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한 사람의 용기가 세상을 바꿨다"

2017. 6. 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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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여성 엔지니어의 성희롱 폭로 글, 우버 대변혁의 실마리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IT 전문매체 리코드의 카라 스위셔 발행인은 실리콘 밸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는 23일(현지시간)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노자의 도덕경 문구를 인용하면서 "깨질 것 같지 않던 우버의 파괴적 문화가 한 여인의 용기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9일 수전 파울러라는 전 우버 엔지니어는 3천 단어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글의 제목은 '정말 정말 이상했던 우버에서의 한 한 해를 회상하며'였다. 이 글이 실리콘밸리,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타트업인 우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그 당시만 해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분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지난해 12월 우버를 떠나 올해 1월 스트라이프에 합류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왜 우버를 떠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이상할 수도 있고, 눈길을 끌 수도 있고, 약간은 소름 끼치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 생생한 기억"이라고 시작했다.

그녀는 "몇 주간의 견습을 마친 뒤 전문가팀에 배속된 첫날 새 매니저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는 정말 이상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여자친구와 문제가 있다면서 성관계를 할 여성이 필요하다는 문자였다는 것이다.

"그건 문명 내게 성관계를 갖자는 것이었다. 나는 즉각 이 채팅 내용을 카메라로 찍었고 인사관리팀에 그를 고발했다"고 그녀는 밝혔다.

하지만 인사관리팀은 "그(매니저)는 매우 실적이 뛰어난 사람"이라며 자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 팀을 떠나 그와 다시는 섞이지 않거나, 그 팀에 남아서 그 매니저가 나쁜 근무성적을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팀을 떠난 뒤 동료 여직원들로부터 그 매니저가 다른 여직원들에게도 이런 메일과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고, 피해 여성 가운데 몇 명은 자신처럼 이를 인사부서에 보고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인사팀과 얘기했지만, 그들은 "그 매니저에 대한 험담은 당신이 처음"이라는 명백한 거짓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한 번은 우버가 엔지니어들에게 가죽점퍼를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회사 측은 '여성의 수가 너무 적어 여성 엔지니어의 가죽점퍼를 주문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150명 가까운 남성들에게는 제공할 여력이 있으면서 6명의 여성에게는 점퍼를 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지만, 그녀의 항변은 자신을 '말썽꾼'으로 완전히 낙인 찍는 계기가 됐을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전에도 실리콘 밸리에서는 우버의 사내문화가 종종 입방아에 올랐다.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과정의 문제는 적당히 무시해야 한다는 '푸시(push)' 문화. '목표'만 달성한다면 어떤 실수나 잘못도 용서되는 능력 제일주의(meritocracy). 그러나 실리콘 밸리에서는 우버의 이런 문화를 씁쓸하게 비판하면서도, 불과 몇 년 만에 GM보다 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성장한 우버의 성공스토리에 섞여 있는 작은 불순물쯤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우버의 남성 직원들이 여직원에게 함부로 하는 문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4년 트래비스 캘러닉 CEO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그의 측근이 룸살롱에 갔었고, 마이애미의 직원 워크숍 파티 때 남자 임원들이 여직원의 가슴을 만지고 다녔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캘러닉 왕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뒷이야기 수준으로 치부됐다. 우버 내부의 벤처 투자자나 이사회 멤버들도 캘러닉 앞에서 단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언론조차도 우버의 뒷얘기를 쓰는 것을 꺼렸다. 실제로 우버는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에 대처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솔직한 폭로가 나온 것이었다.

스위셔 리코드 발행인은 "모두가 왕처럼 여기던 '언터처블'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 내부 고발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녀의 블로그 글이 공개된 후 뉴욕타임스(NYT)는 우버 전 현 직원 3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얘기들을 확인하는 기사를 썼다.

리코드 등 IT 매체들도 앞다퉈 우버 내부의 분위기를 '파괴적 문화', '독성 남성중심 문화'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우버 이용자들 사이에서 '우버 앱 삭제' 운동이 벌어졌다.

미국 사법 당국은 우버가 신규 지역 사업 진출 시 경찰관의 눈을 피하는 '그레이볼'이라는 불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NYT의 폭로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구글 자율주행차 사업부문인 웨이모가 우버의 기술 절도 소송을 낸 것도 이 무렵이었다. 법원은 우버의 기술 절도 소송에 대해 미 FBI가 수사하라고 직권 명령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캘러닉 CEO는 '나는 더 성장해야 한다. 멘토와 같은 COO(최고운영책임자)를 영입해 우버의 2막을 열어나가겠다"며 반성모드로 돌아섰다. 하지만 성난 여론으로 인해 경쟁사인 리프트의 가치가 오르고 우버의 미래마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커지자 결국 투자자들이 캘러닉 CEO를 압박했다. 그는 '무기한 휴직'을 선언한 지 몇 일만인 이번 주 초 CEO직에서 아웃됐다.

파울러의 폭로가 있은 지 불과 4개월 만의 일이다.

스위셔 발행인은 "캘러닉 CEO를 비롯한 우버의 고위 남성 임원들은 영원히 소년기의 땅에 머물고자 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보였다"면서 "수전 파울러는 소년들이 끝없는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 모든 방종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해 줬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아직도 우버의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우버에 대한 엄청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우버의 매출은 그대로이며 시장가치 역시 변함이 없음이 이를 증명한다. 차량공유는 자동차의 소유 개념을 바꿔 놓았고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의 동반자라는 데 실리콘 밸리 내의 이견은 없다.

그러나 만일 우버의 파괴적이고 미성숙한 사내문화가 지속됐다면 우버와 우버의 가치는 완전히 망가졌을 수도 있다. 파울러의 용기있는 행동이 우버가 회복할 여력을 갖고 있던 시점에 나온 것은 어쩌면 우버엔 운일지도 모른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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