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저임금 6470원도 못 받는 근로자 310만명 육박

신재희 기자 2017. 6.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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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으로?.. 우리에겐 딴 세상 이야기"

서울 송파구의 한 독서실에서 총무로 일하는 구모(25·여)씨는 시급이 4000원도 채 안 된다. 구인공고엔 최저임금(시간당 6470원)을 준다고 쓰여 있었지만 막상 면접 보러 갔더니 “편하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니 최저임금을 다 주긴 어렵다”며 급여를 깎았다고 한다. 구씨는 당황스러웠지만 공무원시험 공부와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일하기로 결정했다.

PC방에서 주말마다 일하는 서울 강동구의 고등학생 이모(17)군은 법정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모른다. 이군은 ‘하루에 5시간 일하고 3만원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만 듣고 일을 시작했다. 이군은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 중에서 최저임금 따져가며 일하는 친구는 몇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자”는 구호가 커지고 있지만 지금도 최저임금을 못 받는 이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다. 구씨는 “6470원인 지금도 안 지켜지는 곳이 허다한데, 1만원으로 올리면 오히려 최저임금 못 받는 사람만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에 보고한 ‘최근 최저임금 동향 및 평가’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매년 증가 추세로 지난해 280만명, 올해는 313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저임금을 안 줘도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2만2000여개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감독, 2000여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했지만 이 중 사법처리된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지난해뿐 아니라 최근 5년간 최저임금 근로감독 결과 사법처리된 비율은 평균 2% 내외에 머물렀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해도 대부분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관리·감독하는 근로감독관이 상호 합의를 통한 시정조치 수준에서 처분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주지 않았을 때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벌하도록 한 법 규정이 사실상 무의미한 셈이다. 고용부는 도리어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과태료로 대신하는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하기까지 했다. “최저임금 위반 고용주의 경제적 제재를 강화한다”고 포장된 이 개정안은 국무회의까지 거쳤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고용부부터 위법을 적발하고도 처벌하지 않는데 과연 어떤 사용자가 법을 지키려고 하겠나”라고 꼬집었다.

문재인정부는 이달 초 최저임금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공공입찰 시 감점을 부여하고 전담 감독관을 신설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단속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을 안 주는 사업장엔 5인 이하 사업장이 많아 공개입찰 등의 제재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과태료 등으로 즉각 처벌할 수 있는 행정처벌을 도입하고 두세 번 더 어기면 형사처벌로 가중 처벌하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최저임금 위반을 강력 처벌한다. 호주 법원은 지난해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편의점 주인에게 최저임금 미지급액의 5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영국은 최저임금 위반 고용주 명단을 아예 언론에 공개하기도 하고, 15년 동안 고용 자격을 박탈하기도 한다. 독일은 최대 50만 유로(약 6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위반과 임금체불을 제대로 단속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관을 증원하는 게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5년 기준으로 근로감독관 정원이 1256명인데, 제대로 단속하려면 배로 늘려야 한다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가 있었다”며 “최저임금 인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정책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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