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권력자 되면 공감 능력 잃는 '뇌손상' 입는다

국기연 2017. 6. 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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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 또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권력자가 되면 소통 능력이 떨어져 ‘불통’ 대통령이나 CEO로 전락하는 원인의 일단이 밝혀졌다. 미국과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들이 권력과 뇌 기능 간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권력자가 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뇌손상’ (brain damage)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UC 버클리대의 심리학 교수는 다처 켈트너(Dacher Keltner) 박사는 지난 20여년 동안의 실험실 및 현장 조사를 통해 권력자가 ‘외상성 뇌손상’( traumatic brain injury)을 입게 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켈트너 교수는 “권력자가 되면 보다 충동적이고,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고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 최신호가 보도했다.

◆권력자의 ‘파워 패러독스’

켈트너 교수는 권력자의 행동 양식을 추적, 조사해 공감 능력 상실 현상을 규명했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의 신경과학자 석빈더 옵하이(Sukhvinder Obhi) 박사는 권력자의 뇌를 임상학적으로 연구해 켈트너 교수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옵하이 교수는 ‘경두개자기자극기’ (Transcranial Magnetic Simulation)를 이용해 권력자와 비 권력자의 뇌기능을 비교해 연구했다. 이 기기는 전기적인 자극으로 뇌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거나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옵하이 교수는 ‘‘권력이 생기면 뇌에서 공감 능력의 원천이 되는 ‘반사’ (mirroring)라는 특수 신경 과정이 손상을 입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한나라의 대통령이나 기업의 CEO가 되려면 갖춰야할 핵심 조건 중의 하나가 공감 능력이다. 이 같은 공감 능력을 통해 대통령이나 기업의 CEO 자리에 오르지만 권력이 생기면 그때부터 대통령이나 CEO가 자신의 남다른 장점이었던 공감 능력을 상실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옵하이 교수는 이런 현상을 ‘파워 패러독스’ (power paradox)라고 명명했다.

◆권력자의 공감 능력 상실 실험

권력자가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불통’에 빠진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임상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과학자들이 영문 알파벳 E를 자신을 쳐다보는 상대방에게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써서 이마에 붙이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이 없는 사람에 비해 3배가량 더 많이 E를 잘못 써서 이마에 붙였다고 애틀란틱이 전했다. 권력자는 대체로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똑바로 보이는 모양으로 E자를 썼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08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미국 국기를 거꾸로 들고 있다가 눈총을 받았다. 이것 역시 권력자의 공감 능력 상실 사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 표정이 담긴 인물 사진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권력자의 뇌손상 문제가 드러났다. 일반인은 사진에 있는 인물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지만 권력자가 되면 사진 속 사람의 표정으로 감정 상태를 읽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권력자를 향한 아첨으로 병세 악화

권력자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 아첨을 하거나 칭찬을 늘어놓게 마련이다. 권력자 앞에서는 사람들이 직언을 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온갖 신경을 쓰면서 그의 비위를 맞추려 드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권력자가 공감 능력을 잃는 뇌손상 문제가 더욱 악화한다고 애틀란틱이 지적했다.

켈트너 교수는 권력자가 되면 다른 사람 ‘흉내 내기’(mimicking) 버릇을 멈추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통 사람은 상대방이 웃으면 따라 웃고, 상대방이 긴장하면 자신도 긴장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인지하게 된다. 켈트너 교수는 “권력자는 다른 사람의 경험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공유하는 ‘시뮬레이션’ (simulating)을 멈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공감능력 결핍증’ (empathy deficit’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다른 사람 흉내를 내면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의 감정을 ‘반사’한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상대방의 특정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뇌 속에 이미 상대방과 동일한 공감이 형성된다. 옵하이 교수는 고무공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권력자와 비 권력자의 반사 반응을 측정했다. 실험 대상자에게 고무공을 쥐여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고무공을 손으로 꽉 잡는 영상을 보여준다. 이때 권력이 없는 사람은 영상 속 상대방을 따라서 자신도 공을 꼭 쥐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권력자는 영상 속 상대방이 공을 꼭 쥐어도 자신의 손에 있는 공을 꼭 쥐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력자의 뇌손상 치유는 어려워

권력자가 공감 능력을 잃어가는 뇌손상 증세를 치유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했다. 권력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한 자신의 권력을 의식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권력자가 ‘오만 신드롬’ (hubris syndrome)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권력자가 이 신드롬에 빠지면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침착하지 않거나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자신의 무능을 드러낸다고 이 개념을 정립한 조너선 데이비슨이 강조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상당수가 정신 질환에 시달렸다. 우드로 윌슨은 뇌졸중을 겪었고, 린든 존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조울증에 시달렸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심리학협회로부터 공격성, 사디즘이 복합된 ‘악성 나르시시트’ 판정을 받았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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