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힘든데 여자가 얼마나 하겠냐"

정인열 <작은책> 기자 2017. 6. 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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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형틀목수 김애숙 씨

[정인열 <작은책> 기자]

 경기도 안양 시내에 있는 한 아파트 건설현장. 이곳에서 일하는 김애숙 씨(42세)를 만났다. 김 씨의 직업은 형틀목수다. 그런데 김 씨는 여성이다. 김 씨의 직업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성분이 어떻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요?' 하고 놀라죠, 하하."

김 씨가 말을 이으며 안전모를 벗자 땀에 푹 젖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비릿한 쇠 냄새도 풍겼다. 집 짓는 일이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형틀목수 김애숙 씨. ⓒ작은책(정인열)

이곳은 국내 굴지의 모 건설회사가 시공을 맡고 있다. 형틀목수들은 팀을 이루어 건설현장을 다닌다. 보통 스무 명이 한 팀이다. 팀을 대표하는 김도삼 팀장은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고 기술이 좋은 사람이다. 현장에는 원청 시공사 말고도 하청 건설회사 몇 개 업체가 들어온다. 목수·철근 분야는 A하청업체에, 전기·배관 분야는 B하청업체에 공사 일감을 주는데, 공사 기간 동안 형틀목수 팀은 A하청업체에 채용되어 일한다. 공사가 끝나면 고용계약도 끝난다. 또 다른 건설현장을 찾아 그곳의 하청업체와 다시 고용계약을 맺고 일을 한다.

건물을 짓는 과정은 크게 기초공사, 골조공사, 외장공사, 내장공사, 마감공사 등 다섯 가지로 나눈다. 가장 처음 터 잡기로 시작해 바닥 콘크리트 시공을 하면 골조 공사로 넘어가는데, 철근으로 건물 뼈대를 잡고 전기 배관을 한다. 그리고 철근 뼈대에 콘크리트 살을 붙이기 위해 거푸집(현장용어로는 '야기리')을 만든다. 형틀목수는 기초공사의 기둥과 옹벽 등이 세워질 곳을 표시하는 '먹매김'과 골조공사의 거푸집 작업을 주로 한다. 거푸집은 굳지 않은 콘크리트를 부어 넣은 후, 구조물 형태와 크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콘크리트를 양생하고 지지해 주는 가설 구조물을 말한다. 콘크리트 양생이 끝나면 콘크리트 벽이 생기며 건물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거푸집을 떼어 내야 한다. 이후 건물 외부에 타일, 벽돌 등으로 마감하는 외장공사, 건물 내부의 벽, 바닥, 천장 등 치장과 설치를 위주로 한 내장공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도색, 미장, 벽지, 창호 등 마감공사를 하면 집이 완성된다.

▲ 경기도 안양 시내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작은책(정인열)

김 씨가 일하는 공사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나와 안전모를 쓰게 했다. 그리고 공사 현장까지 동행했다. 김 씨가 말했다.

"이런 1군 업체는 안전에 아주 민감해요. 조금만 높은 데 올라가도 안전과장이 따라다니면서 무조건 안전벨트 매라고 말하거든요."

김 씨와 팀원들은 지하 3층 규모의 주차장을 짓기 위해 거푸집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 못주머니를 차고 안전모를 쓰고, '전국건설노동조합'가 선명히 적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팀장부터 팀원 모두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이다. 노동자들은 폼(합판 뒷면에 철강재 틀을 붙인 판넬)과 폼을 연결하기 위해 망치질로 핀을 고정하고, 폼 평면을 수평으로 잡기 위해 파이프와 목재를 댄다.

"모든 물건들이 다 무거워요. 여자분들이 하기에는 많이 힘들죠. 오비끼, 투바이 같은 목재 들면 어깨가 뻐근해요. 파이프도 무겁고. 남자분들도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 많아요."

실외에서 하는 일이라 빛, 바람, 기온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도 참고 일해야 한다.

"여름에는 죽여주죠. 다칠까 봐 살이 드러나는 옷도 못 입으니, 더 대책이 없어요. 잠깐씩 그늘 들어갔다 나오는 수밖에 없어요. 미세먼지요? 그런 건 신경도 못 써요. 그거 아니어도 목재 자를 때 나오는 불순물 마시고 시멘트 가루도 마시니까요."

