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박지현, 오리온-LG-동부에서 배운 것들!②

이재범 2017. 6. 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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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이재범 기자] 지난달 11일 중앙대와 연세대의 대학농구리그 경기가 열린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 동부 박지현 스카우트와 우연히 만났다. 10일 은퇴를 발표한 직후 스카우트로서 첫 나들이였다. 그 자리에서 은퇴 인터뷰를 하기에는 많은 말을 담아낼 수 없기에 인터뷰 자리를 따로 마련하자고 했다. 

박지현 스카우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원주 동부 연습체육관을 찾았다. 동부 이상범 감독은 “배길태와 박지현 스카우트의 조합이 좋다. 둘 다 성실한데다 성향도 비슷해서 잘 할 거다”며 “배길태 스카우트라는 꼼꼼한 좋은 사수를 만난 박지현 스카우트는 복 받은 거다”고 덕담을 건넸다. 

박지현 스카우트와 동기인 김주성은 “1년 더 (선수 생활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었는데 구단에서 잘 배려해주셔서 스카우트 일을 하게 되었다”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고 했다. 선수로서 은퇴하는 건 당연히 아쉬움이 남는데 그 아쉬움을 스카우트로 일하며 미래를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박지현을 먼저 보낸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오리온에서 데뷔해 LG를 거쳐 동부에서 은퇴한 박지현 스카우트와 프로농구 선수 15년 생활을 돌아보며 나눈 일문일답이다.
 (동부 박지현, 오리온-LG-동부에서 배운 것들!①에서 이어집니다.)

은퇴한 뒤 시즌을 한 번 돌아보셨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시즌과 아쉬운 시즌이 있을 거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시즌이 2011~2012시즌이고, 아쉬움이 남는 시즌도 2011~2012시즌이다. 그 때 절대 진다는 생각을 안 했다. 다들 자신감도 있었고, 어려운 경기도 이긴 게 많았다. 제일 좋았고, 제일 아쉬웠다. 우승(챔피언)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데뷔했던 2002~2003시즌에도 우승할 수 있지 않았나요?
그 때도 이 팀 TG와 (챔피언결정전을) 해서 졌다. 우승하는 운이 없나 보다(웃음). 2011~2012시즌이 더 아쉽다. 2002~2003시즌은 내가 주전이 아니고 식스맨이었다. 그 때보다는 (2011~2012시즌에) 더 많이 뛰어서 기억에 남고 아쉬움이 남는다. 

2012~2013시즌에 평균 30분 이상 출전했던 걸로 압니다. 그런데 ‘박지현’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식스맨 이미지가 강합니다.
오리온에 있을 때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거 같다. (김)승현이 형 밑에서 식스맨 역할을 했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식스맨 이미지가 강하다고 하지만, 이 팀(동부)에 와서 농구를 많이 배웠다. 강동희 감독님께 배우며 농구에 그나마 눈을 뜨고, 가드 역할을 익혔다. LG에서 신선우 감독님께 배웠지만 그 때는 리딩보다 공격을 더 많이 했다. 이 팀에서 (김)주성이라는 좋은 선수가 있는데다 리딩을 배웠다. 정말 많이 혼났다. 그러면서 좋아졌다. 그래서 애착이 많은 거 같다. 오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박지현 선수가 동부로 왔을 때 강동희 전 감독님 데뷔시즌(2009~2010시즌)이었는데 강동희 감독님께 어떤 부분을 배우셨나요?
예를 들면 리바운드를 잡았을 때 LG에선 (현)주엽이 형이 앞에 있으면 주고 달렸다. 여기서는 앞에 있는 (김)주성이에게 주고 뛰면 혼 났다. “앞에 왜 줘? 네가 끝까지 치고 가서 네가 (동료들에게) 패스를 줘!” 이렇게 말씀하셨다. “속공 기회에서 가운데로만 드리블을 치지 말고 윙으로 가면서 뒤에서 뛰어오는 센터들을 봐 줘라.” 이런 세세한 걸 배웠다. 신 감독님께 응용하는 농구를 배웠다면, 강동희 감독님께 가드가 팀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데뷔 후 두 시즌 동안 김승현 선수와 함께 보냈는데, 그 때 최고 전성기였던 김승현 선수에겐 어떤 걸 배웠나요?
제대한 뒤 트레이드 되며 인터뷰를 했을 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김)승현이 형에게 배울 게 없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왜냐하면 승현이 형처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승현이 형에게 배울 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농구가 아닌 걸 알기에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건데 그 때 욕을 좀 먹었다. ‘어떻게 김승현에게 배울 게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 당시에는 그랬다. 
나는 승현이 형처럼 센스로 하는 농구가 아니라 스피드로 하는 농구라서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의도로 말한 건데 오해를 하신 거다. 내가 오해를 하게끔 이야기를 한 거 같다. 승현이 형이 너무 잘 하고 (나와 플레이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건데 “네가 얼마나 잘 하길래 김승현 같은 선수에게 배울 게 없나?” 이런 말을 들었다. 전혀, 절대,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LG에선 이현민 선수가 주전으로 뛰고, 박지현 선수가 식스맨으로 뛴 걸로 기억합니다. 
아~! 다 그렇게 기억을 하는구나. 처음에는 주전으로 뛰었다. (이현민과) 같이 뛴 적이 많다. 그 당시에는 1,3,4쿼터에 (외국선수 2명이) 뛰었다. 2쿼터에는 이현민과 나, 조상현, 현주엽, (찰스) 민렌드가 같이 코트에 나갔다. 그 당시 평균 20분 이상 출전했는데 그래서인지 식스맨 이미지가 있는 거 같다(웃음). 신선우 감독님께서 투 가드를 많이 사용하셨다. 

