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안아키'에 인정사정 안 봐준다

프랑크푸르트ㆍ김인건 통신원 입력 2017. 6. 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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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예방접종 상담에 관한 법'이 통과됐다. 육아기관들은 예방접종 상담증명서를 제출하지 않는 부모를 보건 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 방식인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일명 ‘안아키’가 논란이 되고 있다. 6만명에 달하는 ‘안아키’ 온라인 카페에서는 아이들에게 필수인 예방접종도 하지 말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은 안아키 카페 운영자인 한의사를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6월1일 독일 연방의회는 ‘예방접종 상담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독일 육아기관들은 예방접종 상담증명서를 제출하지 않는 부모를 의무적으로 보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예방접종 상담에 관한 법’은 부모에게 예방접종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부모가 예방접종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부는 이 법이 부모에게 예방접종 시기를 기억할 수 있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EPA 독일의 ‘예방접종 상담에 관한 법’은 부모에게 예방접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는 소아과 의사가 유아에게 예방접종 하는 모습.

그동안 영유아 예방접종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전문가들은 특히 홍역과 같은 전염병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염병은 감염 여부가 다른 사람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한 아이들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예방접종은 서로의 건강을 위한 일종의 연대인 셈이다.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따르면 소아과 의사협회는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육아기관 및 다른 교육기관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도 우파 성향의 독일 자민당(FDP)은 14세까지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독일 소아과의사협회 토마스 피쉬바크 회장이 <포쿠스>에 기고한 글에서 예방접종률이 95% 정도에 도달하면 위험한 질병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예방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2016년 보고된 홍역 환자 수가 325명이었지만, 올해는 아직 상반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홍역 발생이 410건에 달한다. 5월 중순까지 이미 2395명의 홍역 환자가 생긴 이탈리아는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예방접종 의무화는 아니지만 예방접종 상담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헤르만 그뢰헤 독일 보건장관은 “이번에 통과된 법안만으로도 부모들에게 예방접종을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뢰헤 장관은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 참석해 독일에서 1차 예방접종의 접종률이 매우 높은 것에 비해 2차 접종률이 낮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예방접종 문제의 핵심은 예방접종 거부자가 아니라 1차 예방접종을 시킨 부모들이 2차 예방접종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예방접종위원회 구실을 하는 로베르트코흐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2015년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중 96%가 홍역 예방접종을 했는데 2차 접종은 92%만 완료했다.

독일 연방의회는 이미 2015년 7월 영유아에 대한 예방접종을 강화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부모가 육아기관에 아이를 등록할 때 의사와 상담을 한 예방접종 상담증명서를 제출하게 했다. 이 법안 통과로 예방접종 상담을 거부하는 부모에게는 벌금 2500유로가 부과되었다. 하지만 육아기관이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부모를 신고해야 할 의무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예방접종 상담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 신고된 부모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새로운 법은 육아기관이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부모를 보건 당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예방접종 거부하는 부모도 많아

ⓒdpa 헤르만 그뢰헤 독일 보건장관(위)은 1차 예방접종의 접종률에 비해 2차 접종률이 낮은 문제를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법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라디오 방송 <도이칠란트 풍크>의 보도에 따르면 쾰른 시의 경우 부유한 지역보다 가난한 지역의 어린이 예방접종률이 더 높다. 쾰른 보건 당국의 안느 분트는 예방접종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부모가 단순히 예방접종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보다 많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는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 예방접종 상담을 받지 않은 ‘부유한’ 부모가 아이를 육아시설에 보내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 법이 예방접종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육아시설 운영자와 교사들은 새 법이 자율적인 운영권을 침해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부모를 보건 당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면서 육아시설 교사와 부모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연방의회 내 좌파당 원내교섭단체에서 보건 분야 대표를 맡은 카트린 포글러는 육아시설 교사를 ‘보조 경찰’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며 이 법을 반대했다.

독일에서도 예방접종 의무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 독일 헌법인 독일기본법은 침해할 수 없는 신체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신체에 대한 의무 부과는 불가피한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민당 소속의 멜라니 훔르 바이에른 주 보건장관은 “예방접종 의무화는 기본법에 기초한 신체의 불가침성과 부모의 양육권을 침해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이에 대한 예방접종 결정이 부모의 고유 권리라는 주장도 있다.

프랑크푸르트ㆍ김인건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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