형틀목수들의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근처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팀별 공지사항을 공유한다. 6시 50분에는 아침체조를 하고 7시부터 작업을 한다. 9시까지 약 두 시간 일을 한 후에는 30분간 참을 먹고 쉰다. 다시 11시 50분까지 일을 한 후 점심밥을 먹는다. 오후 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작업하고 30분간 오후 참을 먹고 쉰다. 한 시간가량 더 일을 하고 난 후 그날 작업은 끝내고 뒷정리를 한 후 오후 5시경에 퇴근한다. 경력 1년 김 씨의 하루 일당은 15만 원. 쉬는 날은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비가 안 오면 무조건 출근을 해요. 도중에 비가 오면 일한 시간만큼만 돈을 받고요. 요즘은 보통 한 달에 23일 정도 일합니다. 겨울에는 일이 별로 없어요."

슬라브(천장이자 바닥)를 작업할 때는 천장과 바닥을 지지하는 파이프를 고정시킨 후 슬라브에 올라가 작업을 한다. 지지대가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는 일도 발생하니 아주 꼼꼼하게 작업해야 한다. 또 이어붙인 폼들은 측벽 크기만큼 제작하므로 높이가 5미터가 넘고 무게도 3~4톤가량 되는데, 이를 인양하다 사고가 나면 즉시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또, 고층에서 거푸집 해체 작업을 하다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하므로 안전 수칙을 꼭 지키며 무리하게 작업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해마다 건설현장 사망자가 약 500명에 이르며, 이 중 70퍼센트가 추락사, 그리고 협착, 붕괴, 충돌, 감전, 화재, 폭발 등의 사고를 당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건설노조는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실질적 사용자의 위치인 원청과 노조가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거푸집을 만들기 위해 폼을 붙이고 있는 김애숙 씨와 동료. ⓒ작은책(정인열)

김 씨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경기 시흥의 한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3년간 일했다. 그전에는 유명 볼펜 공장에서 16년을 일했다. 어쩌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자동차부품 회사는 노조가 없었어요. 사람대접을 안 해 주는 회사였죠. 볼펜공장은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이었지만, 그래도 노조가 있으니까 직원들 의견 듣는 시늉은 했거든요."

자동차부품 회사에서는 무거운 부품들을 검수하는 일을 했다. 하루는 관리자가 김 씨에게 페인트칠을 시켰다.

"한겨울이었어요. 추워서 문 꼭꼭 닫고 일하는데 페인트칠을 하니 냄새가 너무 역겹고 머리가 아팠어요.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더라고요. 회사에 따지고 나와 버렸죠."

그러다 형틀목수인 아는 언니가 이 일을 권유했다. 김 씨는 안산건설기능학교에서 형틀목공 과정을 수료했다. 그곳은 건설노조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기관이었다. 졸업 즈음 학교는 노조에 대해 소개하고 가입을 권유했다. 그리고 김 씨를 노조가 있는 지금의 팀에 투입시켰다. 일은 힘들지만 좋은 팀장과 동료들을 만나 잘 버티고 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참 많은 것 같아요. 팀장님이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잘 챙겨 주시고 일도 잘 가르쳐 주셨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김 씨는 운이 좋은 편이지만, 대부분 건설현장에서 여성들은 부당한 일을 많이 겪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김미정 부지부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엉덩이를 만지는 등 신체적 접촉이 많고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던진다. 호칭도 '아줌마'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보조적인 역할로 제한한다. 또 남편이 오죽 못났으면 건설현장까지 왔겠냐고 보는 것이 부지기수다"라고 실태를 밝혔다. 김애숙 씨도 처음 보는 남성들로부터 "남편이 돈을 못 벌어 주냐? 여자가 핀이나 줍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여기는 노조가 있어서 성희롱도 없고 무시당하는 일도 거의 없어요. 임금도 노조 있는 팀은 20일 이상 일하면 하루 치를 더 줘요. 쉬는 시간도 눈치 안 보고 30분 다 쉬고요. 노조 없는 곳들은 일도 더 많이 하고 임금도 제때 안 주는 데가 많거든요."

▲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여성건설노동자들. ⓒ전국건설노동조합

불안한 고용과 강도 높은 육체노동, 그리고 사고 위험도도 따르는 일이지만 김 씨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아 계속할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성별로 구분해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당이 14만 원으로 시작해요. 6개월이 지나면 16만 원으로 올라요. 그런데 저는 1년 됐는데 아직 15만 원이에요. 저보다 경력이나 기술 면에서 부족한 사람도 있지만 남자라서 일당이 더 높죠. '남자들도 힘든데 여자들 너희가 얼마나 하겠냐'는 생각이 이 업계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아쉽죠."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땀 흘리며 일하는 김 씨는, 목수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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