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여행이 ‘꽃망울’이라면 중미여행은 ‘꽃술’이라고 표현하는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왜 중미를 꽃술이라고 했을까? 꽃술은 꽃잎처럼 시들지 않고 꽃이 자기 역할을 다할 때까지 운명을 같이한다. 꽃망울같이 활짝 피어나지 못하지만 꽃이 지고 난 뒤에도 은은한 자태는 그대로 간직한 채.

콜롬비아, 중미 여행의 첫 시작
시인의 표현을 생각하며 중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1년 전 남미로 향했을 때와 같이 비행기는 태평양을 건너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적도를 넘어 남미대륙의 시작이며 중미의 끝인 콜롬비아에 나를 내려 놓았다. 중미 여행의 시작점이자 첫 기착지 보고타에 닿은 것이다. 보고타는 콜롬비아 중앙을 가르는 사바나 고원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일까. 스페인풍 건물이 영화 세트장같이 조밀하게 정렬된 구도시에 들어서면 지나간 제국의 영광과 회한이 밀려오는 듯하다. 태양의 제국은 어쩌다 영국에 뒤처졌을까, 라틴아메리카라는 든든한 뒷 배경을 가졌음에도 무일푼의 영국에 뒤진 걸 보면 부자가 100년 안 간다는 옛 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카르트헤나의 요새를 바라보면 미국 군사학교에서 ‘군사공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요새의 완고함과 마주하게 된다. 바위같이 단단한 요새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콜롬비아의 마지막 탐방지는 메데인이다. 메데인은 마약 카르텔을 만들어 악명을 떨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활동하던 마약의 도시다. 그의 기행은 한둘이 아니지만 미군 특수부대에 쫓길 때 안데스 산간지대에서 추위를 쫓겠다며 밤새 200만달러의 돈을 불쏘시개로 태운 일화라든지, 창고에 쌓아둔 현금 다발이 쥐가 갉아먹어 매년 10%씩 줄어들어도 무시했다는 일화라든지, 콜롬비아 국가부채를 전부 갚아주겠다는 허풍이라든지…. 그와 관련된 일화는 꽤나 코믹하기까지 하다. 파블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돈 냄새를 맡는 투어는 그가 메데인의 로빈훗임을 유난히 강조한다. 메데인은 마약의 성지일 뿐 아니라 가톨릭의 사회적 책임을 공식화한 해방신학이 탄생한 땅이기도 하다. 마약의 성지에서 가톨릭이 기득권을 놓고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는 선언을 발표했으니 메데인은 콜롬비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역사 현장이다.

소코밀’ 영혼을 씻는 바람
콜롬비아 다음으로 찾은 나라는 코스타리카다. 코스타리카는 중미에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돼 있고, 개발과 보존이 대립하지 않고 보완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보기 드문 나라다. 그러기까지 코스타리카의 자연을 지킨 사람들의 의지가 있었다. 1953년 미국 알리바바 출신의 퀘이커 교도 12가족이 코스타리카 정글에 자리를 잡고 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주변 땅을 사 모으며 개발에 저항했다. 그들이 시작한 자연 보호는 소수의 탐욕으로부터 코스타리카를 살려냈고 에코 트레킹, 자연생태 여행이라는 새로운 테마 여행의 효시가 됐다. 그 현장을 찾아 정글 속 화산여행을 시작했다. 화산을 품은 아레날 화산의 깊은 정글은 자연온천으로도 유명하다. 친환경 트리하우스 마을에서 하루를 묶고 울부짖는 화산의 괴성을 들으며 온천을 즐겼다. 마치 타잔이 된 것마냥 자연이 선사하는 혜택을 가감없이 만끽했다. 비록 4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코스타리카는 자연이 줄 수 있는 충만함을 모두 맛보게 해준 고마운 나라였다.

