가지고 '어디 가냐, 복잡하더라도 같이 타라, 이쯤 왔는데 놔두고 갈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많이 했어요."

정작 아내와 갓 태어난 딸, 가족들의 피난길은 챙기지도 못한 채 임무에 나서야 했습니다.

<인터뷰> 김노한(6.25 철도참전유공자) : "내가 기관차 타면서 피난길에 가는 걸 내 가족이라고 태워주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 헤어져버려서.."

이산가족이 됐지만 잇따른 작전을 수행하느라 가족을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났고 헤어졌던 가족은 그후 3년 뒤에야 기적처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 3년 내내 군 작전에 참여한 뒤 1971년 퇴직할 때까지 열차와 함께 달려온 김노한 기관사, 철도에 청춘을 바친 30여 년의 세월 중 전쟁의 기억은 그 무엇보다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김노한(6.25 철도참전유공자) : "위험한 상황이 많았죠. 많았지만, 그거 다 얘기하려면 정말 참 한 달을 해도 다 못 할 것이고..."

홍성표 기관사가 운행을 앞둔 열차를 꼼꼼히 점검한 뒤 열차에 오릅니다.

<녹취> "1003-13열차 발차 기관사 이상."

<녹취> "진로 양호."

대전역과 세천역 인근 구간.

늘 오가는 기찻길이지만 홍성표 기관사에겐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바로 이 곳에서 외조부인 고 김재현 기관사가 6.25 전쟁 당시 순직했습니다.

북한군의 거센 공격에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전쟁 초기.

급기야 1950년 7월, 미 제24단의 후퇴작전을 지휘하던 윌리엄 딘 소장이 대전에 홀로 고립됐습니다.

딘 소장 구출작전을 위해 미군 특공대원 서른 명이 꾸려졌지만, 이들을 태우고 적진으로 향할 기관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작전에 28살의 젊은 기관사가 자원했습니다.

당시 1남 1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김재현 기관사였습니다.

<인터뷰> 홍성표(기관사/故 김재현 기관사 외손자) : "어떤 노신사 분께서 저희 어머니를 찾으시더니 '그 날 본인이 당직근무였다. 그날 내가 가는 차례인데 내가 용기가 없어서 못 갔고, 자네 아버님이 나 대신 자원해서 가셨네, 미안하네, 미안하네.', 그렇게 얘기를 하셨다 하더라고요."

특공대원을 태운 채 김재현 기관사가 몰던 미카 129호 열차는 대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북한군이 점령한 상황.

결국 딘 소장을 찾지 못하고 철수하던 중 북한군의 매복 공격이 이뤄졌습니다.

거센 총격 속에 김재현 기관사는 8발의 총상을 입고 27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고 김재현 기관사가 당시 몰았던 미카 129호 열차는 현재 대전 현충원에 전시돼 있습니다.

좁디 좁은 기관사실, 총격 속에서도 김재현 기관사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녹취> 홍성표(기관사/故 김재현 기관사 외손자) : "전사할 당시 운전대에서 노치를 집고 그대로 이렇게 앞으로 넘어지셨답니다."

나라를 위해 쉼없이 달렸던 정신은 후대로 이어져 아들과 외손자까지 3대가 철도인이 됐습니다.

<인터뷰> 홍성표(기관사/故 김재현 기관사 외손자) : "나는 언젠가 철도청에 들어가야겠구나라는 게 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저희 외조부가 하시던 기관사 업무, 그리고 더 크게 나가면 대전 기관차의 한 사무소에서 3대째 같이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게 제 자신으로서는 무궁한 자부심이 큽니다."

미카 129열차 안에는 순직한 철도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호국철도기념관도 마련돼 있습니다.

2013년에 개관한 기념관에는 계급도 군번도 없었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한 철도인들의 활약상이 과거 자료와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6.25 전쟁때 287명의 철도인이 군 작전에 투입돼 목숨을 잃었습니다.

<녹취> 연규홍(6.25 철도참전유공자) : "밤에 승무하는 기관차를 조준해가지고 습격을 해서 기관사, 부기관사가 많이 죽었죠."

철도참전 유공자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평균 연령이 90세가 훌쩍 넘지만, 6.25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은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인터뷰> 박재창(6.25 철도참전유공자) : "환자가 나오고 병력이 들어오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환자가 나올 때가 제일가슴이 아파, 내가 제일...어머니 부르는 환자, 어머니 하고 불러. 어떤 사람은 또 물 줘 하고 불러. 이건 못 볼 일이야."

<인터뷰> 김주학(6.25 철도참전유공자) : "적의 공격 목표가 철도입니다. 철도라면 다 죽이는 거예요. 그래서 287명의 순직자가 발생한 거예요. 공무원으로 봐서 이제 순직이죠. 순직자가 발생된 겁니다.

6.25 전쟁 당시 군무원 신분으로 참전한 철도인은 만 9천 3백여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묵묵히 수송 임무를 수행했던 그들의 활약은 잊혀 갔습니다.

<인터뷰> 연규홍(6.25 철도참전유공자) :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기 기록된 분들은 철도나 국가에서 제대로 대우도 못 받았죠. (6.25 전쟁 직후) 국가체제가 제대로 안 서 있고, 재정도 없고 하다보니까 순직이나 전사 처리가 안 돼요. 그래서 그런 것이 더 안타깝죠."

정부는 1995년이 돼서야 참전유공자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당황할 때도, 서운할 때도 많습니다.

2012년, 미국 정부는 딘 소장 구출작전에서 순직한 고 김재현 기관사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특별민간인봉사상'을 추서했습니다.

미 정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입니다.

<인터뷰> 김제근(故 김재현 기관사 아들) : "받을 때 기분은 솔직히 좋았죠, 내가 받는데. 그런데 아버지가 받는 거니까 저는 올바르게 살아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 정부의 훈장은 현재까지 6.25 철도참전유공자 가운데 단 한 명에게도 수여되지 않았습니다.

홍성표 기관사가 외조부, 고 김재현 기관사의 묘지를 찾았습니다.

고 김재현 기관사는 1983년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했던 조부와 선배 철도인들의 희생을 마음 깊이 기립니다.

<인터뷰> 홍성표(기관사/故 김재현 기관사 외손자) : "어떻게 보면 그분들은 6.25 사변 중에 숨은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분들을 좀 많이 기억했으면 좋겠고요."

6.25 전쟁 67주년, 투철한 사명감으로 적진으로 전진했던 철도인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숨은 영웅들입니다.

김민지기자 (m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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