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내신과 융합·창의능력은 아무 관계 없었다

2017. 6. 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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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카이스트 공동기획, 충남소재 고교생 89명 대상 실험결과
* 전체 89명 학생의 내신성적에 따른 IB 성적 분포표
높은 학과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높은 창의력도 함께 갖추고 있는 것일까.

이런 해묵은 궁금증을 풀어줄 실험이 국내에서 실시됐다. 실험결과는 한국에서 현재 학생들이 받고 있는 내신성적과 창의력 평가(인터내셔널 바깔로레아·IB)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현행 고교 내신성적 시스템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적인 창의력을 측정하고 북돋는데 적절치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25일 매일경제가 카이스트(KAIT)·충남교육청·경기외고·교육과혁신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충남교육청 소재 고등학교 2학년생 89명(전체 100명중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11명은 제외)을 대상으로 융합·창의력을 평가하는데 적합하다고 인정받는 IB 모의시험을 치러본 결과, 학생들의 내신성적과 IB 성적은 아무런 통계적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내신에선 하위권에 머문 학생 중에서도 IB 테스트에서 상위성적을 기록한 학생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내신 상위권 학생 중에서 이번 IB 테스트 결과 바닥권으로 추락한 학생들 역시 다수 발견됐다.

내신 하위권에 속한 학생이었지만 IB 시험에서 총점 상위 4등, 9등, 11등, 12등을 차지한 경우가 나타났다. 반면 내신 상위권 학생들이 IB 총점에서는 밑에서 4등, 9등, 10등, 11등을 기록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창의적 학생이라도 현 교육시스템 하에서의 내신성적은 나쁠 수 있다는 얘기다. 실험에 참여한 한 일반고 출신 학생(18)은 시험후 인터뷰에서 "단어 하나 암기할 시간에 독서를 하고 자기 생각을 발달시키느라 성적이 나쁜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며 "나보다 그런 아이들이 (이번 IB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놀라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현재는 암기능력이 뛰어나면 좋은 내신성적을 받고, 그 이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구조"라며 "(이번 실험결과는) 이런 시스템으로는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에 답해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절한 인재들을 키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력과 융합능력,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이지만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현 교육시스템 하에서는 내신성적이 나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우수한 지식을 얻고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적 손해다. 이처럼 인재 육성의 연결고리가 끊긴 교육시스템이라면 커다란 모순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평가 시스템은 학생들의 두뇌 중에서 어떤 능력을 발달시킬지에 대한 방향키이기도 하다. 예컨대, 현 교육시스템은 암기력, 이해력을 발달시키지만 IB는 사고력과 융합능력을 키우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현재 내신을 고수하다가는 한국 학생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진 암기력만을 기르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IB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경기외고의 이병호 교장은 "IB는 학생들의 사고능력, 인성, 융합능력 등을 기르고 평가하는 제도"라며 "2011년 이후 6년간 이 제도를 운영해 오면서 학생들의 두뇌가 기존과는 다른 능력들을 발전시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험을 치러 본 학생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내신성적 상위권인 논산고 A군(18)은 "(IB 모의시험의) 수학 문제는 손도 대지 못했다"며 "공식을 암기하고 푸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의 암기력과는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실험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역사 등 모두 6개 과목에 대한 IB 기출문제를 학생들에게 치르게 했는데, 내신성적의 높고 낮음과 과목별 능력 사이에도 별다른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없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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