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론 투명성 떠들어도 정작 원하는 사람 없더라

2017. 6. 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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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소장파' 회계사들의 솔직토크

[한겨레]

2015년 불거진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분식회계(회계조작) 사태로 전임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사들이 분식회계와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사진은 2016년 6월 압수수색 당시 대우조선해양 본사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5년 7월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급작스럽게 폭락합니다. 그해 1분기만 해도 연결기준 영업손실이 430억원에 불과했던 회사가, 2분기엔 3조318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고 밝혔기 때문이지요. 대표이사 사장이 바뀐 이후, 과거 누적된 적자 수조원을 재무제표에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회계부정 사태는 앞으로 근절될 수 있을까요?

2년 전 불거진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분식회계(회계조작) 사태는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현재까지 대우조선 분식회계와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은 건 전임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사들이다.

2012년 3월~2015년 5월 대우조선을 이끈 고재호 전 대표이사 사장과 김갑중 전 재무총괄 부사장은 재무제표를 거짓으로 작성·공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과 성과급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올해 1월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회계분식을 눈감아주고 부실 감사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전·현직 회계사 4명도 최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병철)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배아무개 전 이사에게 징역 2년6개월, 임아무개 상무와 강아무개 회계사에게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해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2013, 2014년 대우조선 분식회계 규모는 자기자본 기준 4조원이 넘고, 외부감사인이 적정 의견을 준 재무제표를 이용해 3조원이 넘는 사기대출, 부정거래를 했다. 재무상태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까지 투입된 공적자금 7조원에 달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 증여·세금회피 목적 등
분식회계뿐 아니라 역분식도
“문제 지적하면, 내 회사 봐달라
회계법인 임원도 불편한 기색” 기업 부실 심각해진 이후에야
금융당국 회계부정 책임 추궁
잘못된 회계처리 관행 지적해도
“다른 회사 고치면 바꾼다” 배짱

등기이사(파트너)뿐 아니라 실무 책임자(인차지) 회계사까지 대우조선해양 부실감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회계사들 사이에서는 “회계부정에 조력한 대우조선 직원들을 처벌하지 않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 회계부정이 일어날 당시 대우조선 감사위원(내부감사인)이었던 전·현직 국회의원, 교수 등이 기소조차 되지 않은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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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이 나도 숫자 줄여달라”

외감법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주식회사는 자율적으로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선임해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작성됐는지 감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인 8년차 회계사인 김우성·이현철·오종수, 금융투자업체로 이직한 장민규씨 등 4명에게 감사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경험담을 청했다. 실명으로 취재에 응할 경우 불이익을 우려해 모두 가명처리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회계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원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장민규(이하 장) 투자를 결정하기 전 기업 실사를 해보면, 재무제표 수치와 다른 부분이 많이 나온다. 지난해 투자를 검토한 회사 재무제표에도 ‘장난친 흔적’이 보이더라. 영업이익이 800억원 정도 나와야 하는데, 400억원으로 낮춰져 있었다. ‘주석’에 감가상각 연수 변경으로 비용처리가 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사장이 아들에게 회사 주식을 싼값에 증여하기 위해 주가를 낮추려는 의도가 있었던 경우다.

김우성(이하 김) 어느 중소기업 대표는 ‘이익이 많이 난 것 알려지면 직원들이 월급 더 달라고 데모한다’며 이를 가려달라고 하더라.

오종수(이하 오) 그걸 ‘역분식’(※실적이 좋은데 의도적으로 나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회계부정)이라고 한다. 감사인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역분식이 안전하다고들 한다. 실적이 나빠지는 건 아니니까. 대우조선처럼 부실이 심각해진 뒤에야 회계부정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어느 대기업에서도 2000년대 초반까지 분식회계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회사는 계속 잘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업이 망해야 회계 불투명성이 문제가 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 것처럼.

이현철(이하 이) 손실을 감추기 위한 분식회계든 이익을 감추기 위한 역분식이든 회계처리 기준에 어긋나게 숫자를 표기하는 일이니, 결국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다.

회계 투명성이 중요하지만,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문화가 있다. 감사 제대로 받아서 투명해지면 제일 좋은 건 해당 기업이다.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박근혜 정부의 불투명성에 대해선 거품 물고 욕해도, 막상 본인 회사 회계를 지적하면 ‘넘어가 달라’고 한다.

교과서엔 재무정보가 투명해지면 자본조달 비용이 줄어드는 ‘베니핏’(혜택)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틀린 거 없는지 잘 살펴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기업들은 회계를 투명하게 했을 때 베니핏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대우조선처럼 회계 조작이 드러난 경우 주가가 폭락한다. 자본시장 참가자들은 회계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거다. 그럼에도 투명하게 하자고 하면….

투명해져서 혜택 보는 건 누구?

