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호' 재벌개혁, 부영 잡고 삼성 겨눌까

선명수 기자 입력 2017. 6. 24. 15:28 수정 2017. 6. 2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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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영그룹에서 시작된 ‘김상조 공정위’의 재벌개혁 칼날이 재계 1위 삼성으로 확대될지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모습. / 이석우 기자

부영그룹에서 시작된 ‘김상조 호(號)’의 재벌개혁 칼날은 삼성그룹을 겨누고 재계 전반으로 향하게 될까.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로 꼽히는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 본격적인 재벌기업에 대한 제재는 대기업 위장계열사 조준부터 시작되는 분위기다.

재벌기업의 위장계열사 운영은 일감 몰아주기와 함께 ‘김상조식 재벌개혁’의 핵심 사안 중 하나다. 공정위가 위장계열사 운영과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허위제출 등의 혐의로 재계 16위인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다음 타깃’은 재계 1위 삼성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는 지난 5월 삼성그룹의 위장계열사로 지목된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삼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국내 건축설계 업계 1위인 삼우는 1976년 설립 이후 삼성계열사의 건축 설계를 주로 맡아와 삼성그룹의 위장계열사라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경제개혁연대가 지난해 10월 삼우의 위장계열사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신고를 공정위에 냈고, 이에 공정위가 조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이 회사는 1976년 개인사업체로 설립된 ‘삼우건축연구소’가 그 모태로, 1979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1985년 현재의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14년 8월 삼우는 설계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삼우설계’와 감리사업 중심의 ‘삼우CM’으로 회사를 분할하고, 한 달 뒤 삼성물산이 삼우설계의 주식 전량을 인수해 삼성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의혹의 핵심은 삼우가 2014년 삼성물산에 인수되기 전까지 약 30년간, 삼성그룹이 차명 주주를 통해 삼우를 위장계열사로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내부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삼우를 업계 실적 1위인 연 매출 2000억원대의 건축설계회사로 키운 뒤, 차명 주식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삼우를 헐값 인수해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에 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앞서 <한겨레21>은 2013~2014년 삼우의 고위 임원들이 ‘삼우의 원 소유주는 삼성이고, 삼우의 현 주주들은 삼성을 대리하는 주식명의자’라고 말한 녹취록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삼우가 삼성물산에 인수된 것은 종전보다 강화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직전이다. 삼성물산의 삼우 인수 두 달 뒤인 2014년 11월부터 시행된 개정 금융실명제법은 불법적인 차명거래에 대해 명의를 빌려준 사람뿐만 아니라 실소유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처벌규정을 강화했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삼성그룹이 건축사법상 제한으로 삼우를 위장계열사로 운영하다가, 2014년 11월 개정 금융실명제법 시행을 앞두고 차명주식을 정리해 계열사로 편입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삼우를 그대로 위장계열사로 뒀다간 그룹은 물론 총수 일가의 리스크가 커지는 점이 고려됐다는 얘기다.

과거에도 업계에서는 삼우가 삼성의 위장계열사라는 의혹이 여러 차례 일었다. 공정위도 1997년과 1999년 두 차례 삼우의 위장계열사 여부를 조사했지만, 무혐의 결론을 낸 바 있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조사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과거 두 차례의 공정위 조사 당시에는 차명주주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엔 삼우 임원들의 녹취록과 내부 회의록 등의 증거가 공개된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물산의 한 임원이 ‘2014년 삼우의 분할·합병 과정을 삼성의 임원들이 마무리했다’고 말한 내용의 녹취록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위장계열사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특히 공정위의 삼우에 대한 조사는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 5월 18일 “법 집행 시 4대 그룹 사안은 더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을 즈음 시작된 것이어서 조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 조사에서 삼우가 삼성의 위장계열사로 판정될 경우, 공정위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그룹 총수를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그간 대기업의 위장계열사 운영은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쳐 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위장계열사 적발 및 제재조치 현황’ 자료를 보면, 공정위는 2011년 이후 5년간 대기업집단의 위장계열사를 22건(총 72개 회사) 적발하고도 검찰 고발은 단 1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벌어지던 와중에 공정위가 유원실업 등 4개 위장계열사를 적발하고 신격호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고’ 처분한 것이다.

공정위의 위장계열사 적발 현황을 보면 2011년 이후 롯데와 SK가 세 차례씩 적발건수가 가장 많았으며, LG가 두 차례로 뒤를 이었다. 적발된 위장계열사는 LG가 23개로 가장 많았고, 롯데가 11개로 그 다음이었다. 지분율 요건에 따라 위장계열사로 적발된 68개 기업의 총수 일가 지분율 평균은 93%로 매우 높았다.

최근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의혹에도 눈길이 쏠린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금호그룹의 계열사 간 자금거래 등의 적절성 검토’라는 보고서를 통해 박삼구 회장이 2015~2016년 금호산업 인수를 포함한 그룹 재건과정에서 계열사와 자금 및 유가증권 거래를 하며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공정위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선 박삼구 회장과 김상조 위원장의 ‘과거 악연’에 주목하기도 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 당시 계열사끼리 기업어음(CP)을 거래한 것과 관련해 2013년 박삼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도 경제개혁연대로, 김상조 당시 소장이 주도했다. 지난해 1월에는 박 회장이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며 배임 혐의로 박 회장과 이사 19명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금호아시아그룹 재건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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