최근 박지현이란 이름으로 검색하면 숭의여고 박지현 선수 기사가 더 많이 나와요. 
나도 포털사이트에서 ‘박지현? 누구지’ 하면서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잘 하는 선수라고 들었다. 어릴 때 여자 이름이라서 놀림을 많이 받아서 내 이름이 싫었다 그런데 크면서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내 무표정을 볼 때 인상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름을 이야기하면 (인상과) 안 맞는다는 말도 하더라. (이름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쓰진 않는다. 

선수들보다 먼저 이상범 감독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며 시즌 준비를 하셨을 거 같은데 어떤 분으로 느끼셨나요?
소통을 많이 하신다. 예를 들어서 대학 선수를 물어보시면 “네 생각을 말하라”고 하신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이야기 해줘야, 한 명이 생각하는 것보다 6명이 생각을 해줘야 정답이 될 수 있다. 판단은 감독이 하는 거니까 네 생각을 많이 말하라”고 하셨다. 아~소통을 많이 하시는 분이구나. 호탕하신 분인 거 같다. 첫 인상이 그랬다. 다른 팀(KGC인삼공사)의 감독님으로 뵈었을 때 조용하실 줄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다르게 말씀도, 농담도 많이 하신다. 

스카우트로서 대학농구를 현장에서 보고, 외국선수 기량 파악도 하셨을 텐데요. 어떤가요? 
배길태 스카우트가 외국선수를 더 많이 보시기에 나는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경기도 많이 보진 못했다. 기존에 했던 배 스카우트에게 물어보면서 배우는 중이다. 어떤 맡은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배 스카우트가 시키는 걸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외국선수를 찾으라고 하면 그 선수 정보를 찾아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보조 역할을 한다. 지금은 배우는 단계다. 

대학농구 현장에서 몇 번 가셨는데요. 선수 시절 대학농구를 볼 때와 달랐을 거 같은데요.
아유~ 엄청 다르더라. 선수 때는 가볍게 볼 수 있었다. ‘잘 하네’, ‘괜찮네’ 그랬는데 지금은 대학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야 하니까, 그 선수에 대해서 파고 들어야 하니까 너무 어렵더라. 내 눈으로 봤을 때 10점 정도 했는데 싶으면 6점 정도 기록하고, 이것도 잘 해서 괜찮은데 싶으면 (다른 스카우트의) 평가가 좋지 않다. 시각이 다 달라서 힘들다. 내가 잘못 보면 이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경기를 많이 보라고 하더라. 영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직접 가서 보는 게 맞다며 그게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외국선수를 현장에서 보는 건 힘듭니다. 외국선수 분석하는 방법도 필요할 거 같은데요. 
외국선수는 배길태 스카우트가 잘 아시니까 같이 보며 내 생각을 전하는 정도다. 내가 주가 되어서 선수를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배 스카우트가 일을 많이 하시고,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외국선수 때문에 바쁜데 나도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민폐를 안 끼쳐야 하는데 참…