감사를 열심히 할수록 힘들어진다. 하다못해 우리 파트너도 싫어한다. 1년차 때 감사를 나가 상대 회사 계약서를 살폈더니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한데 매출로 잡은 프로젝트가 많더라. 그런 금액을 매출에서 제외하니 매출액에서 10%가 빠졌다. 그 회사에선 난리가 났다. 매출과 경영진 성과평가가 연동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감사팀이 리스크를 안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팀에서 빠지게 됐다. 비상장사인데다 재무 구조상 감내할 수 있는 정도라 감사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증권거래소나 금융위원회 같은 감독기구에서도 우리가 감사를 제대로 해 한정의견이나 의견거절이 많이 나오는 걸 반기지 않을 거다. 시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땐 관리 감독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주식회사는 사업보고서에 감사보고서를 첨부하도록 돼 있는데 외부감사인은 재무제표를 검토해 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 등 4가지 가운데 하나를 감사보고서에 표시해야 한다. 부적정 및 의견거절은 상장폐지 사유가 될 수 있다.)

지난 2013년 대우건설 분식회계 의혹이 터진 뒤 건설·조선산업 회계 관행 문제를 짚고 경영진을 제대로 처벌했으면 대우조선 사태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감사를 나가 그동안 해온 회계처리 관행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딴 회사 고치면 우리도 그럴게’라는 반응을 보인다. 금융감독원 감리에서 회계부정이 걸리면 그제야 고치는 식이다.(※대우건설이나 대우조선해양은 회계분식 의혹이 불거질 당시 ‘건물이나 배를 만들어 최종 인도할 때까지 수년이 걸리는 수주업종 회계처리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항변했다.)

건설·조선 등 수주산업 이후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회계 투명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신약 개발 초기에 돈을 쏟아부은 뒤 나중에 돈을 버는 구조니까.

“감사대상이 ‘갑’, 우리는 ‘을’”

회계사들은 스스로를 ‘을’이라고 자조했다. 감사 대상 기업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감사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회계사가 2만명에 달하면서 회계법인 간 감사 수주 경쟁이 치열해졌다. 계약을 좌지우지하는 감사 대상 기업이 ‘갑’이 된다.

안진회계법인이 대우조선 부실감사로 올해 1년간 상장회사,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회사, 비상장 금융회사 감사를 새로 맡지 못하게 됐다. 그로 인해 반사이익을 얻은 회계법인에서는 올해 초 감사 때 계약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원칙대로’ 감사를 하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더라. 그래서 주주총회 때 이익 났다고 발표한 회사 최종 실적이 적자가 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안진이 징계를 받으면서, 다른 회계법인 파트너들이 승진 기대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

회사 실무자가 감사 전에 대출을 받은 은행에 50억원 이익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를 나가 보니 충당부채(지출의 시기 또는 금액이 불확실한 부채)를 더 잡아야 할 것 같더라. 상대 회사 임원들이 내 옆자리에 와서 ‘대출이 회수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염불을 외었다. 이렇게 되면 그 회사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파트너들은 난처해한다. 비상장사이고 크게 위험하지 않을 테니 적당히 넘어가주길 원한다.

사실 회사가 감사를 잘 받아서 주가가 상승하거나 사회적으로 혜택을 보면 지금처럼 ‘가격’만 보고 외부감사인을 결정하진 않을 거다. 진료비를 기준으로 병원을 선택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회계 불투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문제와 연결된다. 내가 주식을 갖고 있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회사 잔고가 투명한지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제대로 된 회계 정보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기업 오너들에게 회계감사란 귀찮은 일이다. 비자금도 숨기고 싶고 세금도 덜 내고 싶은데, 자료 달라고 하니까.

이들을 기업 내부에서 견제해야 할 감사나 감사위원들이 회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외부감사인 권한보다 내부감사인의 권한과 조사 범위가 훨씬 넓다. 미국의 경우 감사위원회 독립성 문제가 매우 민감하고, 주주들은 소송을 통해 감사위원들에게 회계부정 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대우조선 분식회계로 외부감사인들이 실형을, 전임 사장은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감사위원들도 처벌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 금융당국 의지가 중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가 수차례 도입됐지만, 대우조선 사태를 막진 못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유명무실한 기업 내부 통제시스템, 외부감사인의 부실 감사, 금융당국의 관리 소홀 등 회계부정을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어도 금융당국이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2013년 외감법을 개정해,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재무제표를 감사인에게 넘길 때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도 제출하게끔 의무화했다. 재무제표를 늦게 주면, 감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무를 어겨도 처벌을 제대로 안 한다.

2015년 회계연도에 재무제표 제출 의무를 위반한 상장회사가 115개였다. 금융위는 재무제표 전부를 제출하지 않은 3개 회사에 대해서만 ‘감사인을 1년간 지정’하는 조처를 했다. 나머지 회사들은 경고나 주의를 받았을 뿐이다.

기업을 더 투명하게 하기 위한 ‘지정감사’(※금융당국이 회계 투명성 제고 목적으로 일정 요건 기업에 외부감사인을 지정해주는 것)가 어떻게 처벌인가. 감사 전 재무제표 제출 의무를 위반할 경우 따로 처벌조항(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고발을 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기업 내부 감시기구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단기적으로 외부감사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최소한의 감사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기준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외국에선 외부감사인과 내부감사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제대로 일을 하는 외부감사인을 뽑아야 내부감사인도 면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행·정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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