마야 문명의 실종
코스타리카를 떠나 마야를 낳은 땅 과테말라로 이동했다. 마야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우리가 마야라고 말하는 그 신비는 전기의 전유물이다. 후기 마야는 멕시코 중앙 고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마야를 본뜬 것에 불과하다. 전기 마야가 꽃을 피운 땅이 과테말라의 정글이었다. 과테말라의 첫 탐방지는 습식 커피로 유명한 안티구아다. 안티구아는 행정 중심지가 되기 전에 프란시시코파, 도미니카파, 메르세드파, 카푸치나파, 제수이트파, 카르멘파 등 남미에 신의 역사를 펼쳤던 여러 가톨릭 교파들이 모여 있었으며, 이들이 지은 수도원이 38개, 성소가 15개에 달하는 거대 종교 집합지였다. 한마디로 남미 최고의 가톨릭 성소이자 가톨릭 정신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400년 전 파괴된 수도원을 개조한 산토 도밍고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소중한 추억이 됐다. 호텔의 회랑을 지나 방으로 향하는 지하통로에서 나는 총총걸음으로 달려가 마리아상에 엎드리는 수도사가 되었다. 영혼을 씻는 바람 소코밀이 불어오는 아티틀란 호수를 거쳐 마야의 신정의 중심지이며 수도였던 티칼로 달려갔다. 거대한 피라미드 도시는 어느 날 버려졌고, 마야는 스스로 문명사회에서 원시사회로 돌아갔다.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인가? 정녕 라틴아메리카의 미래를 본 것인가. 뛰어난 건축 앞에서 가진 것을 내놓고 작은 삶을 선택한 지혜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지하 세계로 통하는 계단, 벨리즈
벨리즈 여행은 심연에 홀린 미연(美淵)의 설렘 같다. 비행기로 날아 블루홀과 만나는 시간은 특히 그렇다. ‘지구의 눈’이라고 불리는 저 안은 무성(無聲)일까, 저 안으로 들어가면 무엇과 마주치게 될까? 수많은 가정이 나를 숨가쁘게 한다. 지구 안에는 ‘잃어버린 세계’가 있을까? 지하 세계가 있다면 지상 세계와 통하는 문은 어딜까? 그런 질문에 꼭 들어맞는 거대한 눈동자가 바다에서 이글거린다. 산호초가 드넓게 펼쳐진 주변은 화사하고 푸르다. 하지만 모든 화사함은 어두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어두운 심연이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를 연결하는 블루홀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배를 타고 블루홀 안으로 들어가 산호초 가득한 정원을 들여다봤다. 정원의 꽃은 암굴을 감추는 치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마야는 블루홀의 존재를 알았을까.

잉카에는 잉카의 길이 있듯이 마야에도 마야의 길이 있었다. 벨리즈에서 멀지 않은 톨룸은 마야를 시작하는 길이었고, 톨룸에서 시작된 길은 정글 깊숙한 마야의 도시까지 이어져 있었다. 블루홀에서 나온 예시자가 마야의 길을 따라 도시를 돌며 마야를 지도하지 않았을까. 마야의 길을 따라 나도 톨롬, 치첸이트사, 세노테를 이어본다. 마야는 독특한 양식의 피라미드를 건축했고 싱크홀에 공양하는 풍속을 가졌다. 블루홀, 세노테, 공룡을 멸망에 이르게 한 칸쿤 앞 바다의 분공 등 마야가 머물던 유카탄 반도에는 유난히 지하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가 많다. 마야는 지하 세계에서 지상으로 나왔다가 깜짝 문명을 건설하고 감쪽같이 지하 세계로 가버린 건 아닐까. 마야의 미스테리를 안고 쿠바 아바나로 날아간다.


