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박지현, 오리온-LG-동부에서 배운 것들!①

이재범 2017. 6. 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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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이재범 기자] 지난달 11일 중앙대와 연세대의 대학농구리그 경기가 열린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 동부 박지현 스카우트와 우연히 만났다. 10일 은퇴를 발표한 직후 스카우트로서 첫 나들이였다. 그 자리에서 은퇴 인터뷰를 하기에는 많은 말을 담아낼 수 없기에 인터뷰 자리를 따로 마련하자고 했다. 

박지현 스카우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원주 동부 연습체육관을 찾았다. 동부 이상범 감독은 “배길태와 박지현 스카우트의 조합이 좋다. 둘 다 성실한데다 성향도 비슷해서 잘 할 거다”며 “배길태 스카우트라는 꼼꼼한 좋은 사수를 만난 박지현 스카우트는 복 받은 거다”고 덕담을 건넸다. 

박지현 스카우트와 동기인 김주성은 “1년 더 (선수 생활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었는데 구단에서 잘 배려해주셔서 스카우트 일을 하게 되었다”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고 했다. 선수로서 은퇴하는 건 당연히 아쉬움이 남는데 그 아쉬움을 스카우트로 일하며 미래를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박지현을 먼저 보낸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오리온에서 데뷔해 LG를 거쳐 동부에서 은퇴한 박지현 스카우트와 프로농구 선수 15년 생활을 돌아보며 나눈 일문일답이다.

은퇴한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지금 정신 없다. 뭐가 뭔지 모르고 (시간을 보낸다.) 지난 주 대구에 가서 스포츠 특화 영상 편집프로그램을 교육하는 곳에서 교육 받았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도 왔는데 나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배웠다. 단계별로 있는데 나는 처음이라서 어떻게 영상 편집을 하고, 그걸 어떻게 보는지 방법을 익혔다. 

선수시절 6월이면 훈련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렇죠. 작년에는 6월 중에 (강원도) 태백을 갔었다. 지난 주 수요일(6월 7일)에 선수들이 복귀했는데 나는 7일부터 9일까지 대구에 내려갔었다. 월요일(12일)에 선수들을 봤는데 기분이 좀 다르다. 밥도 따로 먹고, 엊그제까지 선수들과 형, 동생이었는데 거리감도 생겼다. 나도, 선수들도 조금 그런 게 있다. 기분이 되게 이상하다. 
사무실(연습체육관 안쪽의 농구코트와 붙어있음)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상범) 감독님께서 오시더니 “(박)지현아, 기분이 이상하지 않냐?”라고 하시더라. 내가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함께 해야 할 거 같은데 기분이 묘했다. 지금 적응 중인데 적응이 안 된다. 사무실에 있으면 선수들 훈련 소리가 다 들리기에 감독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 같다. 

김영만 전 감독님께선 플레이오프 탈락 후 “박지현은 은퇴한다”고 밝히셨는데요. 감독이 바뀌며 상황이 달라졌어요. 1년 더 선수생활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았는데 은퇴를 한 이유가 있나요?
시즌이 끝났을 때 김영만 감독님께서 팀을 리빌딩 해야 한다고 하셨고,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구단에서 또 이런 좋은 제시(스카우트)를 해줬다. 내가 욕심을 부리면 (선수 생활) 1년이지만 그 시간보다 이 일(스카우트)을 하면서 농구를 볼 수 있는 일을 하니까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선수니까 아쉬움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결정을 했다. 지금 일하는 걸 빨리 익혀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마음처럼 잘 안 된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이상범 감독님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나요? 
은퇴를 결정하고 감독님께서 오셨다. 감독님께서도 “나중을 생각하면 좋은 거니까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감독님께 “이 일을 처음 해서 시행착오가 많겠지만,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감독님께서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다 보면 다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자유계약 선수 협상이 5월 1일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 은퇴를 결정하신 거네요.
4월 말에 와이프와 여행을 다녔다. 5월 1일 구단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뒤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생각을 일주일 정도 한 뒤 (은퇴) 결정을 한 거다. 

데뷔 시즌(2002~2003)에 평균 16분 38초 출전하셨는데 지난 시즌에는 평균 18분 54초 뛰었어요. 경기수는 51경기로 같아서 14년 전보다 더 많이 코트를 누볐습니다. 허웅 선수가 군 입대를 했기에 식스맨으로 10분 정도 뛰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은퇴 소식을 듣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 욕심이다. 욕심을 부려서 뛰면 후배들이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뺏는 거다. 그것보다 팀이 리빌딩을 하는 목적이니까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뛰어야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 나도 그런 고민을 했지만, 구단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줬기 때문에 쉽게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구단에서 “네가 선수 생활을 더 원하면 다른 구단을 알아봐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되게 좋게 말씀을 많이 해줘서 은퇴를 단 시간에 결정할 수 있었다. 

김주성 선수는 은퇴 결정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잘 생각했다고, 잘 하면 될 거라고, 묵묵히 잘 하고 있으라고 하더라. 나도 걱정이 되는 게 우리 팀은 리빌딩이 목적이다. (김)주성이가 팀을 잘 이끌어왔는데, 올해가 제일 힘든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주성이) 후배들을 잘 이끌며 부상없이 시즌을 마쳤으면 좋겠다. 

데뷔할 때 주전으로 활약 가능한 포인트가드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농구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까? 어릴 때부터 꾸준하게 잘 하셨나요?
(성동)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그 때 6학년 형들과 엄청 차이가 났다. 그 때 형들의 실력이 전국 4강이었다. (대연)중학교 때도 성적을 낸 적이 없고, (동아)고등학교 1학년 때 (강)대협이 형, (신)동한이 형이 있었는데, 그 때 추계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번 했다. 그 다음해에 전국체전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고 3때 4강에 한 번도 못 갔다. 두 개 대회에 나갔는데 휘문고를 만나서 다 졌다. 초중고 때 성적이 난 적이 거의 없다. (중앙)대학 가서 1학년 때 처음 우승을 했다. 