선수 시절을 되돌아볼 때 함께 했던 선수들이 많은데요. 베스트 5를 한 번 뽑아주신다면?
내가 같이 뛰었던 선수들 중에 외국선수 포함한 베스트 5면 어렵다. 국내선수는 어렵지 않다. (김)승현이 형, (김)병철이 형, (조)상현이 형, (현)주엽이 형, (마르커스) 힉스 이렇게 5명이다. (김)주성이가 있구나. 국내선수만 하면 (김)주성이를 넣으면 된다. 

외국선수 중에서 누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마르커스) 힉스.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오리온에) 지명된 뒤 우승팀이었고, 데뷔 시즌 때 한 시즌을 같이 뛰어봐서 힉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민렌드도 괜찮았다. 둘을 비교하면 힉스는 득점력도 좋고 블록 능력도 뛰어나서 정말 대단했다. 농구할 때 엄청 편했다. (수비를 붙여서 득점 기회를 만드는 패스를) 주기도 하고, 속공도 같이 뛰어주고, 블록을 잘 하니까 힉스가 저 멀리 보이면 (상대선수들이) 돌아나갔다. 위협적이었다. 

마르커스 힉스 다음에 찰스 민렌드가 최고 외국선수였습니다. 두 선수가 같은 시즌을 뛰지 않아서 어느 선수가 더 나은지 비교도 많이 되었는데요. 같이 뛰어본 입장에서 누가 더 나은가요? 
민렌드는 되게 영리하게 플레이를 했다. 정말 영리했다. 운동능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머리가 엄청 좋았다. 힉스도 머리가 나쁘지 않는데 워낙 운동능력이 좋아서 그 차이가 났다. 둘 다 잘 하지만, 한 명(힉스)은 운동능력이 좋고, 이 친구(민렌드)는 운동능력에 비해 단수가 더 높은 농구를 했다. 

외국선수 중에선 로드 벤슨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벤슨은 어떤가요? 
좋은 선수다. 좋았다. 엄청 좋았다. 첫 시즌에는 “아우~ 쟤 바뀔 거 같은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때 나는 발등에 물혹이 있어서 전지훈련을 못 갔는데 (전지훈련을 간 선수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 “(벤슨으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일본에서 LG와 연습경기에서 크리스 알렉산더를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더 지켜보자 했는데 시즌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잘 할 줄 몰랐다. 수비형 외국선수인데도 포스트업도 하고, 풋백덩크도 할 줄 아는 선수였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었다.
국내 선수들과 잘 어울리고 받아들일 줄 알아서 생활하기에는 벤슨이 낫다. 힉스는 거의 체육관에서만 봤다. 민렌드도 마찬가지였다. 회식하면 벤슨은 같이 어울리는데 그 친구들(힉스, 민렌드)과 같이 술을 마신 적은 없다. 그 친구(벤슨)가 인성이 안 좋다는 말이 있는데 외국선수들 자기 성격이 없는, 온순한 외국선수는 없다. 자기 기분의 업다운이 있는데 나는 벤슨에게 좋은 기억이 있다. 다른 팀에서 욕을 먹는 게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선수 생활 때 나도 내가 받는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못 느꼈다. 1~2년 전에 조금 느꼈는데 지금 선수 생활 때 받는 게 정말 큰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선배들도 은퇴하면 알게 된다고 하더라. 
(후배 선수들은) 선수생활 때 열심히 해서 선수로서 인정을 받고 대우를 받으면서 오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수들에게 매년 회식할 때 “너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너희가 한 만큼 인정 받아서 연봉도 인상되기를, 좋아서 (농구를)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기에 오래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자기 발전을 하고, 부상 당하지 않아서 정말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우리 선수들이 착하고 순하다. 욕심을 부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나이 차이가 나서 선배들 눈치가 보일 테지만 그러지 말고, 코트에서는 선후배가 없다. 전쟁이다. 인정 받아서 선수 생활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 

사진_ KBL 제공

이재범 1pretty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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