쿠바, 체 게베라를 기억하는 산타클라라
이제는 사회주의의 옷을 벗고 자본주의의 옷을 고르고 있는 쿠바. 혁명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미국은 쿠바를 가지려 했지만 끝내 갖지 못했고, 꺾으려 했지만 꺾지도 못했다. 쿠바를 굴복시킨 건 세상의 변화였지 일반의 완력이 아니었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은 쿠바가 나아가는 방향이었을 뿐이다. 쿠바가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된 시작은 혁명이 아닌 담배와 사탕수수였다. 시가로 유명한 쿠바는 담배가 유럽의 사치품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담빛잎을 제공하는 원산지였고 미국이 한참 성장하던 시기에는 세계 사탕수수의 80%를 생산해 미국에 전량 제공하기도 했다. 담배와 사탕수수는 쿠바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두 개의 작물이다.
쿠바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사탕수수로 만든 최고급 럼, 화학물질이 첨가되지 않은 쿠바산 시가를 선물로 사는 게 필수 코스다. 살사의 감미로운 운율이 흐르는 식당에서 랍스타로 저녁 식사를 한다. 40년 된 캐딜락을 몰고 밤거리를 달린다. 헤밍웨이가 하루 한 번은 들렀다는 카페 ‘라보데기타델메디오’에서 모히토 한 잔을 마신다. 아바나에서의 하루는 멋과 여유 그 자체다. 아바나를 벗어나 혁명의 도시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산타클라라는 쿠바 혁명이 종결된 곳이자 볼리비아로 떠난 체 게바라와 혁명 동지 16명의 무덤이 있는 성지다. 체 게바라는 20세기 반항적 지성인의 아이콘이 되었고 암울한 1960~1970년대 젊은이들의 지적 안식처이기도 했다. 최후를 함께한 16인의 혁명동지와 함께 묻힌 작은 묘실을 나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체 게바라의 동상에 서면 그가 우리에게 남긴 숭고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바라데로 해안에서 석양을 녹여내는 감미로운 밤을 보내고 메소 아메리카의 터전 멕시코로 향했다.

멕시코의 슬픈 이야기
아메리카의 마지막 문명이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즈텍인들은 멕시코 중부고원에 둥지를 틀고 문명을 일구었다. 20만 명이 거주하는 당대 최대의 도시를 만들었고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하여 태양신을 섬겼다. 인간이 아닌 태양을 추종한 민족, 인간을 신의 제물로 받아들인 민족이던 그들은 결국 허망하게 망했다. 아즈텍의 계보를 이은 멕시코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명을 흡수하여 배태하고 있다. 중미의 다양한 역사를 모두 아울러 한층 세련되게 마무리한 느낌이다. 스페인 식민지 문명의 총 본산이면서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했다. 가장 먼저 공화정을 이룩했으면서도 러시아 볼세비키보다 긴 일당 독재의 역사도 가지고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나라다.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문화로 남은 거리의 벽화와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면 중미 여행 중 마주친 의문부호가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미는 그런 면에서 멕시코의 연장이었다.
숨가쁘게 돌아본 한 달의 중미 일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고, 듬성듬성 놓친 곳이 많았다. 그래도 라틴아메리카 합중국의 꿈과 가톨릭이 재탄생된 콜롬비아를 시작으로 보존과 개발의 균형, 군대를 해산하고 평화를 선택한 코스타리카에서 평화로운 자연도 만나고, 마야의 미스터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 과테말라와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를 찾아 벨리즈의 바다도 날아보고, 마야의 길을 되짚으며 유카탄 반도를 달렸다. 열정적인 살사가 혁명으로 승화된 쿠바에서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를 만났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문명 교차로 멕시코에서 중미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중미가 꽃술이라는 시인의 표현에 한마디를 더 붙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미는 꽃술(화수: 花鬚)이 아니라 꽃술(Flower Alcohol)이더군요, 얼큰하게 취해서 돌아왔습니다”

TIP 중미, 그 낭만과 열정 속으로!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2017년 12월 31일~2018년 1월 22일(20박 23일) ‘과거와 현재의 만남, 중미 6개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미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정글 속에 감춰진 고대 마야 문명의 흔적을 따라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고, ‘지구의 눈’이라 불리는 벨리즈 블루홀에서는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산호초 대지에서 스노쿨링도 체험한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코스타리카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에서는 화산과 조우하며 온천욕을 즐긴다. 체 게바라가 잠든 쿠바 산타클라라에서는 혁명의 열정을, 전 세계 청춘들의 허니문 열망지인 칸쿤에서는 카리브해의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헤밍웨이가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렀다는 카페 ‘라보테키’에서 모히토 한 잔 마시며 아바나의 낭만적인 밤에 취해보자. 《천만시간 라틴, 백만시간 남미》의 저자 채경석 씨가 한국인 전문 가이드로 동행한다.
일정 2017년 12월 31일~ 2018년 1월 22일 (20박 23일)
참가비 1850만원(유류할증료, 가이드경비, 비자발급비 포함)
방문국가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벨리즈, 쿠바, 멕시코
문의 헬스조선 비타투어 홈페이지 참조