팀 성적은 안 났더라도 개인 기량은 좋았던 거 아닌가요?
고3 올라갈 때 전지훈련을 온 대학팀들이 우리(동아고) 보고 우승팀이라고 했었다. 막상 대회에서 지니까 연습용이라고, 연습할 때 잘 하면서 대회에선 못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앙대 들어가서 MBC배에서 떨어진 뒤 김태환 감독님께서 부임하시며 우승을 했다. 1학년 땐 경기를 못 뛰었다. (조)우현이 형, (임)재현이 형, (송)영진이 형, (신)동한이 형, (황)진원이 형, (김)주성이 등 멤버가 너무 좋았다. 1학년 때 경기를 못 뛰고 2학년 때 경기에 조금 나선 뒤 3학년부터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한 게 없다. 패스 주면 알아서 하기에 수비만 열심히 했다. 

15년 동안 프로 선수로 지냈습니다. 상무에서 군 복무한 시간을 빼면 13시즌 중 54경기 모두 출전한 건 2시즌 밖에 안 됩니다. 이건 나머지 시즌 중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다행인 게 부상이 많은 반면 수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큰 부상이 없었던 것에 감사하다. 크게 다친 게 LG에서 무릎 내측인대 부분 파열이었다. 잔 부상 때문에 못 뛰었지만, 수술을 안 한 게 행운이었다. 무릎을 다쳤을 때 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재활을 했다. 재활이라는 게 힘들더라. 나와의 싸움이라 지루하고, 경기를 보면 나도 뛰고 싶어서 힘든 시간이었다. 제일 많이 다친 건 발목이랑 무릎이다. 제일 많이 쓰니까 발목 부상이 특히 많았다. 

반면에 13시즌 중에 11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운이 좋았다. 좋은 선수와 좋은 감독을 만났고, 좋은 팀을 만났다. 동부에서 두 번 플레이오프에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머지 11시즌이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챔프전도 4번이나 올라갔다. 우승(챔피언)을 못 했지만, 나에겐 자부심이다. 

박지현 선수를 떠올렸을 때 이적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동부에서만 8시즌을 보내셨어요. 
두 번 팀을 옮겼다. 서류 상으로는 세 번이다. 오리온에서 전자랜드로 서류상 이적되었다가 LG에서 3시즌을 보낸 뒤 동부로 왔다. 

오리온에서 전자랜드로 이적할 때 군 복무 중이었던 걸로 압니다. 상무에서 이적 소식을 들었나요?
미리 듣진 못했다. 내 기억으론 신문으로 트레이드 된다는 걸 본 거 같다. 제대가 (2006년) 4월 26일이었다. 그 때(2005~2006시즌) 플레이오프 싸움 때문에 외국선수(리 벤슨-안드레 브라운, 당시 두 명의 외국선수 신장 합계 제한(4m)이 있을 때였는데 전자랜드가 온타리오 렛 대신 테픈 해밀턴을 영입함. 해밀턴의 신장을 KBL에서 측정했는데 리 벤슨과 신장 합계가 간발의 차이로 4m가 넘었음. 이 때문에 전자랜드가 벤슨보다 조금 더 작은 브라운과 트레이드를 함)를 바꾸며 나와 정재호까지 포함된 2대2 트레이드(정재호와 박지현의 트레이드는 벤슨과 브라운 이적 후 뒤늦게 알려짐)였다. 황당했다. 서운하기도 했다. 

오리온에 있으면 김승현 선수가 버텨서 많이 출전하기 어려운데, 전자랜드로 가면 주전으로 출전이 가능했습니다. 
처음 오리온에 갔을 때 ‘왜 날 뽑았지? 많이 뛰는 곳에 가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1년차, 2년차 들어가기 전에 트레이드 요청도 했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오리온이란 팀에 정이 들었다. 그래서 군 복무를 하며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릴 때라서 서운하다는 생각이 더 컸던 거 같다. (김)승현이 형 때문에 많이 못 뛰었지만, 좋은 팀에서 좋은 선수들과 뛰었기에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다른 팀에 가서 경기를 많이 뛰어서 좋은 것보다 형들이 좋았고, 오리온이란 팀이 좋았고, 성적도 좋았다. 그런 좋은 생각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LG가 전자랜드와 시간차 트레이드(LG는 4월 30일 3억을 받고 조우현, 정선규, 정종선을 전자랜드로 이적시킨 뒤 6월 13일 황성인+3억원을 내주고 전자랜드의 박지현, 박훈근, 박규현, 임효성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함. LG는 FA 조상현을 영입하며 좋은 보상 선수를 내주지 않기 위해 5월을 사이에 두고 전자랜드와 트레이드를 한 것임. 실제 LG와 전자랜드의 4-4 트레이드였음)를 했을 때입니다. 전자랜드에 잠시 갔다가 LG로 옮긴 건가요?
(전자랜드) 사무실에 가본 적이 없다. 전화통화만 했다. (당시 전자랜드) 양원준 사무국장께서 여기 올 필요도 없이 LG로 바로 가라고 하셨다. 제대 하고 난 뒤였다. 6월 1일에 LG로 이적(KBL 공식 자료에는 6월 1일 오리온에서 전자랜드로 이적한 뒤 6월 13일 LG로 다시 옮김)했다. 

동부 박지현, 오리온-LG-동부에서 배운 것들!②으로 이어집니다. 

사진_ 이재범 기자, KBL 제공 

이재범 1pretty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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