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낯선 손님의 방문이 두려웠다"

양다솔 아르바이트생 입력 2017. 6. 24. 13:24 수정 2017. 6. 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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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청년 ③] 최저임금 만원은 '오후 세시의 빛'

[양다솔 아르바이트생]

 

'최저임금 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목표로 지난 4월 5일 출범한 '만원행동'은 지난 5월부터 6월10일까지 '만원스토리 공모전, 보이는 만원'을 실시했다. 아르바이트생, 현장 실습생 등 직접적으로 최저임금과 관련있는 당사자들이 공모전에 참여했다. 대부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프레시안>은 이들 중 당선작을 선별, 지면에 싣고자 한다. 최저임금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청년들의 사연이 극한직업과 다를 바 없는 한국의 노동현실을 들여다보자. 


나에게 최저임금 만원은 오후 세시의 빛이다. 어쩌면 나의 선택이 어리석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난 스무 살이 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 어느 날, 난 식구처럼 키우던 유기묘 두 마리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공부하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이 아니었다. 부모님 집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값싼 공사단지 동네가 나의 독립 공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쓰레기통이나 섬유유연제가 집에 원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겨울에는 채소를 하우스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야채 값이 금값이 된다는 것도 몰랐다.

 

독립생활을 하면서 달라진 건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청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등록금은 물론이며 핸드폰 요금과 교통비, 각종 공과금과 월세, 고양이 밥과 내 밥, 그 어떤 것도 우선순위를 매길 새도 없이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공부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고, 혼자 산다고 아무거나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우리 집. 고집을 부려가며 독립을 해낸 내가 용돈을 받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밥은 냉장고에 늘 있고, 많지는 않았지만 받은 용돈으로 어떻게 하면 예쁜 옷을 한 벌 더 살지 고민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돈이 남을 때마다 돌절구라든가 멸치액젓 같은 것을 쟁여두고 살았다.

 

대충 계산해보아도 내게 필요한 한 달 생활비는 팔십만 원을 훌쩍 넘었다. 학생이니 학교를 다녀야 했고, 성적을 위해 공부도 해야 했고, 밥도 챙겨먹고 살림살이도 해야 했다. 친구도 연애도 접어두고 남는 시간에 일만한다고 해도 시급 6470원은 나에게 고작 40만 원을 쥐어주었다. 비슷한 사정에 있는 친구는 나에게 자신이 다니는 술집 알바를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스커트도, 술도, 남자도 어려워하는 나는 그 일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은 결국 편의점 야간 알바였다. 남들이 잠자는 시간에 일하는 대신, 나의 한 시간은 6470원에서 9705원이 됐다. 어두운 동네에 홀로 밝혀져 있는 편의점을 혼자 지키며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 매번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이 귀한 시간을 더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며 악착같이 폐기상품들을 챙겼다.

 

한편으론 내가 이 시간에 할 수 있을 훨씬 더 가치 있는 일들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쓰러지듯 자고 일어나면 또 저녁이었다.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사람들은 오늘 낮에 하늘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가서 놀지 못해 조금은 서운할 정도로 예쁜 볕이 들었는지, 아니면 안에 있는 게 최고다 싶을 정도로 시원한 비가 내렸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일해서 받은 돈은 너무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게 남은 것은 낯선 손님의 방문이 두려운 새벽과 다른 모두가 중요한 일들을 마치고 돌아온, 홀로인 저녁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빤히 바라보게 됐다. 강렬하면서도 밝은, 따갑기보다는 품에 안긴 것처럼 따스한, 그것은 오후 세시의 빛이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노랗게 물든 오후,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반사되는 볕을 꽤 오래 지켜보았다. 그게 마치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가 그려내는 그림자를 몇 분이고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됐다. 이 시간에는 우리 집 좁은 거실도 노랗게 물이 들었다.

 

그런 오후 세시엔 꿉꿉한 이불을 널고,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아끼는 노래를 한 곡 골라 애정하는 사람과 어디로든 걸으면 좋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낮잠을 자거나, 내가 하고 싶은 무얼 해도 좋을 것이다.

 

최저시급이 만원이 된다면, "어쩌면 나에게 그 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상상을 했고, 동시에 너무나도 아득하게 그 소중한 시간에 지쳐 잠든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오후 세시의 빛', 따듯하고, 따듯한 꿈이었다.


양다솔 아르바이트생 (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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